특집
1997년01월30일 제 143호 한겨레21

노총 거듭나는가

(사진/민주노총 권영길 위원장(왼쪽서 세번째)과 한국노총 박인상 위원장(왼쪽서 두번째)이 명동성당에서 굳게 손을 맞잡았다.)

53년 동안 걸쳤던 낡은 옷을 벗어던지려는 것인가. 아니면 생존을 위한 일시적인 몸짓에 불과한가.

45년 창립 뒤 처음으로 총파업에 나서 민주노총과 공조파업까지 성사시킨 한국노동조합총연맹(노총)에 노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5천5백개 산 하 노조, 1백20만 조합원, 합법적으로 등록된 유일한 최상급단체노조라는 외형적인 힘에도 노총은 ‘어용과 관변’이라는 꼬리표를 완전히 떨쳐버 리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총파업 투쟁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날치기 이틀 만인 96년 12월28일. “노동악법 철폐”를 외치며 화학노련, 금속노련을 중심으로 4백86개 단위노조 15만4천명이 노총 역사상 최초의 총파업에 나서 민주노총과 함께 총파업 투쟁의 한축을 떠받쳤다. 또 1월1 4일에는 박인상 노총위원장이 민주노총 권영길 위원장과 “노동법, 안기 부법이 무효로 될 때까지 투쟁의 대열을 함께 하겠다”고 선언, 15일 ‘ 공조파업’을 결행해 노동계의 통일을 과시했다.

변화된 모습만큼 노총은 많은 성과를 얻어냈다.

‘민주세력과 연대한 총력투쟁’을 통해 어용과 관변이라는 비난을 상당 히 씻어버리고 노총의 정치적 위상을 강화했을 뿐 아니라, 복수노조 허용 시기를 3년 동안 유보해 날치기 법안에 대한 투쟁을 최소화하려던 정부의 ‘노동계분할 통치전략’을 마비시키는 전술적 승리도 가져왔다. 또 미조 직 노동자나 보수적 색채가 짙은 노동자들에게 “노총까지 저러는데”라 는 정서를 불러일으켜 민주노총의 강성이미지에 반감을 가졌던 노동자들 에게까지 민주노총의 투쟁목표를 정당화하고 국민여론을 획득하는 데 크 게 기여했다.

하지만 여전히 한계를 드러냈다.

먼저 이번 투쟁이 “노총도 일어서라”는 일선조합원들의 압박에 밀린 선 택이었다는 측면도 강해 조직규모와 인원의 우세에도 총파업 투쟁의 주도 력과 성과를 민주노총에게 내주면서 상대적 약화를 감수해야 할 처지다. 실제 1단계 총파업 뒤 냉각기간을 가지며 사실상 파업투쟁을 중지하고 있 던 지도부와는 달리 충남지역 노총 등 지역단위 노조에서의 민주노총과 연대바람이 지도부를 움직여 14일,15일 이틀 동안의 공조파업이 결정됐다 . 더욱이 역량에 대한 정확한 평가없이 진행된 14,15일 파업은 내부 문제 를 드러냈다. 당초 파업을 계획했던 5, 7, 8호선 도시철도노련과 버스노 련 등 핵심 산하노조가 상부의 총파업 지침을 어기고 파업전선에서 이탈 하는 등 지도력의 한계를 보였다. 더욱이 이 과정에서 노총의 일부 조직 이 이탈하는 등 노총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마저 드리우고 있다.

지난 16일 한국은행노조가 “노동계의 총력투쟁을 외면한 채 파업불참 결 정을 내리는 등 유약하고 미온적인 태도로만 일관해 노동자의 대의와 명 분을 저버렸다”며 한국노총의 핵심 산별노조인 금융기관노동조합연맹을 탈퇴한 데 이어 신한은행 등 37개 금융기관 노조가 금융노련을 탈퇴했다. 노총의 조직이탈이 시작된 것이다.

노총 최대열 홍보부장은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총파업 투쟁과정에서 사 실상 하부 조합원의 요구에 밀린 측면도 있고 이 과정에서 파업에 참여한 노조나 참여하지 않은 노조나 많은 후유증을 앓고 있다”고 말했다. “왜 몸사리고 안 나섰냐”는 질책과 민주노총과 연계한 정치투쟁 참여를 문제 삼는 등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한계와 논란이 노총 노선의 급격한 변화나 조직력 약화로 이 어지리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노총 지도부는 이번 투쟁의 불가피성과 위상강화 등 성과를 앞세워 조직정비에 나서는 한편 내부의 불만을 잠재 우기 위한 변신을 모색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노총 지도부는 18일부터 하부조직의 의견을 수렴하고 내부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전국단위노조 순 회에 나섰다.

사상 처음 총파업에 참여해 어용의 색깔은 한꺼풀 벗어던졌지만 파업이 남긴 내부혼란과 민주노총의 위상 강화라는 변화된 상황 앞에서 변신을 계속해야 할 처지이다.

신승근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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