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997년01월30일 제 143호 한겨레21

민주노총의 대약진

총파업으로 정치적 위상을 가장 높인 집단은 두말할 것도 없이 전국민주 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위원장 권영길)이다. 민주노총은 23일 동안 연 인원 3백여만명이 참여하는 총파업을 주도해 사회적인 입지를 비약적으로 넓혔다. 이는 한국노동운동의 미래에서 민주노총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 을 가늠하게 한다.

사회정치적 성과는 기대 이상으로 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파 업에 대해 최초로 긍정적인 사회여론을 얻어낸 것은 가장 큰 성과였다. 이에 따라 파업 때마다 ‘국민생활 불편론’을 들이밀며 여론몰이에 나서 곤 했던 정부의 논리가 이번만큼은 맥을 추지 못했다. 완급을 조절하며 파업을 효과적으로 장기화한 민주노총 지도부의 전술도 국민여론을 쉽게 되돌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민주노총의 인지도와 지지도가 높아진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민주노총은 자체 여론조사 결과 70% 이상의 국민이 민주 노총에 대해 알고, 또 파업에 대해 지지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비민주적 인 날치기에 즉각적인 파업으로 맞서 정부에 강력히 저항하면서 국민여론 과 국제여론까지 등에 업고 파업을 진행시키는 모습은 국민이 기댈 수 있 을 ‘저항의 본대’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민주노총은 23일동 안 1억원 이상의 국민성금이 모였다고 밝히고 있다. 대구의 한 빵집가게 주인은 트럭에 만두를 날라왔고, 퇴근하던 시민은 전화로 투쟁전술을 제 안했다. 각계각층의 창조적인 지혜와 성원이 민주노총으로 모인 것이다. 조직내부적인 성과도 지나칠 수 없다. 민주노총은 이번 투쟁을 통해 조직 의 지도중심을 확고히 세웠다. 초기에는 우왕좌왕하는 모습도 보였지만 전반적으로 지도부의 지도는 일사불란하게 지켜졌다. 날치기가 있던 날 바로 파업에 돌입하는 과감성과 탄력성도 돋보였다. 조합원들의 정치의식 이 높아진 것은 어쩌면 가장 중요한 수확인지도 모른다. 보수야당에 대한 조합원들의 태도가 명확해진 것도 특징이다. 민주노총의 한 간부는 “투 쟁은 우리가 하고 성과는 야당이 가로채는 과오를 되풀이하지는 않을 것 ”이라고 밝혔다. 지도부는 파업투쟁의 성과를 정치세력화로 갈무리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민주노총은 조직의 급속한 확대를 예상하고 있다. 한국노총 소속 금 융노련을 뛰쳐나온 38개 노조(조합원 2만여명)들은 이미 민주노총 가입을 추진중이다. 한국노총 산하의 택시노련도 민주노총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 무노조사업장이나 휴면노조, 신규노조들은 민주노총에 가입할 가능성이 이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민주노총 이상현 조직국장은 “1백만의 조합원 으로 올해 대선에 임하겠다”는 말로 자신감을 표시했다.

민주노총의 성장은 87년 이후 10년 동안 쌓인 민주노조운동의 경험을 밑 거름으로 하고 있다. 구속과 수배를 두려워하지 않는 투쟁력과 조직력은 노동운동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민주노총은 90년 전국노조협의회(전노협) 와 94년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전노대)로 이어지는 투쟁적인 민주노조 운동의 맥을 이어 지난 95년 11월 출범했다. 출범 당시 40만명이던 조합 원수는 1년 만에 50만명으로 늘었다.

그러나 걱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파업은 시작하는 것보다 마무리하기 가 더 어렵다. 총력투쟁 국면이 일상투쟁 국면으로 바뀌면서 나타날 수 있는 지도력의 한계, 투쟁목표를 이루지 못했을 때 맞게 될 내부비판 등 은 지도부를 곤경에 빠트릴 수도 있다. 또 13.4%라는 낮은 노조조직률이 나 아직 미약한 정치의식을 무시하고 섣부른 정치세력화를 이루려다 풀뿌 리조직들이 무너지는 상황도 예상할 수 있다.

민주노총이 총자본에 맞서는 총노동의 확고한 중심으로 튼튼히 뿌리내리 기 위해서는 아직 더 많은 피와 눈물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김창석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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