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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1997년01월30일 제 1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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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월8일 방송사 노조원들은 동아일보사로 몰려가 날달걀을 던졌다.)
1997년 1월16일 정오. 한국언론사상 처음으로 전국 25개 신문·방송·통 신사 1만3천여명이 시한부파업에 들어갔다. 올해로 출범 10돌을 맞는 언 론노동운동에 새 이정표가 마련되는 순간이었다.
1시간 뒤인 오후 1시 서울 탑골공원.
서울지역 언론인 2천여명이 한자리에 모여 노동악법 철폐 및 민주언론 쟁 취를 위한 ‘신문·방송노동자 총결의대회’를 열었다. 같은 시각 부산역 광장과 전남일보사 앞에서도 언론총파업결의대회가 열렸으며 전주, 마산 ·창원, 제주에서도 독자적인 연대집회가 열렸다.
역사적 성과 뒤에 숨은 한계
“날치기로 유린당한 국민주권과 질식당한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해 우리 는 역사적인 전국 언론사 연대총파업의 빛나는 깃발을 올렸다. 김영삼 대 통령의 얼굴이 가득하던 화면으로부터, 정부 발표만이 넘쳐흐르던 지면으 로부터 우리는 영원한 결별을 고한다. 그 지면과 화면을 생산의 주역인 노동자와 농민의 얼굴로,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국민의 얼굴로 채울 것을 엄숙하게 선언한다.”
이날 파업현장에서 발표된 언론노련의 결의문이다. 언론노동자들의 결기 서린 결의문에서 엿볼 수 있듯이 분명 이번 파업은 한국언론노동운동사에 한 획을 그었다. 그러나 이날 선언적으로 발표된 결의문이 언론총파업의 한계를 동시에 드러내주고 있는 것은 역설적이다. 총파업 이후는 물론 당 일에도 여전히 우리 신문지면과 방송화면은 지난날과 다름이 없었다. 무 엇 때문일까. 그 역사적 의미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이번 파업 에 내재된 문제점들을 따져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먼저 지적되어야 할 것은 신문사 총파업이 방송과 달리 4시간 만의 시한부 파업으로 그쳤다는 점이다. 한국방송공사·문화방송·기독교 방송·교육방송 4개 방송사노조는 지난 연말에서 연초에 걸쳐 각각 파업 찬반투표를 거친 뒤 지난 1월7일 무기한 동시 전면파업에 들어갔다. 물론 방송도 전파가 중단됐다거나 방송시간이 줄어든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한 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히 방송4사는 견고한 연대 속에 파업 에 들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이로 인해 일부 프로그램이 결방되어 대체되거나 파행방송이 이루어졌다. 반면 신문사의 경우 대부분 자신들의 파업소식을 제대로 신문에 반영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4시간의 시한부 파업마저 부분파업으로 국한했다. 이 점에서 방송과 신문의 차이가 큰 것 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신문파업은 시한부파업이라 하더라도 그 의미는 결코 축소될 수 없다. 자자손손 대를 이어 특정가문이 독점적으로 세습해오고 있는 신문 사의 경우 방송과는 노조활동 여건이 크게 다르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번 시한부파업에 전국 20개사가 참여한 사실은 주목할 만한 진전임에 틀 림없다. 언론노련이 “방송과 신문의 조직역량의 차이가 있음에도 함께 연대파업을 이루었다는 것은 조직적 성과”라고 자체평가한 것도 같은 맥 락이다.
더구나 신문기자들의 파업참가는 단순히 파업 이상의 정치적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신문기자들은 과거 80년 5월과 90년 4월 두차 례에 걸쳐 제작거부 결의를 했었다. 80년 5월 한국기자협회가 주도한 제 작거부 결의는 며칠간 지속된 뒤 결국 기협 집행부가 모두 구속되고 제작 거부에 참여한 기자들의 대량해직으로 마무리되었다. 반면 90년 4월 한국 방송공사 노조가 서기원 사장퇴진을 내건 방송민주화 투쟁 때 공권력의 투입에 항의해 결의한 제작거부는 선언적 의미가 컸다는 점에서 이번 총 파업과는 궤를 달리한다.
서로 눈치보며 늑장·유보
언론총파업이 제한된 수준에서나마 이처럼 획기적으로 실현된 배경에는 언론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최근 언론계에 몰아닥치고 있는 명예 퇴직 바람이 큰 몫을 했다. 노동법 개악으로 그나마 명예퇴직도 아닌 정 리해고가 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여느 직종보다 근무시간이 불규칙적인 언 론사의 경우 변형근로제가 도입된다는 것은 당장 피부로 느낄 만한 개악 임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 언론인들의 과로사 급증과 신문판매 시장에서의 경쟁과열로 살인까지 일어난 지난해 `‘신문전쟁’을 떠올려 보아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많게는 한 신문사에서 수백여명 적게는 수 십여명이 지난해 명예퇴직당한 것도 무시할 수 없는 파업 참가 요인이 됐 다.
또다른 문제점은 이번 신문총파업에 <한겨레> <한국일보> <문화일보> <서 울신문> 등 서울지역 종합일간지들을 포함해 전국에서 20개 신문사가 대 거 참여했음에도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3개 신문이 불참했다 는 사실이다.
이들 3개 신문은 우리 신문시장을 거의 70% 가까이 독점하고 있으며 지난 해 `‘신문전쟁’의 당사자였기에 더욱 그렇다. 3개 신문 노동조합은 서 로 상대방의 눈치를 보며 파업찬반투표에 늑장을 보이거나 아예 유보하고 또 그 과정에서 개악된 노동법을 내년 10월까지 적용하지 않는다는 이면 합의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사이기주의에 젖어 언론인으로서의 의무보다는 자신들의 신문에 대한 권리만을 지나치게 의식했다는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들 파업에 불참한 신문사들이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신문재벌과 재벌신문들로서 여론 왜곡을 주도하고 있는 점에 있다.
따라서 노동법 개악반대 언론총파업이 일정한 성과를 거둔 것에 대한 객 관적 평가 위에 그것이 지니고 있는 한계를 정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 이는 파업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점에서도 그러하거니와 언론노동 운동의 질적 발전을 위한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언론노련은 지난해 날치기가 있자 곧 기자회견을 열어 신문·방송 총파업 결의를 하면서 “파업관련 보도에서 가장 왜곡이 심한 언론사는 노동자 및 시민단체와 연대하여 항의운동과 불매운동 등 물리적 제재에 나서겠다 ”고 `‘경고’했다. 이는 단지 선언에 머물지 않았다. 지난 8일과 13일 의 <동아일보> <조선일보> 앞 항의시위와 날달걀투척은 그 `‘실천’이었 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언론노련의 이런 방침이 하루이틀 회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언론개혁을 위해 언론 밖의 독자·시청자들과 연대해 나가겠 다는 확고한 정책방향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이다.
수용자들, 돌팔매질을 준비한다
두루 알다시피 한국 노동운동의 성숙에 가장 큰 걸림돌은 정치권력 못지 않게 권력과 손잡은 언론이었다. 이번 총파업 관련 보도는 물론 안기부법 및 노동법 개정과정에서도 신문재벌들과 재벌신문들의 논조는 완전히 권 력과 자본쪽에 편향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 신문들의 논조를 내부에서 견 제할 노동조합마저 신문총파업에 불참했다는 것은 수용자운동의 중요성을 그 어느 때보다 부각시켜준다.
75년의 동아·조선사태가 학생들의 언론에 대한 돌팔매질에서 시작되었다 는 사실은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손석춘 기자/ 한겨레 여론매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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