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997년01월30일 제 143호 한겨레21

정부투자기관도 파업한다

(사진/노동법 개정안의 칼날에 정부투자기관 노동자들도 자유로울 수 없다. 1월18일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정부투자기관 노동조합연맹 집회.)

“개혁의 탈을 쓴 정부의 공기업 통제방침이 연일 전방위로 쏟아지고 있 다.” “인원감축, 임금동결, 총액 임금제, 민영화, 감사원 감사 등의 형 태로 옥죄고 있는 정부의 공기업 정책은 이번 노동법 개악으로 더욱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정부여당의 노동법 개정이 민간기업 못지 않게 공기업인 정부투자기관에 도 위협적이라는 정부투자기관 노동조합연맹(정투노련)의 노항래(37) 정 책기획국장의 항변이다.


8개기관 노동조합 쟁의발생 결의

이러한 위기의식을 반영하듯 지난해 12월26일 새벽 노동법개정안이 국회 에서 통과된 직후 한국관광공사, 주택공사 등 8개 정부투자기관 노동조합 은 “날치기 처리로 조합들의 근로조건이 현저히 저하될 위기에 처해 있 어 조합원들의 근로조건 유지와 개선을 목적”으로 쟁의발생을 결의하고 노동부에 신고했다. 1월21일까지는 각 기관별로 파업찬반 투표를 하는 것 으로 예정돼 있어 이들 공기업으로서는 예전에 보기 드물게 강경한 노동 법 개정에 대한 반대방침을 설정해 놓았다.

이와 관련해, 정투노련의 한 관계자는 “쟁의 발생을 결의할 때 조합원의 80% 이상이 찬성했음을 감안하면 파업찬반투표에서도 높은 찬성률이 예상 된다”고 밝혔다. 그는 또 “공무원과 다름없이 보수적인 것으로 알려진 정부투자기관의 직원들이 전면 파업을 결의한다는 것은 이들의 위기의식 이 상당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장대익 정투노련 위원장은 “정부투자기관 직원들은 그동안 민간기 업과 다른 안정된 노동조건을 누려왔다”면서 “솔직히 적어도 80년대까 지 우리 직장은 안정되고 근로조건도 남부럽지 않은 직장이었다”고 말했 다. 그러나 장 위원장은 “최근 수년 동안 우리가 과거에 누려왔던 이런 ‘호사’는 대부분 사라졌다”며 “어쩌면 이런 현실이 오늘의 노동조합 을 있게 했고 정부의 노동악법을 민간기업 못지 않게 반대하고 있는 이유 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정부투자기관의 예산, 조직, 평가, 경영 전반의 실권을 쥐고 있는 정부는 지난해 4월부터 정부투자기관의 노동조합 전임자를 단계적으로 축 소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같은해 10월25일 재경원 장관이 주재하는 정부투 자기관 경영평가위원회는 ‘97년도 정부투자기관 예산편성공동지침’을 통해 정부투자기관 임직원의 올해 인건비와 경상경비 총액을 “10% 경쟁 력 향상”차원에서 동결키로 했다. 이런 배경 때문에 노조활동을 하는 이 들은 노동법 개악의 징조가 이미 공기업에서 먼저 시작됐다고 주장할 만 큼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희생양 될지 모른다” 걱정

설상가상으로, 정부투자기관 직원들은 노동법 파문에 따른 민간기업의 노 조원을 무마하면서 노동법 개정의 명분을 얻기 위한 ‘희생양’으로 공기 업에 메스를 가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많다. 한국관광공사 노동조합의 지동석 쟁의국장(35)은 “정부여당이 노동법 개정을 위한 명분으로 경제 회생을 위한 경쟁력확보 차원의 불가피한 조치로 강변하고 있는 만큼 정 부 스스로 솔선 수범하는 모습을 먼저 보여주려고 할 것이다”면서 “대 선을 앞둔 시점에서 공무원의 인심을 잃어 외양간을 태우기보다는 다루기 만만한 정부투자기관의 구조조정, 민영화 등을 통한 대규모 긴축을 감행 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또한 정투노련의 한 관계자는 “정부는 이미 13%나 증액된 올해 예산안을 확정해 놓았고 공무원 임금도 이미 6% 인상을 결정했다. 올해 선거를 앞 둔 편법임금인상 등을 감안할 때 적지 않은 실질임금 인상이 예상된다” 면서 “비정부분야는 긴축이고 정부는 증축인가”, “자신의 허리띠는 풀면서 남보고 허리띠를 조이라는 이런 이기적인 정책으로 어떻게 국민을 통합할 수 있겠는가?”고 정부의 설득력 없는 정책을 혹평했다. 노동법개 정의 파문으로 노동계의 또다른 변수로 떠오른 ‘정부투자기관 노동조합 연맹’의 대응이 주목된다.

임을출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30일


커버스토리 포커스 문화시대 특집 지난호 전체보기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