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1997년01월30일 제 143호
|
|---|
(사진/서울 종로구 재동에 위치한 헌법재판소. 두 법안의 위헌여부에 대한 판단을 피해가기 어렵게 됐다.)
헌법재판소는 개정 노동법과 안기부법의 위헌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릴 것 인가, 아니면 계속 결정을 미루거나 헌재가 개입할 사안이 아니라며 피해 갈 것인가.
지난 1월16일과 17일 창원지법과 대전지법이 잇따라 개정 노동법과 안기 부법에 대한 위헌심판을 헌재에 제청함에 따라 헌재에 쏠리는 시선이 갈 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이번엔 각하되기 어려울 것”
헌재가 느끼는 부담의 강도도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다. 지난해 말 이 두 법이 날치기 통과된 뒤 한 헌재관계자는 “이것도 또 헌재로 오는 것 아니냐. 제발 헌재로 넘기지 말라고 정치권에 말좀 해달라”며 엄살을 부 리기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며칠 뒤 야당의원들은 바로 두 법의 날치기 통과가 국회 의장의 직권남용이라며 헌재에 권한쟁의 신청을 냈다. 그러더니 지난 1월 9일 국민회의의 율사 출신 의원들은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청구인으로 내 세워 다시 개정 노동법의 위헌여부를 가려 달라는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재판연구관에게 이 두 사건을 배당해 연구검토 작업에 들어갔으나 연구결론이 나오지 않아 아직까지 재판관들의 평의는 한번도 열리지 않았 다. 그러고 있는 와중에 법원에서 이틀 동안 연속으로 두 법에 대한 위헌 심판을 제청했다.
권한쟁의, 헌법소원, 위헌심판제청 등 이 두 법과 관련해 낼 수 있는 모 든 형태의 헌법재판 신청이 다 들어와 버린 것이다. 더이상 차일피일 미 루기가 힘들어진 셈이다.
우선 권한쟁의 사건과 관련해서 보면 지난 95년 헌재는 ‘국회의장과 국 회의원간에는 헌재가 판단할 권한쟁의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전원재판부 의 판단으로 이를 각하한 일이 있다. 당시의 사건은 이번 것과 마찬가지 로 날치기 통과와 관련해 야당의원들이 “국회의장이 직권을 남용해 국회 의원의 권한을 침해했다”며 낸 권한쟁의 사건이었다.
따라서 헌재가 이번 권한쟁의를 각하하지 않으려면 우선 각하할지, 아니 면 본안 판단에 들어갈지를 가지고 재판관들의 평의를 거쳐야 한다. 이 평의에서 9명 재판관 가운데 6명의 재판관이 본안판단에 들어갈 수 있다 는 의견을 제시해야 본안판단에 들어간다. 따라서 가능성이 많지 않다. 야당 의원들도 이 점을 알고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청구인으로 해 헌법 소원을 다시 낸 것이다.
하지만 두 법안의 날치기 통과 뒤 노동계를 비롯한 각계의 시위가 거세지 자 헌재 안의 분위기도 다소 달라지고 있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이 관 계자는 “날치기 통과도 한두번이지 이렇게 자꾸 일어나 국민적인 논란이 되면 헌재로서도 더이상 남의 일로 볼 수 없는 것 아니냐는 견해가 재판 관 가운데서 확대되고 있는 분위기”라면서 “권한쟁의 사건이 반드시 각 하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다음으로 창원지법과 대전지법이 제청한 위헌심판도 본안판단을 받을지, 아니면 각하돼 버릴지 아직 쉽게 판단하기 힘들어 보인다. 두 법원에서 위헌심판을 내게 된 본안재판에 이 법안의 위헌 여부가 얼마나 관련되는 가 하는 ‘`재판의 전제성’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창원지법은 현대정공이 불법파업을 금지시켜 달라며 낸 가처분 신청사건 에서 위헌심판을 제청했고 대전지법은 불법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영 장이 청구된 노동자의 영장을 심사하면서 위헌심판제청을 냈다. 두 법원 모두 파업이 불법인지 여부를 가리기 위해서는 파업의 원인이 된 개정 노 동법, 안기부법이 위헌인지 아닌지를 알아야 한다는 이유로 위헌제청을 냈다.
그러나 두 법원의 논리구성은 많이 다르다. 우선 창원지법은 이번 파업이 불법이라고 하나 위헌법률에 대한 저항권 행사라면 정당한 파업이 될 수 있다는 일부 학계의 견해가 있으니 위헌법률인지 아닌지를 알아야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법원에서 정당한 저항권 행사는 불법파업이 아니라는 견해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이 아니라 우선 위헌인지에 대한 헌재의 판단을 받아보고 위헌결정이 나면 그때 가서 ‘저항권’논리의 옳고 그름을 판단 하겠다는 것이다.
창원지법과 대전지법의 논리차이
이에 반해 대전지법은 파업이 불법이 아닐 수 있다는 논리를 `정당한 ‘ 저항권 행사’에서가 아니라 “근로조건과 관련된 법안의 제정 또는 개정 에 반대한 파업은 노동법이 보호하는 쟁의행위의 범위에 포함된다고 봐야 한다”는 노동법학계 일각의 견해에서 찾았다. 대전지법은 이에 따라 개 정 안기부법은 위헌심판제청 대상에서 빼고 개정 노동법에 대해서만 위헌 제청을 냈다.
`파업이 ‘불법이냐 아니냐’는 문제에서 `개정 노동법(또는 노동법과 안 기부법)이 ‘위헌이냐 아니냐’는 문제로 넘어가는 논리가 단순하지만은 않다. 따라서 ‘재판의 전제성’에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한 헌재관계자 는 “근로조건과 관련된 법안을 둘러싼 파업은 불법파업이 아닌 것으로 보는 선진국의 예가 있다”면서 이들 위헌제청이 각하되지 않고 본안판단 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이밖에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낸 헌법소원은 각하될 가능성이 별로 없어 헌재로서는 결국은 두 법안의 위헌여부에 대한 판단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임범 기자/ 한겨레 사회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