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문인들의 민심기행
1997년01월30일 제 143호 한겨레21

일산 신도시/ “전두환하고 뭐가 다르죠?”

유시춘/ 소설가

일산신도시는 성인주민 70% 이상이 대졸학력을 지녔으며, 문화 예술인과 교수, 신문·방송인들이 대거 몰려사는 곳이다. 어느날 갑자기 땅 속에서 솟아오른 듯한 신도시의 거리, 아파트, 잔디와 나무들은 깨끗하고 젊고 싱싱해 보인다. 인근에 공장이 없기에 오염과는 거리가 멀다. 명실상부한 중산층이 집결한 이 도시의 주민들은 파업을 보는 눈이 다분히 객관적이 고 제3자적이다. 정발산 산자락 빌라촌의 한 부녀회장은 대뜸 말한다. 56 살의 그녀는 자신이 지난 대선에 YS를 찍었음을 전제했다. “노동자들 파 업하는 거 그거 이유있는 항변인 거 알아요. 그렇지만 어디 그 사람들 뜻 대로 되겠어요. 국민이 무소속, 야당으로 입후보한 이에게 표를 줬는데 그게 무슨 대수예요. 여당에서 맘대로 빼가잖아요. 국가권력이라면 맨 윗 물인 셈인데 윗물이 저 지경이니 아래에서 시비곡직 가리는 게 정당하게 될 리가 있나요.”


“깡패가 따로 없네요”

5대째 고양에서 사는 한 토박이 식당주인은 정부의 처사가 깡패들과 다름 없음을 공격한다. 조그만 식당 하나를 경영하는 데에도 손님들의 입맛, 음식값의 적정여부, 서비스의 질 등을 쉴새없이 살피고 고민하는데 하물 며 나라의 경제를 떠받치는 기둥의 하나인 노동자 생존문제를 그렇게 새 벽날치기로 처리할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거기다가 이렇게 문제가 심각 하게 확산일로를 거듭하고 있다면 솔직히 잘못을 시인하고 다시 여·야 각계 전문가들이 머리 맞대고 좀더 나은 길을 찾으면 될 터인데 대화조차 않겠다니 그 무슨 앞뒤 막힌 소인배의 짓거리냐는 것이다.

교회에서 만난 한 주부는 불안감을 솔직히 털어놓는다.

“원초적인 잘못은 날치기한 여당에 있죠. 그런데 파업이 길어지다 보면 누구나 불안해지죠. 정부는 노동자를 무시하고 노동자들은 또 결과적으로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이런 게 콩가루집안 아닌가요. 자세한 내용은 모르 겠지만 서로 타협하고 조금씩 양보해서 새 법을 만들어야지요. 그게 민주 주의 아닌가요. 이번 여당처사는 군사독재하고 하나도 다를 게 없잖아요. ”

파출부 용역업체인 복지회 소장은 좀더 솔직하고 현실적이다. “우리가 약 60여명 파출부회원이 있는데요. 새해 들어 절반이 놀아요. 식당손님이 뚝 떨어지고 웬만하면 가정에서도 파출부를 안 써요. 그만큼 위축되어 있 다는 얘기죠. 대통령이 왜 그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요. 그렇게 날치기해야 할 만큼 새 노동법이 바쁜 것도 아닐 테 고. 한마디로 국민을 핫바지로 보는 처사지요. 가정사도 부부지간, 가족 지간에 의논하고 합의해서 하는 게 순리인데 나라일을 그 지경으로 하다 니. 피는 못 속이는 모양이지요.”

결국 YS도 군사정권과 야합해 권력 잡았으니 그 배운 기술이 어디로 가겠 느냐는 말이 되겠다.

필자와 대화한 이들은 공교롭게 모두 지난 대선에 YS를 뽑은 이들이었다. 그들은 분명 민주세력의 한 구심이었던 YS가 너무 타락했다고 생각한다. YS의 권력만능주의를 비판하는 민심은 새로운 정치세력과 새로운 풍토를 열망하고 있다. 대안은 보이지 않고 현실정치는 비상구가 없는 미로와 같 다. 북한 주민이 아사의 위기에 직면했음에도 오늘 내 아이의 수능점수와 저녁식탁의 안온함만이 초미의 관심사인 중산층 주부들. 그들이 의외로 파업에 대해 그리 비판적이지 아니한 걸 보고 필자는 희미한 희망의 빛을 감지했다.

“이 추운 겨울에 걸인 하나가 길거리에서 동사해도 그것이 우리 모두의 책임”이 되는 도덕적 사회로 가는 일이 아주 절망적인 것만은 아님을.

유시춘/소설가
50년 경주에서 남.
고려대 국문과 졸업.
창작집 `우산셋이 나란히' `안개너머 청진항' 등 다수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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