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1997년01월30일 제 143호 한겨레21

어정쩡 자유로운 사회

마광수/ 연세대 강사

자유가 소중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처럼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자유의 소중함을 되 풀이하여 강조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 자유 는 언제나 구두선(口頭禪)으로만 외쳐질 뿐, 자유보다는 통제가, 개인보 다는 전체가 사실상 중요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모호하기 짝없는‘방종’‘퇴폐’‘음란’

사회제도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개인의 자유를 신장시키기 위해서 만들어 진 것이고, 법이란 것도 역시 정의의 이름으로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내가 강의중에 구속된 ‘ 즐거운 사라’사건만 두고 보더라도 국민 개개인의 자유권이 침해당하는 일이 너무나 자주 일어난다. 이것은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법이든 사회제도든 또는 윤리든 도덕이든, 그것은 항상 개인의 자유발전 을 목표로 개조돼 나가야 한다. ‘전체’를 위해서 ‘개인’의 희생을 당 연시하는 풍토에서 민주주의의 발전은 요원한 일이다.

흔히들 “자유는 좋지만 방종은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방종’만 큼 모호한 말도 없다. 대낮에 카페에서 키스하는 남녀를 목격했다고 할 때, 내 경우에 그것은 그저 ‘부러운 일’에 속한다. 그러나 아주 수구적 인 도덕관을 갖고 있는 이가 그런 광경을 목격했다고 하면 그건 필시 ‘ 방종’으로 간주될 게 틀림없다. 록 카페에서 남녀가 신나게 몸을 비비고 흔들어대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내게는 그저 부럽기만한 광경이 어떤 사 람에게는 ‘방종’으로 비쳐질 수 있는 것이다.

‘방종’‘퇴폐’‘음란’등 모호하기 짝이 없는 단어들이 활개치며 개인 의 자유권을 제약하고 개성이 강한 개인이 ‘모난 돌이 정 맞는’식으로 피해를 입는 곳이 바로 우리 사회라면 지나친 판단일까? 어떤 형태로든 ‘복지부동’을 하지 않으면 불안할 수밖에 없는 사회, 자유보다 ‘절제 ’를 외치며 사람들을 항상 정체모를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사회 가 바로 우리 사회라면 그것 역시 지나친 자기비하일까.

자유의 가치를 폄하하게 만드는 사회적 요인으로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지나치게 경직된 종교적 편견이요, 하나는 균제(均薺)와 통일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집단주의 윤리이다. 이런 요소들이 합쳐져 당연한 상 식처럼 될 때, 개개인의 창의력은 쇠퇴하고 문화발전은 정체상태에 이르 며, 교육은 오직 ‘인내력 배양’에 따른 ‘두고보자’식 원한쌓기가 되 고 만다.

한때 ‘자유주의자’라는 말이 욕설처럼 사용된 적이 있었다. 70, 80년대 의 일이다. 그때 좌파이론에 경도된 진보적 지식인들은 자유주의자나 개 인주의자를 투철한 역사의식이 없는 향락주의자 정도로만 취급했다. 그러 나 옛 소련이 무너진 지금, 자유주의는 새로운 조명을 받게 되었고, 한국 의 진보적 지식인들도 생각의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옛 소련은 국가 는 자유롭되 개인은 자유롭지 못한 사회였기 때문에 붕괴될 수 밖에 없었 다. 히틀러의 나치즘 역시 국가의 자유만 외치고 개인의 자유를 평가절하 했기 때문에 망했고, 지금의 북한 역시 그러한 이유 때문에 자중지란을 겪고 있다.

서양 중세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리스시대부터 로마시대까지 이어져 내려온 자유주의 정신과 개인존중의 정신이 중세교회의 교리에 의해 억압 되면서부터 암흑시대가 시작됐다.

자유는 그것이 설사 방종이 될지라도 ‘범죄’가 아닌 한 매도되거나 단 죄돼서는 안 된다. 자유는 그것이 설사 음란이 될지라도 남에게 구체적인 피해를 입히지 않는 한 매도되거나 단죄돼서는 안 된다.

존 스튜어트 밀은 그가 쓴 <자유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권력이 집단에 속한 개개인을 위해 힘을 행사할 때, 그것이 비록 다른 사람에게 해악을 끼치는 것을 예방한다는 명분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즉 다시 말해서 선 의의 의도에 의해 권력이 행사된다 하더라도, 그러한 권력의 행사는 절대 로 정당화될 수 없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자유의 제한’을 걱정한다

우리나라에는 ‘자유가 남용될까봐’걱정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 런 사람들은 대개 사회지도층 인사거나 엘리트 지식인들이다. 하지만 나 는 ‘자유의 남용’보다 ‘자유의 제한’을 걱정한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말하며 자유를 제한할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자유 만이 책임감을 동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어정쩡한 자유’ 야말로 신경질을 불러일으켜 무책임한 행동을 촉진시키는 것이다.

국민 개개인들에게 좀더 많은 자유가 주어질 수 있을 때, 그때 비로소 우 리나라는 경제발전은 물론 문화적·정치적으로도 선진국이 될 수 있을 것 이다. 자유는 정치·경제·문화 전반에 걸쳐 권력의 신장을 촉진시키는 가장 효과 빠른 영약(靈藥)이기 때문이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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