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영화샘' 동아리	1997년01월23일 제 142호

영화샘에서 솟구치는 저예산영화

“영화란 영상을 통해 환상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꿈을 가진 이라면 누구 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거죠.”

영화를 보다 지친 사람들이, 영화를 직접 만들기 위해 모였다. 컴퓨터통 신 유니텔의 영화만들기 동아리 ‘영화샘’ 회원들이 첫작품 <비가 올 확 률>의 제작발표회를 가진 것이다. 제작발표회 자리는 설레임과 자신감이 교차했다. 촬영 김석범, 시나리오 김종헌, 여배우 김자영, 남자배우 김현 수, 감독 최인규, 제작책임 김양협 등 영화제작진의 표정은 더욱 그랬다. <비가 올 확률>은 삐삐, 전화, 팩스, 컴퓨터 등 문명의 이기가 갖춰진 오 피스텔에서, 이 기계들이 내는 소리에 갇혀 지내는 30대 남자의 이야기다 . 15분 남짓한 화면은 온통 기계음으로 채워진다. 남자는 여기저기서 울 려대는 그 소리를 쫓느라 바쁘다. 그러나 옆방에서 들려오는 여자의 흐느 낌 소리는 듣지 못한다. 남자는 다음날 구급차로 실려가는 여자의 주검을 무표정하게 바라본다.

“문명이 만들어낸 이기에 갇혀 생명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모습을 소리라는 매개체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돼지가 소리에 빠진 날’이라고나 할까요.” 시나리오를 맡은 김종헌씨의 말이다.

영화는 회원들이 대부분 회사원인 점을 감안해 주로 토·일요일에 촬영할 계획이다. 편집을 거쳐 오는 3월이면 모습을 드러낼 것 같다. 일단 회원 들에게 공개한 뒤 상업적인 성격을 띠지 않은 곳이면 어디든 달려갈 계획 이다. “진짜 저예산영화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겠습니다.” 이들의 각오 가 당차다.

이태희 기자/ 한겨레 국제부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