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고스트 맘마	1997년01월23일 제 142호

영생불사의 사랑 담은 모성 멜로드라마...페미니즘은 없다

(감독:한지승 주연:최진실, 김승우)

어머니! 이 단어의 울림처럼 강렬하고 애처로운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것 이 또 있을까. 온갖 고통과 희생의 감내자로서의 어머니. 자식과 남편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바치는 어머니. 아마도 어머니에 대한 이 뿌리 깊은 신화는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서를 가장 민감하게 자극하는 것이리라. 그래서 위대한 모성애를 기반으로 한 모성 멜로드라 마들은 어김없이 한국 영화관객들의 정서를 강타했고 경이로운 관객동원 기록으로 아로새겨져 왔다.

하지만 극도로 다원화되고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지는 90년대 말에도 위 대한 모성 멜로드라마의 힘은 여전히 유효할 것인가? 가족을 위해 헌신하 기보다는 자신의 자아를 실현하는 삶의 방식을 택하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여성상을 칭송하는 이 시대에도 거룩한 모성애를 강조하는 드라마가 여전 히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을 것인가? 한 젊은 감독의 데뷔작, <고스 트 맘마>가 뜻하지 않게 이 흥미로운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 인주와 지석은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을 정도로 행복한 신혼부부이다. 그 런데 어느날 인주가 교통사고로 2살난 어린 아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 혼자 남게 된 지석은 인주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점점 폐인이 되어가고 마침내 자살을 결심하게 된다. 사태가 극도로 악화된 순간 이미 저승사람 이 된 인주가 남편과 자식을 구하기 위해 이승에 나타난다. 그리하여 시 공과 생사를 초월하는 영생불사의 사랑이야기가 전개된다.

한때는 여우같은 아내의 요염하고 깜찍한 이미지로 인기가도를 달렸던 최 진실이 분한 인주는 아주 흥미로운 인물이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기 전에 보여지는 인주의 모습에는 최진실이라는 배우가 가지고 있던 스타 이미지가 그대로 담겨 있다. 그녀는 어린 소녀처럼 응석부리고 재기 발랄하고 애교 넘친다. 그녀는 성적인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매력적인 한 명의 여성이다. 그러나 유령이 되어 돌아온 그녀는 놀랍게 변신한 모습으 로 나타난다. 마치 저승세계에서 현모양처가 되는 특별교육이라도 받고 온 듯이.

죽음의 강을 건너 새로 태어난 인주에게는 성적인 욕망이 거세되어 있고 오로지 한 남자의 아내와 한 아이의 어머니로서의 소임을 다하기 위한 욕 망만이 남아 있다. 인주는 자신과 성관계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로 인해 괴로워하는 남편 지석과 자신이 직접 돌볼 수 없는 아들 다빈 때문에 상 처받지만, 이 모든 문제를 자기 헌신과 희생의 테마 속에서 해결한다. 인 주는 자기를 대신해서 아내와 어머니의 구실을 해줄 수 있는 인물인 은숙 을 찾아내서 은숙과 지석을 연결해 주고 자기는 다시 머나먼 저승세계로 떠나간다. 이 얼마나 감동적이고 눈물겨운 사랑이야기인가. 이런 인주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렇게도 우리를 감동시켜왔던 전형적인 선한 어머니의 모습을 본다.

지금 <고스트 맘마>는 과거에 잘 만들어진 모성 멜로드라마들이 누렸던 영예를 누릴 준비를 하고 있다. 흥행성적은 대체로 호조를 보이고 있고 그 흔한 표절시비도 일어나지 않는다. 관객들은 젊은 남녀의 얄팍하고 이 기적인 사랑 대신에 좀더 크고 자애로움으로 가득 찬 성스러운 어머니의 사랑으로 인해 눈시울을 붉힌다. 그런데도 우리가 이 영화를 보며 못내 꺼림칙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다면 바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우리 눈앞 에 어른거리기 때문이리라.

헌신적인 사랑과 자기희생적인 삶으로 점철된 어머니의 삶 때문에 눈물짓 지만 그 삶의 모습을 완전히 내 것으로 내면화할 수 없다는 사실로 인해 분열하고 갈등하는 동시대 여성의 모습, 그리고 누구누구의 ‘아내’나 ‘어머니’로 불려지기보다는 독립된 하나의 주체로서 불려지기를 바라는 동시대 여성의 욕망.

최미애/영화평론가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