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대
1997년01월23일 제 142호 한겨레21

역동하는 선율, 오페라 4백년

(사진/세계에서 손꼽히는 오페라극장인 이탈리아 밀라노의 스칼라극장.)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누명을 쓰고 수감생활을 하고 있던 팀 로빈스는 감옥 도서관에서 레코드를 구해 처벌을 무릅쓰고 수감자들이 들을 수 있 도록 야외 스피커와 연결한다. 음악이 흘러나오자 체념과 고통에 찌든 죄 수들이(간수까지도)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멈춰 서서 소리가 들려오는 허공을 응시한다. 그때“너무 아름다워 가슴이 아팠다. 쇼생크의 모든 이 는 그때 자유를 느꼈다”는 죄수의 독백멘트가 함께 나온다. 천상의 소리 와도 같던 그 음악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2중창 이다.


온갖 칭송 자자한 가장 사치스런 예술

오페라라고 하면 지레 ‘따분하고 지겨운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 다. 하지만 우린 알게 모르게 많은 오페라를 접하고 있다. 오렌지쥬스 광 고에서 “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라며 눈이 뒤집힐 것 같 은 고음으로 우리들의 간을 녹이는 조수미의 노래도 모차르트의 오페라 < 마술피리> ‘밤의 여왕의 아리아’로 복수에 불타는 여왕이 딸에게 칼을 건네주는 장면이다. 나나 무스쿠리의 목소리가 더 귀에 익은 ‘히브리 노 예들의 합창’도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 에 들어 있는 곡이며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 카를 오르프의 오페라 <카르미나 부라나>의 ‘운명의 여신 이여’, 베르디의 <리골레토> 중 ‘여자의 마음’, <카르멘>의 ‘하바네 라’ 등의 리듬도 우리에겐 익숙하다.

“인간의 지혜가 만들어낸 가장 사치스런 예술”(스탕달) “르네상스 시 대 최후의 가지에 핀 아름다운 꽃”(로망 롤랑)이라며 온갖 칭송을 받고 있는 그 오페라가 올해 4백돌을 맞았다.

‘작품’이란 뜻의 라틴어 ‘Opus’의 복수형인 오페라(0pera)는 성악과 연주 외에도 이름처럼 문학, 풍속, 미술, 건축, 조각, 패션, 헤어디자인, 화장 등 문화라 이름붙인 거의 모든 것이 녹아들어 있는 최고의 종합 창 작물이다. 그리고 오페라는 지금도 여전히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며 인 류의 지혜를 집대성하고 있다.

1597년 이탈리아 플로렌스의 바르디 백작 궁정에 학자, 문인, 음악가들이 모였다. ‘카메라타’(동지회)라는 이 그룹은 고대 그리스에서 자국의 정 신적 재생을 추구하면서 그리스극을 효과적으로 상연하자는 논의 끝에 음 악극 <다프네>를 만들어냈으니 이것이 오페라의 탄생이었다. 이들이 오페 라를 만든 이유는 연극에 감정표현을 제대로 살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말 하자면 오페라는 르네상스 말기, 근대를 여는 문턱에서 인간성을 표출하 고자 하는 욕망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교역이 활발했던 이탈리아 도 시국가에서 탄생했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세계문화의 요소를 강하게 지녔 다. 그러나 낭송조의 초기 오페라는 무대는 화려했지만 관객의 인기를 오 래 끌지는 못했다.

이 오페라에 서곡, 무용, 합창 등을 집어넣어 생명력을 불어넣은 이는 클 라우디오 몬테베르디다. 그는 ‘오페라의 아버지’로 불리며 베니스를 무 대로 활동했다. 그리고 1637년 베니스에 첫 오페라하우스인 산 카시아노 극장이 문을 열었다. 동방무역으로 번영을 누린 베니스의 상인들은 비즈 니스 감각을 발휘해 입장료만 내면 귀족이건 평민이건 상관하지 않고 불 러들였다. 오페라하우스에 지식인적 취향과 대중적 취향이 공존하고 있는 것은 이때부터 연유한다. 베니스인들의 오페라 열광은 끝이 없어 1700년 까지 무려 16개의 극장이 세워졌고 유럽 도처에서 음악가들이 몰려들었다 .


연극적 요소 확대로 갈수록 웅장해져

이후 18세기 중엽까지 무수한 작품들이 쏟아지지만 극단적인 성악면에만 치중한 연극성의 결핍 때문에 오늘날 거의 공연되지는 않는다. 당시 오페 라 무대를 장악했던 이들은 여성 음역에 강한 장식음을 발휘할 수 있었던 거세된 남자, ‘카스트라토’들이었다. 영화로 잘 알려진 파리넬리(1705~ 82)는 모든 카스트라토들을 통틀어 가장 유명했다.

18세기 후반으로 가면서 목소리의 자연스러움이 요구되자 카스트라토도 점차 무대에서 사라졌고 아울러 바로크 오페라도 잊혀져 갔다. 18세기 중 엽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룩에 의해 합창과 연극적인 요소를 강조한 오 페라의 개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영향 아래 전 오페라사를 통틀어 최고 봉인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역사 속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오 페라는 자기 시대의 형식을 사용하면서도 항상 진보적 계몽주의 정신을 담았으며 철저하게 무대 실무에 밝은 자만이 쓸 수 있는 작품들이기도 하 다. <피가로의 결혼>(1786) <돈 조반니>(1787) <코지 판 투테>(1790) 등 그는 희극을 주로 작곡했지만 이 작품들은 ‘인간극’의 성격을 지닌 불 멸의 걸작들이다. 또 오페라사에서 가장 철학적인 메시지가 담긴 작품으 로 인정받고 있는 그의 <마술피리>(1791)가 당시 무식한 대중을 대상으로 도시 변두리에서 올려지던 ‘악극’의 형식을 따랐다는 사실은 이 천재에 게 신비로움마저 더해주고 있다.

19세기 초 프랑스 혁명은 오페라에도 영향을 끼쳐 ‘대형 오페라’(Grand Opera)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등장해 불지르고 살육하는 등 과격한 장면이 무대에 나타났다. 그러나 이런 스타일의 작품 들은 한때의 유행으로 많이 잊혀졌고 다만 베토벤의 <피델리오>(1814)가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이 시기 이탈리아 오페라에선 목소리 위주의 전시대 스타일과 새로운 시 대의 연극성을 잘 조화시켰던 로시니와 도니체티가 등장해 <세빌리아의 이발사>(로시니·1816), <사랑의 묘약>(1832) <돈 파스콸레>(1843) <람메 르무어의 루치아>(1853·이상 도니체티) 등 많은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민족주의 예술관 담은 베르디·바그너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

19세기 후반은 이탈리아의 베르디와 독일의 바그너가 오페라를 주도했다. 두 사람 다 민족주의자였으며 오페라 속에 위대한 예술관을 담아 오페라 를 한층 높은 차원으로 올려 놓았다. 베르디가 철저한 무대 지식을 바탕 으로 전통을 계승, 발전시켰다면 바그너는 혁명적 독창성으로 새로운 형 식을 만들어 냈다.

<나부코>(1842) <맥베스>(1847) <리골레토>(1851) <트라비아타>(1853) < 가면무도회>(1859) <아이다>(1871) <오델로>(1887) 등 베르디의 작품에는 강한 정치성과 인간내면에 대한 깊이있는 사색이 공존한다. 어린 시절 나 폴레옹 잔존 지지자 제거를 이유로 마을에 습격한 러시아 군인들에 의해 한 마을이 몰살되는 광경을 직접 체험해야 했고 1849년 이탈리아 혁명군 들이 참패를 당한 뒤 오스트리아의 통치가 더욱 견고해지는 등 그는 격변 하는 근세 유럽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바그너의 작품은 현실과는 초월한 듯한 철학적 깊이를 보인다. <탄호이저>(1845) <로엔그린>(1850) <니벨룽겐의 반지>(1869) 등 독일 중 세기의 전설을 소재로 자기 당대의 시대 정신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난해 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의 오페라에는 피할 수 없는 매력이 있어 그를 사모하는 자들은 비록 모차르트보단 적지만 철저한 추종의 자 세를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는 오페라에선 이탈리아와 독일에 밀려 큰 구실을 하지 못했지만 1 9세기 후반 구노가 걸작 <파우스트>(1859) <로미오와 줄리엣>(1867)을 쓴 데 이어 1875년 프랑스 오페라의 최고봉인 비제의 <카르멘>이 나왔다. 모 차르트의 작품들을 빼고는 이 작품처럼 여러 사람에게서 칭찬을 들은 작 품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비제 이후 쥘 마스네가 <마농>(1884)과 <베르 테르>(1892)로 그 뒤를 이었다. 이들 프랑스 오페라들에는 프랑스 특유의 격정과 낭만이 잘 드러나 있다.

19세기 후반부터는 서구에 가려 있던 다른 나라들에서도 좋은 오페라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대부분 자기 나라 특유의 음악 언어를 사용해 나름의 생 명력을 갖게 됐다. 무소르그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1874), 보로딘의 < 이고르공>(1890), 차이코프스키의 <예브게니 오녜긴>(1879) <스페이드 퀸 >(1890) 등은 러시아의 대표적 오페라다.

이탈리아에선 베르디의 영향권을 벗어날 수 없었지만 19세기 말 유럽문화 의 유행사조였던 자연주의가 영향을 미친다. 과거처럼 역사나 거창한 주 제가 아닌 일상적인 이야기를 소재로 인간생활을 있는 그대로 다뤘다. 이 런 경향 속에서 푸치니는 섬세한 붓으로 정교하게 그린 그림과 같은 오페 라를 만들어 냈다. <라보엠>(1896) <토스카>(1900) <나비부인>(1904), 그 리고 미완성으로 남긴 마지막 작품 <투란도트>(1926) 등 그의 작품은 당 대는 물론 지금까지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유구한 역사 속에서 인생 풍요롭게 한다

20세기 들어 오페라의 지평은 더욱 넓어져 신대륙으로까지 뻗어나갔다. 미국의 조지 거쉰은 <포기와 베스>(1935)를 통해 미국 흑인사회의 분위기 를 재즈풍으로 만든 독특한 걸작을 내놓았다. 2차 대전 이후에도 스트라 빈스키와 쇤베르크 등 두 현대 음악의 거장들이 오페라를 남겼다. 그리고 오페라에서 대대로 후진국이었던 영국에도 벤자민 브리튼이 나타나 <피터 그라임스>(1945) <한여름밤의 꿈>(1960) 등을 내놓았다.

지금도 세계 각국에서 고전과 창작 오페라가 끊임없이 무대에 오르며 관 객들을 휘어잡고 있다. 이처럼 유구한 역사를 타고 내려온 종합예술인 오 페라에는 인간의 모든 지혜가 담겨 있다. 오페라를 감상하느냐 않느냐는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오페라를 통해 우린 세계를 더 잘 이해 할 수 있고 인생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참고:<오페라 감상법>(조성진), <오페라의 역사>(레슬리 오레이) 등)

권태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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