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하는 경제/유진수/숙명여대 교수·경제학 |
1997년01월23일 제 142호
|
|---|
우리는 협상이 실패로 끝난 사례들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노·사·공익대표가 참여한 노사관계개혁위원회는 노동법 개정에 관한 합 의 도출에 실패하고, 결국 노동법 개정안은 정부여당의 기습작전으로 국 회에서 날치기로 통과됐다. 매년 많은 기업이 노사협상에서 합의를 도출 하지 못하고 파업이나 물리적 충돌에 따른 후유증을 겪고 있다. 무역협상 에서 우리의 주장만을 앞세우다가 나중에는 외국의 요구를 다 받아들이게 되는 경우 또한 드물지 않다.
서로 간의 신뢰관계를 회복하자
이와 같이 많은 협상이 실패로 끝나게 되는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협상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잘못돼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협상을 하나의 작은 전쟁과 같이 생각하고,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하고 말겠다는 태도로 협상에 임하고 있다. 다시 말 해서 협상을 마치 하나의 빵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다투거나 주어진 크기 의 빵을 분배함에 있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것과 같이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인식은 협상이 제로섬게임(Zero-Sum Game)이라는 잘못된 생각 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주어진 크기의 빵을 나누는 것과 같은 제로섬게 임에 있어서는 상대방의 이익은 나의 손해이고 상대방의 손해가 나의 이 익이 된다. 따라서 좀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형태이건 간에 싸움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경제에서 단순한 형태의 제로섬게임을 찾아보기는 매우 어렵 다. 마치 제로섬게임과 같이 보이는 단순한 협상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하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전자상가에서 펜티엄급 PC의 가격을 흥정하는 경우, 언뜻 보면 이것이 단순한 제로섬게임인 것 같이 느껴진다 . 판매가격이 낮을수록 판매자는 손해를 보는 반면 구매자는 이익을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협상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할 수 있 다. 구매자는 PC의 가격이 낮은 경우에 하나만을 구입하지 않고 많은 물 량을 구매할 수도 있다. 또한 PC 구매시에는 메모리, 드라이브 등 다양한 사양을 선택해야 하며, AS 여부 또는 기간, PC의 인도시기 및 방법 등도 흥정할 수 있다.
노사협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임금인상률만을 결정하는 노사협 상은 매우 드물다. 근로자에 대한 복지혜택, 성과급의 지급, 근무조건 등 다양한 문제가 함께 논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협상의 내용이 복잡하 고 선택이 다양할수록 협상 당사자 어느 쪽이든 협상을 당초 입장을 관철 하는 수단쯤으로 인식해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에 대해 협의하면서 문제를 함께 풀려고 하지 않을 경우 모두가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협상은 상호간에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해야 만 성공할 수 있다. 협상을 성공적으로 끝내기 위해서는 상대방과 자기자 신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한 대화와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며, 상호간에 장기적인 신뢰관계를 확립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서로에게 유익한 많은 대안을 함께 개발하려는 자세도 요구된다.
협상은 모두가 이기는 길
또한 일단 협상이 타결되었다고 거기서 악수하고 협상을 끝내서도 곤란하 다. 합의된 내용을 검토하고 서로에게 좀더 유익한 제3의 합의내용을 도 출하기 위한 재협상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래서 협상은 서로의 이익이 상반되는 제로섬게임이 아니라 서로에게 유 익한 포지티브섬게임(Positive-Sum Game) 또는 윈-윈게임(Win-Win Game) 이라고 불린다. 협상은 승리자와 패배자를 가르는 작업이 아니라 협상 당 사자 모두를 승리자로 만드는 작업인 것이다.
우리 경제는 1997년에도 많은 협상을 앞두고 있다. 경제정책 수립을 위한
정부부처 내부 또는 부처간의 협상, 봄에 이루어질 임금협상, 다양한 차
원의 무역 및 외교협상 등 그 무엇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
모든 협상에서 성공적인 결과가 도출되고, 이에 따라 우리 경제의 회복이
가시화되고 회복세가 더욱 빨라지기를 기대해 본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