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1997년01월23일 제 142호 한겨레21

들판으로 내몰리는 온실은행

(사진/금융구조 개편은 평생직장이던 은행에도 고용불안이라는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한일은행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쟁의발생 찬반투표를 실시하고 있다.)

금융계가 새해 벽두부터 요란하다. 그리고 바싹 긴장하고 있다. 이른바 한국판 빅뱅의 서곡이 울렸기 때문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한 금융개혁위는 그동안 제기 돼 온 금융빅뱅 논의의 완결판이나 다름 없다. 조만간 한국금융계에 커다 란 회오리바람이 불어올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니 금융계가 긴장하는 것 도 당연하다.

금개위는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그 결과 우리나라 금융계는 어떻게 바뀔까. 추측도 많고, 주문도 무성하다.


가계와 기업의 금융 애로 제거가 목표

김 대통령은 금개위가 기업인과 금융전문가 중심으로 구성될 것이라고 밝 혔다. 또 재경원은 금개위가 할 일을 “공급자 중심의 금융산업 구조를 수요자 중심으로 개편하는 것”이라고 요약했다. 이런 설명으로 미뤄볼 때 금개위는 금융자금을 쓰는 경제 주체 즉 가계와 기업이 느끼는 금융애 로를 제거하는 데 초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기업의 국제경쟁력 향 상에 금융산업이 걸림돌로 작용해왔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다.

그래서 금개위가 가장 먼저 할 일로 금리 하향안정이 거론되고 있다. 현 재의 전망으로는 오는 3월 이전에 여수신금리를 지금보다 더 낮추기 위한 방안이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발맞춰 한국은행의 지급준비율도 또 다시 인하될 전망이다.

그러나 금개위의 과제는 금리를 당장 낮추는 데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 려 우리나라의 고금리를 유발하는 요인, 특히 금융산업 내부의 요인을 찾 아 없애자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금융산업 전체의 효율 을 높이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이런 관점에서 제기되 는 과제는 대체로 지난해 5월 21세기위원회에서 제시된 바 있다.

첫째 금융권 사이의 업무영역 제한을 철폐하는 일이다. 은행에 보험상품 을 판매케 하고 반대로 보험회사에는 부동산 신탁업무를 허용하는 등, 금 융상품 칸막이를 없애는 작업이다. 또 증권사가 외환업무를 취급하는 대 신 은행은 회사채 인수단의 간사로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서로 다른 영역 의 금융기관이, 지금까지는 남의 업무로 간주했던 사업을 벌이게 되는 것 이다.

업무영역 철폐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현재와 같은 은행·보험·증권의 금융3각체제는 상당히 와해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현재 정부가 검토중인 금융지주회사까지 허용되면 금융권간 상호진출과 침투는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는 자회사를 설립해야만 다른 영역의 업무를 맡을 수 있었으나, 앞으로는 반드시 그럴 필요도 없게 된다.

둘째, 금융산업에 대한 각종 규제를 없애는 것이다. 한 예로 새로운 금융 상품을 개발하거나 점포를 신설하기 위해서는 재경원이나 은행감독원 등 의 허가를 받아야 했으나, 이를 자유화하는 것이다. 또 재할인 대상 상업 어음 및 무역어음 금리의 자유화, 중소기업 의무대출비율 폐지문제 등 폭 넓은 과제가 논의 대상으로 떠오르게 된다.

그렇지만 지금 금융계를 긴장시키는 것은 이같은 규제완화나 업무영역 확 대가 아니다. 오히려 은행합병과 대형화가 어떻게 전개될지가 더 큰 궁금 사항이다. 금융계, 특히 은행가에서는 이번에 출범할 금개위의 최종적인 목표는 은행합병에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경쟁력 확보 위한 은행간 합병 불가피

은행합병은 오는 98년말부터 외국 은행의 국내 진출이 전면 허용될 예정 으로 있는 데다 국내 은행의 규모와 효율이 너무 떨어진다는 지적과 함께 몇년 전부터 꾸준히 거론돼왔다. 현재 상태로는 국내 은행들이 대형 외국 은행과 경쟁이 안 됨은 물론 국내기업의 젖줄 노릇도 제대로 못하니 덩치 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또 최근 서울 제일 등 대형 시중은행과 동화 평화 대동 동남 등 후발 시중은행이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은행합 병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켜 왔다. 올 들어서도 한승수 부총리 겸 재정경 제원 장관이 금융기관의 진입·퇴출을 자유화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은행합병에 관한 금융계의 관심은 곧 그 시기와 예상 시나리오로 연결되 고 있다. 재경원은 “금개위가 당장 이 문제를 다루지는 않고, 올해 안에 은행합병 조치가 있을 것 같지도 않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금융계 에서는 금개위가 은행합병에 관해 일정한 방향을 정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각 은행이 합병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는 점을 감안해 올 해 안에 상징적 효과가 큰 모종의 일을 벌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올해 안에 일을 벌인다면 대통령 선거가 임박한 하반기보다는 상반기중에 해치울 것이라는 관측도 유력하게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시나리오가 유력한가. 지금까지 거론된 합병의 조합 예상 은 무수히 많다. 국민은행+외환은행, 산업은행+수출입은행+장기신용은행, 산업은행+중소기업은행, 조흥은행+한일은행, 보람은행+하나은행 등 다양 하다. 지방은행간의 통합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아울러 동화 평화 대동 동남 등 경영상태가 좋지 않은 후발은행을 다른 대형은행이 흡수합병할 것이라는 관측도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시나리오 가운데 경영상태가 나쁜 은행을 흡수합병하는 것은 굳이 금개위나 정부가 나설 만한 사안은 아니다. 단지 금융기관간의 경쟁을 촉진하고 진입·퇴출을 자유화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 상징적 효과도 그리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이번 금개위 출범을 계기로 크게 대두된 것은 국책은행의 합병가능성이다.

그래서 외환은행과 국민은행, 산업은행과 중소기업은행 또는 장기신용은 행 등의 통합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국민은행과 외환은행의 합병 가능성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국민은행은 소매금융에 밝고, 외환은 행은 외환업무에 탁월한 노하우를 갖고 있어 양자를 합치면 이상적인 조 합이 된다는 인식 때문이다. 또 외환은행은 한국은행이 47%의 지분을 갖 고 있고, 국민은행은 정부가 17%를 소유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지금 비록 국책은행은 아니지만 정부의 영향력 아래 있다. 따라서 정부가 맘만 먹으 면 언제든지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은행감독원의 한 관계 자는 “국민은행과 외환은행의 합병은 다른 대형은행 사이의 통합을 촉진 하는 효과도 있어 몇년 전부터 금융 당국이 심도 있게 검토해 온 시나리 오”라고 밝혔다.


“정리해고 안 당하려면 명퇴하라"

은행합병과 아울러 금융산업의 진입과 퇴출을 자유화하는 조처도 적극화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 과정은 파산 또는 흡수합병이다. 이런 조처에는 상호신용금고나 신설 생명보험사, 부실 증권회사 등이 주된 대상이다. 지 난해 말에 국회를 통과한 금융기관 구조개선법은 부실 금융기관에 대해 정부가 영업정지나 강제합병 등의 조처를 취할 수 있도록 했다. 따라서 이 법이 앞으로 금개위와 함께 부실 금융기관의 정리에 촉매제가 될 전망 이다. 재벌의 생명보험사 신설, 생명보험사의 손해보험 진출 등도 멀지 않아 실현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그렇지만 부실 금융기관에 대한 강제합병 같은 극약처방이 당장 은행에 적용되기는 쉽지 않다. 은감원 관계자는 “은행에 대한 강제합병 등은 파 장이 너무 크기 때문에 함부로 적용하지 못할 것이고, 현재 그럴 만한 은 행도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서울 제일 동화 평화 대동 동남 등 과다한 부실채권과 경영악화로 고전하고 있는 은행들의 장래는 내년 이후에나 윤 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금융개혁의 귀착점이 이렇듯 은행합병과 부실 금융기관의 정리에 있는 만 큼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문제점은 고용문제 다.

최근 들어 은행의 경쟁촉진 정책과 기계화 등의 흐름 속에 은행의 고용불 안은 꾸준히 심화되어 왔다. 우선 각 은행이 점포를 늘리면서도 인원은 증가시키지 않았다. 대신 각종 자동화기계를 설치해 인력수요를 동결했다 . 시중 은행의 한 관계자는 “10년 전 수신규모가 2~3조원일 때 직원수가 8천여명이었는데 25조를 넘는 요즘도 이와 똑같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또 명예퇴직을 앞다퉈 실시해왔다. 최근 2~3년 사이 명예퇴직을 1차례도 실시하지 않은 은행은 없다시피 하다. 지난해에도 상업 제일 등 여러 은행이 명예퇴직을 실시했다. 올해 들어서는 조흥은행이 이를 실시 한 데 이어, 한일은행이 다음 차례로 준비하고 있다. 은행들은 특히 지점 장이나 부장 등 고임금 행원을 대거 내보냈다.

주목되는 점은 이들 은행이 명예퇴직을 실시하면서 “이번이 마지막 기회 ”임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는 명예퇴직이 아니라 정리해고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계에서는 지난해 정부가 금융산업 구조조정 을 위해 도입하려 했던 고용조정제를 철회한 대신 은행을 정리해고제 적 용 1순위로 삼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리해고가 적용될 경우 대상 은행의 직원 가운데 30~50%가 희생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은행권 정리해고 적용 1순위

은행이라면 안정된 평생직장이라던 이야기는 이제 옛이야기로만 남을 공 산이 커진 것이다. 때문에 요즘 은행원들은 앞날에 대한 짙은 불안감에 떨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불안감은 은행뿐만 아니라 증권 투신사 등도 마찬가지다. 90년대 이후 증시불안과 이에 대한 정부의 잘못된 대처 방식 때문에 증권사와 투신사는 오늘날 누적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따라서 금 융산업의 진출과 퇴출을 확 풀 경우 상당수 증권회사와 투신사들은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영향은 이들 회사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차기태 기자/ 한겨레 경제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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