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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
1997년01월23일 제 1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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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이창주 모스크바대학교 아태연구소장· 경제학부 교수 명지대학교 북한학과 객원교수
(사진/슈미트 전 서독 총리(왼쪽)는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는 주변국과 친구가 될 것을 권했다. 오른쪽은 이창주 교수.)
- 지난 90년 동서독의 통일은 ‘마지막 분단국’ 남북한에 통일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나타난 ‘통일비용’ 문제와 동독의 높은 실업률 등은 많은 사람들에게 동서독식 통일이 과연 바람직한가 하 는 의문을 갖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에 독일통일의 원동력이 되었던 동 방정책의 창시자인 빌리 브란트의 뒤를 이어 사민당 정권을 이끌면서 이 를 실천해 사실상의 통일준비를 완성한 정치지도자로서 최근 통일독일 상 황과 남북한 통일에 대한 ‘고언’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먼저 통일독일 상황부터 시작해주시죠.
= 독일통일 이후 지금까지의 상황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바대로입니다 . 사회시설, 공공시설, 교통시설 등에 관한 모든 약속이 허상이자 꿈이 돼버렸습니다. 동독의 현재 실업률이 25%를 넘고 있으니까요. 며칠 전 한 공식회의에서 기민련의 한 관계자가 ‘동서독이 경제적인 균형을 이루려 면 지금부터 또다시 25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동안 이 기간 이 15년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는데 그는 이를 10년 더 늘려잡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 동서독을 동등한 경제수준에 도달하도록 하는 노력 은 다음 세대에까지 요구될 수 있습니다. 특히 독일의 민족 동질성 회복 을 위한 노력은 우리 다음 세대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현재도 저 를 비롯해 라이프치히의 여러 학자들, 서독의 많은 자연과학자들이 ‘민 족재단’을 세워 관련 작업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통일 독일’이 여러 문제점을 가지게 된 것은 지난 90년 독일통 일이 비록 정치적으로는 세련된 통일을 이루었으나 경제·사회적 통일 측 면에서는 명백한 실수를 범했던 탓이 큽니다.
- 그 실수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저지른 이 실수는 한국도 깊이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우선 통일 이후 동독엔 급작스럽게 밀려온 ‘경쟁’으로 인해 산업과 농업 모든 면에서 어둠이 들이닥치게 됐습니다 . 경쟁자들은 단순히 서독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서유럽에서 밀려왔습니다 . 동독은 시장이나 경쟁이 무엇인지 몰랐고, 더구나 신중하게 계산된 경 쟁을 알 수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경쟁에 의해 그들은 위축되고 파산했습 니다. 이것이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우리의 실수였습니다.
두번째, 경제력을 무시하고 정치적으로 동·서독 화폐를 1 대 1로 교환하 도록 한 것도 문제였습니다. 동독마르크와 서독마르크의 1 대 1 환율적용 은 옛 동독경제에 대한 몇배의 평가절상을 의미합니다. 전세계에 어떤 공 산물도 수출하지 않고 어떤 것도 생산하지 않는 나라에서 그러한 화폐가 치를 가질 수는 없습니다. 옛 동독 산업에 대한 화폐 평가절상의 결과는 지금까지 동유럽에서 동독의 물건을 구매하던 고객들로 하여금 발길을 끊 게 만들었습니다. 더욱이 이러한 판매·수출 부진으로 옛 동독인들은 스 스로 더이상 동독 물건을 사려 하지 않았고 생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통일 이후 옛 동독인들은 서독의 3~4년 된 중고 오펠이나 폭스 바겐을 선호하고 옛 동독의 국민차였던 트라베를 더이상 원하지 않습니다 . 이전에는 이 자동차를 1대 얻기 위해 몇년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지 금은 중고라도 오펠·폭스바겐을 원합니다. 왜냐하면 새 트라베보다 서독 의 중고차가 더 낫고 싸기 때문입니다. 더이상 누구도 트라베를 구매하고 자 하지 않으니 이 자동차의 생산이 중단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실업 률이 늘어났습니다. 옛 동독산업이 가졌던 통독 이후 산업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전형적인 예인 것입니다.
- 그 밖에 또 한국이 참고해야 할 잘못된 통일정책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
= 이것 이외에도 정치적 권고에 따라 동독의 임금 수준을 서독 수준으로 올리려고 한 것도 큰 실수로 평가됩니다. 이는 경제적 환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 때문에 대다수 기업 소유주들은 이러한 임금을 지불할 수 없었고 많은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어야만 했습니다. 또 법체계도 문제입 니다. 1천6백만명의 동독인은 연방국가인 서독의 서로 다른 법안에 대해 서 어찌 해야 할지를 몰라 했습니다. 옛 동독인들은 8만4천조항에 이르는 사용자와 사용인, 소유자와 비소유자 그리고 교통법규 등에 관한 수천수 만의 조항을 모르는 채 반 강제적으로 법을 어기고 있는 셈이 됩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사유화의 속도와 형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 것은 한국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문제라는 점에서 주의를 요합니다. 현재 동독의 많은 공장과 수공업체들이 이미 서독 기업의 소유가 됐습니다. 서 방의 자본 그 누구도 동독의 공장과 기업을 사들이기 원하지 않았던 탓이 큽니다. 결과적으로 사유화의 속도가 너무 빨랐다는 것입니다. 사유화의 형식과 속도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체코는 사유화를 전면적으로 금지시킨 뒤에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진행하고 있 습니다.
- 그러나 동독인들은 통일에 따라 여행의 자유 등 나아진 측면도 있지 않 을까요.
= 여행의 자유, 사회보장제도, 높은 연금 등은 동독인들에게 통일을 긍정 적으로 느끼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동독이 느끼는 실망감 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앞에서 말한 실패한 통일정책은 많은 동독인에 게 식민화되었다는 느낌을 갖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그들 스스로 만든 정 치인들이 준 희망이 충족되지 않았고 대신 실업률이 엄청 높아졌습니다. 동독은 1930년 이후 최고의 경제공황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많은 이들 이 일을 하기를 원하고 이들의 욕구가 실업수당으로 충족될 수 없는 것입 니다. 1930년 경제공항으로 인해 실업률이 높아졌을 때 독일국민은 히틀 러를 선택했습니다. 아마 현재 동독인은 옛 공산당을 선택하고 싶어할지 도 모릅니다. 그들이 공산주의를 원하기 때문이 아니라 통일에 실망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이러한 위험을 조정할 수 있는 상태이지만 계속해서 높은 실업률이 지속된다면 정치적인 또다른 위험이 없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 그렇다면 서독인의 통일에 대한 사고는 어떻습니까.
= 서독인들도 또다른 커다란 실망에 부닥치게 되는데 이것은 과중한 세금 으로 인한 희생에 기인합니다. 또 한 가지는 동독인의 서독인에 대한 오 해인데 동독인이 서독에서의 구직이 현실화돼 있지 못한 것에서 부분적으 로 기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옛 동서독 양국의 실망감은 이제 한 나라 안에서 서로가 민족의 동질성 회복을 바라면서 치유해야 할 것입니다.
- 이제 남북한에 대한 말씀을 들었으면 합니다. 우선 남북한과 동서독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들었으면 합니다.
= 처음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는 늦은 여름이었습니다. 당시 한국민의 분 단된 상황을 보며 동정이 일었고 이런 상황을 독일과 같은 것으로 파악하 였으나, 이 두 나라 사이에는 커다란 역사적 차이가 있음을 또한 파악했 습니다. 독일과 한국의 분단은 2차대전의 산물입니다. 그러나 독일은 2차 대전을 일으킨 주역의 하나지만, 한국은 처음부터 이 전쟁의 희생자였을 뿐이었습니다. 따라서 전쟁 뒤 소련과 미국이 일본군 잔당들을 잡아들인 다는 계획 아래 그어놓은 38선은 어떤 국제정치적 의미도 갖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 분계선으로 인하여 한반도는 남북한으로 분단된 것 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차이점은 한국전쟁입니다. 한국전쟁은 공산주의 권력자가 지배하던 북한이 소련의 스탈린과 중국의 마오쩌둥의 지원에 의 해 남한을 침략한 전쟁입니다. 따라서 독일의 동서독 사이에 있었던 어떤 적대감보다 더 큰 불신·증오·분노가 생겼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희생자 는 남북한 모두 합쳐서 30만명이 넘었을 것입니다. 이 희생자 수는 베를 린 장벽 희생자의 1천배 이상입니다. 이 두 가지가 두 나라의 분단을 다 르게 만드는 근본적이고 역사적 배경입니다.
- 이런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동서독 통일이 남북한에 주는 교훈을 든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특히 국제정치환경의 관점에서 비교해주시기 바랍니다.
= 우선 남북한 상황을 말해보지요. 현재의 남북한 관계는 지난 90년대 초 가 차라리 나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지난 91년 서울과 평양이 채택한 합의문은 지난 72년 동·서독이 합의문을 채택한 것보다 더 자세하고 강 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남북한 관계는 점점 더 냉각 되었고 지난 91년의 남북합의문은 아무런 실천없이 사문화되었습니다.
또 현재 한반도문제가 정확히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누구도 정확히 진단 하지 못하는 것도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몇주 전에 서울을 방문하였을 때 한국의 대통령과 많은 정치·경제·기업인과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실 제로 한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도 알고 있지 못했습니다. 또 며칠 전에는 모스크바를, 몇주 전에는 베이징을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 었으나 누구도 북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습 니다. 미국도 많은 것을 알고 있지는 못합니다.
북한의 권력자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당과 경찰과 군사력이며, 신적인 존 재였던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이후에도 북한은 철저히 폐쇄적입니다. 평 양 주재 중국대사의 북한 대화창구는 사석의 대화조차도 공식적으로 보고 되며, 각본상의 이야기 외에는 어떤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 그렇다면 본인은 현재의 북한을 어떻게 보십니까.
= 오늘날 북한에 대해 알고 있는 적은 부분을 말한다면 다음 4가지로 요 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김정일 비서가 권좌에는 앉아 있으나 얼마 나 확고하고 안정적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특히 그가 어떤 권력에 지탱 하고 있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다음으로 북한이 경제상황이 점점 더 불안해진다는 것입니다. 모스크바의 원조는 끝나고 중국이 식량을 일정부분 조달하여 주는 것이 전부입니다. 남한도 식량을 약간 공급한 바 있으나 정치의 개입으로 중단된 상태입니 다. 군대가 전체 국민총생산(GNP)의 4분의 1 이상을 소비하고 있으며 최 근 몇년 동안 지속적으로 전체 생산이 줄고 있는 상황입니다.
또 북한은 때때로 군사적 위협을 반복합니다. 북한은 원자폭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으로 주변에 대항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이에 미국은 최소한 극단적인 상황은 피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이를 위해 정치적으 로 계산을 하고 있으며, 평양과의 회담에 관하여 충분히 납득하도록 서울 에 알리지 않고 있는 한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저도 남한이 미국과의 동맹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어떻게 손상되었는지 느끼고 있습니 다.
마지막으로 지형적으로 북한은 옛 소련에 의해 폐쇄되어 왔고 희극적인 내부의 세뇌작업에 의해 철저하게 고립돼 있습니다. 스스로 고립하는 이 러한 것이 정말 심각한 위험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예 를 들면 북한의 지도자는 세계정세에 대하여 분명히 잘못 생각하고 있습 니다. 먼저 한국의 경제수준의 향상, 경제개혁정책 이후 중국의 경제성장 등 극동아시아의 전체적인 경제·군사적 상호협조와 우호관계 형성 등 일 련의 상황에 대해 북한 지도자 스스로도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군사적 상황까지 변화하고 있는 극동아시아의 협력과 선 린관계 추구경향을 전혀 이해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북한 정부가 중국과 옛 소련이 서로 어떤 역할을 해주던 상황이 이미 지났음을 여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이 보입니다.
- 이제 남북한의 통일 전망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 이런 상황 속에서도 저는 개인적으로 몇천년 동안 같이 해온 민족이 다 시 한지붕 아래 모이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 시기가 언제가 될 것인가 하는 질문에는 저를 포함한 어떤 사람도 말할 수 없을 것입니 다. 이미 그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도 있고, 그 시기가 21세기에 시 작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 가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주변국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 지난 89~90년 독일의 통일과정에서 프랑스, 소련, 영국, 미국은 통독에 커다란 작용을 했습니다. 이 네 나라는 2차대전 이후 독일 분단을 주도했 으나, 역설적이게도 독일의 통일에서 이 네 나라의 지원은 결정적이었습 니다. 이러한 경험에서 볼 때, 한반도의 경우도 미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 이 통일과정을 지원할 때 통일은 가능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러 한 이웃나라들과 세계 강국들의 지원없이는 통일은 불가능하다고까지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구체적으로 남북한이 통일을 위해 주변국과 어떤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 지 말씀해 주십시오.
= 남한은 ‘강대국에 끼인 나라’로 느끼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느낀 다면 이웃을 친구로 만들어야 하며 친구를 찾아야 합니다. 한국은 한국의 통일과정에서 중국과의 경제·정치적인 화합과 조정이 필요합니다. 이웃 중국은 친구가 됨으로써 통일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물론 한국 상황에 대한 이해와 공조에 따른 미국의 지원도 필요합니다. 미국과 중국 이 서로 여전히 마찰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언뜻 보기에 이런 양면의 지 원에 따른 통일은 어려워 보입니다. 극동아시아에 고도의 대수술이 있어 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독일의 경험에 따르면 이러한 병렬적인 관계 가 가능합니다.
서독은 지난 70년 초반에 모스크바를 포함한 동유럽과의 화해정치를 서둘 러 시작했고 ,같은 시기에 미국을 포함해 북미 그리고 내부적으로는 민족 적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서독은 또 이들 주변국으로부터 어떤 의혹, 회의, 주저함도 생겨나지 않도록 했습니다. 미국은 지난 75년 헬싱키 회 담에서는 비관적이었지만 우리는 지속적으로 미국과의 접촉과 회담을 끈 질기게 넓혀 그 거리를 한 걸음씩 좁혀나갔습니다. 남한이 중국과의 필수 불가결한 동반자적 관계를 맺고자 할 때 그 접촉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독일이 소련과의 관계접촉을 경험했듯이 가능한 것이며 또한 필수 불가결한 것입니다. 경제적인 관계를 살펴보면 현재 교역규모가 중국-북 한에 비해 중국-남한이 더 큽니다. 대단한 교역량 증가입니다. 그리고 더 많이 경제적인 접촉이 이루어질 것이며 그 다음 단계는 정치적인 협조입 니다.
- 그렇지만 현재 한국은 현실적인 통일노력이나 접근이 좌절된 상태입니 다. 독일은 통일 모델로서 한반도에 적용하기 어렵다고도 합니다. 지적하 신 대로 역사적·환경적·상황적 모든 분야에서 많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반도 통일은 어떤 방향으로 접근되어야 된다고 보십니까.
= 유감스럽게도 남북한이 통일 과정에서 헤쳐나가야 할 어려움이 통일 이 전 독일인이 겪은 어려움보다 더욱 크다는 것을 지적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첫번째로 인구 비율이 서독 대 동독은 4 대 1이었으나, 남한 대 북한은 2 대 1입니다. 이는 네명의 서독인이 동독인 1명을 위해 희생하면 되었으 나 남한의 경우 2명이 북한의 1명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 다. 게다가 통독 직전인 지난 89년 동·서독의 경제수준 격차보다 현재 남북한 경제수준 격차가 훨씬 크기 때문에 남한의 희생이 더더욱 커지게 될 것입니다.
남한은 산업국가로서 세계시장을 누비는 국가로 성장했고 자동차산업이라 든가 수출량으로 세계 어디에서나 그 영역을 담당하고 있지만, 그에 반해 북한은 세계시장에서 어떠한 위치나 역할이 없이 철저하게 고립돼 있습니 다. 그러나 이러한 격차로 인하여 통일에 의혹을 갖지는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그렇다면 남북한의 통일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돼야 한다고 보십니 까.
= 다만 한걸음한걸음 좀더 시간을 가지고 두려운 마음으로 한단계한단계 실천하는 것입니다. 두려움 없이 서두른다면 독일이 통일과정에서 저지른 실수는 피한다 하더라도 또다른 잘못을 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실수 없 는 결과는 없을 것입니다만 이것이 옳은 통일과정입니다. 통일의 기회가 언제 올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은 여 러 가지 계획을 개발하고 세워야 합니다. 통일계획은 다양한 상황에 따른 다양한 계획이어야 합니다. 또한 이 계획은 해마다 또는 몇년마다 검토되 고 수정돼야 합니다. 이에 대하여 두세 가지 소견을 밝히면, 만약 한반도 의 통일이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진행된다면 긍정적 가능성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경제·정치적인 면에서 장점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장 기적인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군사적 분규에 영향을 미칠 위험성도 있습 니다. 남북한의 통일을 서두르면 발생할지도 모르는 양쪽 모두의 붕괴위 험 또한 배제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기본원칙에 따라 여러 가지 다양한 시나리오를 언제나 준비해 두어야 합니다. 남한이 그들의 국 민을 배려해 단계적인 통일방안으로 이끌어갈 수도 있고, 급작스럽게 북 한의 경제원조 요청이나 상황에 의해 공감대가 형성될 수도 있는 것입니 다.
- 남북한의 통일에서 사유화를 필수적인 것으로 보시는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사회주의 경제체제에서 사유 재산을 바탕으로 한 자본주의 경제체제로의 과도기는 옛 동독의 과정보다 북한에서의 과정이 더 어려울 것입니다. 특별히 남한이 계획하고 준비해야 하는 것은 가능한 빨리 북한 의 농업을 부흥시켜서 개인 스스로 자급자족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집단농장 형태의 농업형태를 어떻게 짧은 시간내에 사유화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남한이 해결해야 할 가장 어려운 문제 중의 하나입니 다. 저는 또 북한이 중국의 ‘덩샤오핑의 경제특구 정책’에서 무언가 배 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통일과정에서 군사력 문제는 어떻게 보십니까.
= 군사력 문제는 옛 동독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던 북한의 특별한 측면입 니다. 1백만명이 넘는 병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총생산량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군수물자 산업을 어떻게 생산적으로 전환할 것인가 하는 것들이 독일에서는 보지 못하던 한반도의 독특한 난제입니다.
- 끝으로 한 말씀 하신다면.
= 한국인은 독일인보다 더 부지런하고 더 온화한 국민입니다. 이로써 지 난 20년간의 짧은 시간동안 복지국가를 이루었습니다. 한국인은 어떤 경 우든지 북한이 붕괴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한반 도 전체가 정치적·경제적으로 병들어 버릴지도 모릅니다.
저는 한편으로는 한국인들이 경제적 통일에 대해 차라리 약간의 두려움을 갖기 원합니다. 어찌 되었든 다각적인 면에서 걱정이 없을 수 없으므로 한국인은 적어도 경제적 통일면에서 성공을 거두기 바랍니다. 또한 4천만 남한인은 2천만 북한 동포를 위해 경제적으로 희생하는 것이 필수 불가결 하다는 것은 명백하므로 이러한 두려움을 나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 나 나 개인적으로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한국이 통일을 해내리라고 믿습니 다.
38선은 여러분의 잘못으로 그어진 것이 아닙니다. 주변의 4강대국 미국, 중국, 소련, 일본의 힘겨루기 결과였습니다. 이제 남·북한은 과거 수천 년 동안 같은 문화를 공유한 공동운명으로서 단지 감동과 열정에서가 아 니라, 이성적으로 정치·경제적 통일을 이루기 바랍니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