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1997년01월23일 제 142호 한겨레21

검찰 "못해 먹겠다"사법부에 불만

(사진/민주노총 지도부에 구인장을 전달하기 위해 명동성당을 찾은 검찰. 사전구속영장을 발부하지 않아 파업에 대처하려는 검찰의 계획이 틀어졌다는 것이 검찰의 불만이다.)

 지난 1월9일 서울지법에서 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 등 노동법 개정 반 대 총파업 지도부 7명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의 발부를 보류하고 구인장을 발부했을 때 검찰의 법원에 대한 비난은 극에 달했다.

“아무리 구속영장실질심사가 좋다 해도 벌써 2차례나 검찰의 소환에 불 응한 사람들이 법원에 나오라면 나오겠는가. 안 나올 게 뻔한 데도 구인 장을 발부하는 요식적인 태도의 이면에 담긴 것은 사법부 생색내기 외에 더 무엇이 있는가.”

이 말이 옳냐 그르냐를 떠나 검찰로서는 법원이 구인장을 발부해 영장발 부를 하루 미루는 바람에 총파업에 대처하는 전략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법원이 파업대처를 망쳤다

검찰은 14일 한국노총이 파업에 들어가기 전에 경종을 울린다는 판단 아 래 13일 이전에 권 위원장 등 파업 지도부를 구속한다는 방침을 가지고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던 것이다. 따라서 검찰로서는 권 위원장 등이 농 성중인 명동성당에 경찰력을 투입하는 사태를 예상하지 않을 수 없고 그 럴 경우 명동성당에 협조를 구하는 형식절차에 소요되는 시간이 있기 때 문에 하루가 매우 중요한 셈이었다.

검찰도 이점을 미리 계산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기 전에 2차례에 걸쳐 공개소환요구를 했다. 권 위원장 등이 2차례에 걸쳐 검찰소환에 불응한 사실을 법원이 안다면 실질심사를 하겠다고 구인장을 발부하지는 않으리 라 기대했던 것이다.

법원은 구인장을 발부한 다음날인 10일 권 위원장 등이 모두 구인에 불응 하자 기록만으로 영장을 발부했지만 하루가 지연됨으로써 검찰은 바로 주 말을 맞게 됐고 결국 영장의 집행은 13일 이후로 넘어가게 돼버리고 말았 다. 물론 법원에서 9일 바로 영장을 발부해줬으면 검찰이 10일이나 11일 에 명동성당에 경찰력을 투입했을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법원의 구인장 발부 조처가 검찰의 시간적 여유를 빼앗고 그만큼 운신의 폭을 좁힌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지난해 말 법원이 원칙적으로 모든 사건에서 영장실질심사를 하겠다고 밝 힌 뒤 검찰이 우려해왔던 점들이 올해 들어 영장실질심사가 실시되면서 그대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피의자를 쉽게 데려오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새해 첫날인 1일부 터 서울지법 남부지원과 북부지원에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피의자에 대해 영장을 발부하는 대신 구인장을 발부했다. 혐의가 입증되더라도 일 단 판사가 피의자를 직접 봐야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더니 전국 법원에서 사전구속영장 청구대상자에 대해서는 구인장을 발부하는 것이 관례가 됐다. 얼마 전 대전에서는 검찰이 국가보안법을 위 반한 혐의가 있으면서 잠적해 버린 대학생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 더니 법원에서 영장 대신 한달 기간의 구인장을 발부했다. 한달 안에 법 원으로 데려와 판사의 심문을 마치면 영장을 발부하든지 기각하겠다는 것 이다.


도망간 사람이 구인장에 응하겠느냐

검찰이나 경찰의 불만이 없을 수 없다.

“구인장을 가지고 데려올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의 사전구속영장 청구 대상자는 도망갔거나 소환에 불응하는 사람들인데 구인장을 가지고 간다고 응하겠는가. 지나치게 수사인력을 소모시키는 것 아닌가.”

지난 8일 광주에서는 검찰이 사기혐의 피의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 면서 영장심사가 끝날 때까기 피의자를 검찰청에 있게 했다. 그랬더니 법 원에서 피의자를 불법 구금시킨 사실이 인정된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결 국 검찰은 피의자를 강제로 붙잡아 놓은 것이 아니라 영장실질심사에 대 비해 피의자가 집에 갔다가 다시 오는 불편을 덜도록 검찰청사에 있을 것 을 권유한 것에 불과하다며 영장을 다시 청구했다.

이런 일련의 변화가 검찰에 주는 불편은 다만 시간과 절차가 더 소요된다 는 데 그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조사를 하기 위해 피의자의 신병을 확보 하기가 까다로워진 것이다.

아직 우리 수사는 광범위한 증거수집을 통해 혐의를 입증하는 방식보다 피의자의 자백에 의존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즉 피의자에게 자백을 받아낼 단서를 찾으면 피의자를 데려와 48시간 동안 신문을 계속해 자백 을 받아낸 뒤 피의자의 입을 통해 이를 보강할 증거의 소재를 얻는 수사 방식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피의자를 데려오는 방식도 자진출두 형식을 빌리거나 아니면 긴급구속으 로 처리했으며 법원도 영장을 심사하면서 이런 소환절차상의 문제는 크게 따지지 않았다.

그런데 형사소송법이 바뀌어 긴급구속제도가 사라지고 대신 판사가 발부 한 체포장에 의한 체포나 긴급체포만이 가능해졌다. 또 앞에서 말한 광주 지법의 경우처럼 법원도 영장심사 단계에서 피의자 소환이 적법한 절차를 밟았는지를 매우 중요하게 따진다. 아울러 법원은 피의자가 도망갔다고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해도 쉽게 믿어주질 않고서 일단 데려와보라며 구인 장을 발부한다. 사전구속영장의 남용을 막겠다는 것이다.

“피의자 소환이 까다로워져 수사 전반이 힘들어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수사기관이 범죄를 먼저 인지해 수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지 고 있다. 대검 중수부나 서울지검 특수부에서 하는 수사는 뇌물사건처럼 영악하게 증거를 감추는 사람들을 상대로 범죄혐의를 캐 들어가는 수사인 만큼 피의자를 직접 불러 조사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 같으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사람을 데려와도 체포적부심을 마칠 때까지 수사가 중단되고 만다. 치밀한 신문을 통해 피의자가 자백하도록 몰아가 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구속영장 기각률도 매우 높아졌다. 1월1~2일 연휴 동안 전국 법원에서 구 속영장을 기각한 비율이 28%에 달했다. 예년의 기각률 7~8%의 세배를 웃 돈다. 1일부터 7일까지 일주일간 서울지법 본원과 지원에서 영장을 기각 한 비율도 25.9%에 달한다.

그러다 보니 검찰이나 경찰에서 영장을 청구하는 건수 자체가 급격히 줄 고 있다. 1일부터 7일까지 일주일간 서울지법 본원과 지원에 청구된 영장 청구 건수는 1백58건으로 지난해 4백80건의 32.9%에 불과했다. 한 검찰간 부는 “경찰에게 영장을 적게 신청하라고 지시한 적이 없는데 경찰의 영 장신청 자체가 줄고 있다”면서 “이것이 우연에 불과한 단기적 현상인지 아니면 장기적인 추세를 예고하는 것인지는 아직 단언하기 힘들다”고 말 했다.


구속영장 청구기준 변화없어 기각률 높아

실제로 검찰은 아직도 구속영장 청구기준을 바꾸지 않고 있다. 음주운전 은 혈중알코올농도 얼마 이상에서 영장을 청구한다든지, 단순폭행 사건은 피해자의 진단이 몇주 이상으로 나올 때 구속수사한다든지 하는 기준이 예년과 마찬가지다. 또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보다 죄질의 경중에 따라 구속영장을 청구한다는 방침도 똑같다.

“이전에는 구속을 피하기 위해 피해자로부터 합의를 받아내려고 가해자 쪽에서 안달을 했지만 앞으로는 피해자들이 배상을 받기 위해 가해자들에 게 사정을 해야할지도 모른다. 법원이 단순폭행이나 교통사고·사건의 구 속영장심사에서 피해자와 합의하지 않은 경우에도 영장을 기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선 검찰청에서는 피해자들의 아우성이 높다는 말도 들린다.” 한 대검 검사의 말이다.

법원에 대한 검찰의 불만이 갈수록 치솟다 보니 여러 얘기가 다 나온다. “앞으로는 법원에서 구속영장을 기각해 도주한 피의자에 대해 기소중지 하지 않고 혐의사실만 입증할 수 있으면 소재불명으로 공소장에 기재해 기소할 수밖에 없다. 기소중지를 무한정 할 수도 없는 것 아니냐. 그러면 법원이 상당히 애를 먹게 될 텐데 할 수 없지 않느냐.”

한 대검 간부의 말인데 만약 이대로 된다면 법원은 소재가 불명한 피고인 을 상대로 재판을 여는 데 상당한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또다른 한 대검 검사는 “그동안 약식기소했던 벌금형 대상자도 이제는 공판에 회부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 검찰 안에서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구속기준이 바뀐 만큼 약식기소할지 정식재판에 회부할지의 기준도 달라 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대다수 사건을 정식재판에 회부하고 법원의 판단 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말처럼 돼도 법원은 늘어나는 형사재판 업 무로 홍역을 치를 가능성이 짙다.

이런 말들은 검찰로서도 법원을 애먹일 방법은 매우 많다는 뜻이기도 하 다. 속되게 말해 “우리만 고생하냐. 너희들도 고생해봐라”는 생각이 상 당수의 검사들에게 있는 것 같다.

법원도 이를 이미 의식하고 있다. 한 대법원 관계자는 “한달쯤 지나 실 질심사 실시 결과와 문제점을 모아본 뒤 보완책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 고 말했다. 검찰도 마찬가지다. 공식적인 언급은 “한달 뒤에 결과를 분 석하고 나서 영장 청구기준을 새로 마련할지, 마련한다면 어떻게 마련할 지를 정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감정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아니 이미 깊어질 대로 깊어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두 발전을 위한 불가피한 현상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가 많다.

“하루아침에 모두가 수긍하고 동의할 수 있는 발전이 있겠는가. 검찰이 아무리 법원에 감정이 많다고 해서 국민 편의에 반함에도 불구하고 법원 에 보복하기 위해 무리한 정책을 세우겠는가. 두 기관 모두 국민의 지지 를 무기로 싸울 수밖에 없다면 길게 봐서 국민들에게는 좋은 것 아닌가. ” 한 원로 법조인의 말이다.

임범 기자/ 한겨레 사회1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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