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희망의 사람들/참 일본 그리는 만화가 하시모토 마사루	1997년01월23일 제 142호

위험한 일본 그리는 `카나리아'

(사진/하시모토 마사루의 작품집 `초보자를 위한 일본'. 풍자와 해학으로 일본의 잘못된 민족주의를 꼬집고 있다.)

‘밝은 일본 국회의원연맹’(일본 자민당), ‘바른 역사를 전하는 국회의 원연맹’(신진당),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회’.

최근 일본 교과서를 바꾸기 위해 일본 정치인과 대학교수 등 민간인들이 만든 단체들이다. 이중 지난해 12월2일 만들어진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회’는 후지쓰 회장 야마모토 다쿠마, 인기 절정의 만화가 고바야 시 요시노리, 여류작가 하야시 마리코 등 78명의 유명인을 포함하고 있다 . 또 ‘밝은 일본…’과 ‘바른 역사…’에는 중·참의원 1백77명이 포함 돼 있을 정도로 세가 크다.

역사 왜곡하는 일본 우익에 준엄한 비판

그런데 이들이 말하는 ‘밝고, 바르고, 새로운 일본 역사’는 무엇일까. 요약하면 중학 역사교과서에서 종군위안부문제를 삭제하는 것이다. 위안 부문제가 역사교과서에 들어가는 것은 ‘자학적’인 역사관 때문이라고 이들은 보고 있다. ‘새로운 역사…’의 중심인물인 도쿄대 교수 후지오 카는 전후 일본 교육은 연합국이 패전국 일본을 재판한 도쿄재판의 역사 관에서 시작된 자학적 역사관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왜 교과서에까지 국가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기술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라고 되묻는다. ‘애국적 역사관’에 선 교과서 제작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정신대 문제 에 대해 그는 “일본군이 정신대를 강제연행했다는 사실이 어디에도 없다 ”며 ‘잘못된 여론’을 옳게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들의 영향 탓인지 오카야마현 의회는 지난해 12월 교과서의 위안부 기술을 삭 제해줄 것을 요청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또 니이가카현 의회에서도 비 슷한 움직임이 표면화되고 있다. 일본 우익들이 똘똘 뭉쳐 본격적인 역사 바꾸기 작업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그들이 주장하는 ‘자학적 역사관’이라는 것에 대해 심한 분노를 느낍 니다. 자학의 역사란 자신들의 과거역사를 세심히 되새기며 과거의 죄과 에 대한 반성이 있을 때, 제기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50년 이상 숨 겨오고 묻어둔 사실을, 그 동안 폭로하고 지적하면 증거가 없다고 발뺌하 다, 증거가 확실히 발견돼도 발견된 부분만 인정하는 일본 전후의 움직임 을 자학이라 표현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모순입니다. 실질적인 전범 천황 (일왕)은 자기 목숨까지 다 살았고, 천황(일왕)제는 아직도 유지되고 있 지 않습니까.”

하시모토 마사루(55). 지난 1월8일 도쿄에서 한 시간 반 거리인 한산한 시골 신즈시에서 만난 그는 최근의 일본 우익 지식인들의 행태에 강도 높 은 비판의 화살을 퍼부었다. 하지만 그의 비판을 더 정확히 이해하기 위 해서는 그가 그린 만화를 봐야 한다. 그는 30년 이상 일본의 모습을 비판 적으로 그려온 만화가이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에는 잘못된 일본이 있다

지난 95년 출간된 만평집 <초보자를 위한 일본>의 ‘종군위안부’란을 보 자. 그림엔 좌우가 다른 한 일본인이 보인다. 그 사람의 왼쪽 반은 돈다 발을 든 비즈니스맨 차림이고, 오른쪽은 철모에 총을 든 군인이다. 이 야 누스 인간은 그러나 외국에 나갈 때의 생각만큼은 일치한다. 오로지 한국 (혹은 아시아)의 처녀다. 잠깐 그림 설명을 보자.

“엔고와 함께 해외여행은 일본인에게 대중적인 것이 됐다. 50년 전에도 일본인은 전쟁을 위해 외국으로 많이 나갔다. 이 군인들의 성욕을 채우기 위해 일본 군부는 ‘위안부’ 제도를 만들었다. 많은 위안부는 조선족 처 녀로, 강제로 이 일을 하게 됐다. 그들의 생활은 매우 비극적인 것이었다 .”

하시모토는 50년 전 총칼을 무기로 아시아 처녀들을 농락한 일본이 이제 돈뭉치를 이용해 아시아 처녀들을 성의 노예로 삼고 있음을 비난하고 있 는 것이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초보자를 위한 일본>에는 역사, 정치· 경제, 문화, 사회문제, 풍속·습관 등으로 나눠 일본에 비판적 메스를 가 하고 있다.

일본 열도를 권총만으로 그려넣은 그림에는 “나는 총과 칼이 필요없는 일본을 원한다”고 적혀 있다. “난징(남경)대학살은 지어낸 이야기”라 는 일본 정치인의 망언에 그는 해골더미 위에 일본 깃발을 꽂는 그림으로 대항한다. 제목은 ‘대동아공영권’. 또 사회당의 자위대 합법 선언에는 당시 사회당 총재이기도 한 무라야마 총리를 탱크 위에 올려놓음으로써 비판에 대신했다. 총련계 여학생에 대한 이지메(집단학대)가 사회문제가 됐을 때 그는 “일본인인 것이 부끄럽다”면서 독일과 일본의 역사반성 태도를 비교했다. 왼쪽엔 일본 어린이가 ‘일본의 조선지배’라고 적힌 역사책을 들고 있고, 오른쪽엔 독일 어린이가 나치독일 이야기를 보고 있 다. 그런데 그 뒤에 선 독일인이 어린이에게 손가락으로 역사책을 똑바로 볼 것을 지적하는 반면, 일본인은 어린이의 눈을 가리고 있다. 그가 일본 사회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가 잘 드러나는 예들이다.

역 근처 찻집에서 만난 하시모토는 찻집 입구의 오른쪽 창가에서 뭔가 열 심히 메모하고 있었다. 흰머리가 상당히 많아 보이는 가냘프고 여린 듯한 인상의 50대 남성. 작업장보다는 많은 사람이 소란스레 이야기하는 찻집 에서 창작아이디어를 떠올린다는 그였다.

하시모토는 어린시절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그것이 그의 시각 형성의 기 원이라는 것이다.

그가 태어난 곳은 태평양전쟁이 시작된 직후의 도쿄 신주쿠. 전쟁의 승리 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마사루(勝)란 이름이 붙여졌다. 3남1녀의 장남 하 시모토는 책 한권 읽기보다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인지 그 의 통신표 성적은 그리 신통한 편이 못 된다. 도쿄도립공예고등학교 도안 과를 졸업하고 광고디자이너로 사회에 발을 들여놓은 뒤 광고일과 일러스 트 작품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지만, 20대 초반 그의 인생이 중요한 기로 가 되는 시간을 접한다.

뇌출혈로 인한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사망. 21살 때의 일이다. 더욱이 어 머니마저 결핵으로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겹치자, 어쩔 수 없이 가장으로 서 집안을 꾸려갈 수밖에 없었다. 21살의 젊은 나이로서는 큰 부담이 아 닐 수 없었다. 입원생활을 계속하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은 그로부터 5 년 뒤다.

“나보더 더 불행한 이들” 위해 만평가로 변신

개인의 가정에서 일어난 연속적인 불상사에 따른 어린 장남의 의무감은 컸다. 그는 불행해진 자신의 처지에 “난 왜 이렇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곧바로 “사회의 구석구석에는 나보다 더 큰 불행과 아픔을 간직한 채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계기 가 된다. 재일 조선·한국인, 부락민, 오키나와 출신자들이 이때 하시모 토가 발견한 역사적·구조적 희생자들이다.

그가 광고디자이너가 아닌 만평가로서의 출발을 결심한 것이 이때였다. 많은 것을 생각하고 고민하며 그 아픔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궁리하며 책과 토론에 몰두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또 1967~68년에는 당시 일본 사 회에 유행처럼 번지던 반전데모·베트남전쟁 반대데모 참석에 열중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는 일본 사회에서는 ‘인기없는’ 만화가다. 한때 진보적인 잡 지 <주간 금요일>이나 <마이니치신문>에서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이코노 미스트>에 지난 72년 정기적으로 만화를 연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이코노미스트> 만평일을 그만둔 것은 시작한 지 채 한달도 안 된 때였다. 중-일 수교를 비판한 ‘일-중 우호만세’가 중국 정부와 일-중우호협회로부터 항의를 받으면서 연재가 중단된 것이다 . 그림은 마오쩌둥이 일본을 향해 ‘메롱’ 하고 놀리는 것이다. 그는 일 본의 중국 침략문제는 덮어두고 정치적·경제적 이익만을 따지고 국교수 립을 한 것에 대해, 중국이 경제적 이익만을 얻을 뿐 일본을 용서하지는 않을 것임을 표현하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국가주석을 코믹하게 표현하 고, 중-일 국교정상화 뒤에 숨은 정치적·경제적 결함을 비꼰 만화는 위 정자들의 감각으론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는 이 작품을 지난 89년 외국인 지문채취에 대한 비판만평과 함 께 대단히 아낀다. 지난 89년 <월간 사회당>에 실은 지문채취에 관한 만 평은, 재일 조선·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이 등록 때 지문이 아닌 얼굴 을 찍는 내용이다. 일상적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것을 표현함으로써 지문 채취가 개개인의 인권을 유린하는 가혹한 행위임을 표현하고자 했다는 것 이 하시모토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 만평 역시 ‘차별표현’ 운운하며 항 의를 받았다. 그래서 그는 현재 정기적인 만평일을 하지 않는다. 다만 지 금까지 펴낸 20여권의 만평집이 주 수입원이 되는 것이다.

이런 그이기에 일본 사회에 대한 비판이 날카로울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채플린의 영화 <독재자>를 보셨나요. 그곳에서 표현되는 그의 날카로운 감성은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히틀러를 발견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 죠. 반대로 히틀러는 자신 속에 내재하는 잔혹한 부분을 발견할 수 없었 기 때문에 유대인 학살을 저지른 거죠.”

하시모토는 자신은 항상 옳고 정의로우며 선량하다고 착각하게 되면, 그 사람의 어떤 행동이든 정당화하게 된다는 점에 힘을 준다.

“최근에 유행처럼 번지는 일본의 보수화 흐름도 그렇습니다. 작가나 대 학교수가 일본군의 잔혹행위나 만행, 정신대의 존재 등을 부정하는 이면 에는 ‘나=선량한 사람, 나=일본인, 나=나쁜 짓이나 잔혹한 짓은 안 하는 사람’이라는 착각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일본인은 그런 만행과 잔혹행위, 파렴치행위를 할 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놓은 것이죠”.

그는 이러한 이상한 민족주의자가 활개칠수록 일본 사회는 점점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고 한탄한다. 그래서 그의 창작방법론도 독특하다.

“그래서 저도 창작을 할 때 내가 옳다는 생각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또다른 역의 편향을 낳을 수 있으니까요. 그 대신 저는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해 끊임없이 스스로 질문합니다. 환경파괴자로서의 인간은 과연 존재할 가치가 있을까 하는 식으로 말이죠.”

하시모토는 특히 이런 방식이 깊은 통찰력을 요하는 정치만화에 필요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일반적인 만화, 즉 웃음을 주는 난센스만화의 경우와 정치만화는 다릅 니다. 예를 들면 난센스만화가 길가에 버려진 바나나껍질을 밟아 넘어지 는 장면에서 웃음을 찾는다면, 정치풍자만화는 그곳에 왜 바나나 껍질이 버려져 있었는가에 대한 의문에 대답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구조적 인 사고에서 현상을 살펴야 한다고나 할까요.”

위험한 일본 예고하는 카나리아

그는 또 언제나 자신을 카나리아에 비교한다. 카나리아는 위험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새로서 한때 광원들이 탄광에 들어갈 때 꼭 데리고 갔다고 한다. 이 새가 죽으면 광원들은 위험을 느끼고 서둘러 피신을 한다는 것 이다.

“나를 일본의 카나리아로 써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일본 사회는 그렇지 않아요. 카나리아의 울음소리는 시끄럽고, 귀찮고, 무서우 니까 가능하면 안 들으려고 애쓰는 거겠죠. 그러나 이런 자세는 더 큰 위 험에 눈감아버리는 것입니다.”

지금 카나리아가 있는데도 모르는 체하는 일본, 비판의 목소리를 덮어두 려는 일본의 장래가 심히 두려울 뿐이라며, 그는 말문을 닫는다.

일본 신즈시=구영구 통신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