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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1997년01월23일 제 1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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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홍콩자본유입 논란을 일으킨 미도파백화점. 홍콩페레그린과 국내 신동방그룹의 합작사인 동방페레그린증권은 1백20만주의 미도파 주식을 매입했다.)
지금 재계는 적대적인 M&A(기업인수합병) 광풍의 한가운데 휩싸여 있다. 기업의 경영권을 빼앗으려는 세력과 이를 방어하는 대주주 사이에 사생결 단의 진검승부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에만 20개 상장사가 인수합병으로 주인이 바뀌었다. 현재 증시에 M &A설이 나돌고 있는 기업은 줄잡아 1백여개에 이르고 있다. 전체 상장사 의 10%가 넘는 수치다. 여기에는 재벌기업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외국자본까지 국내기업 넘봐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한화종금 사태는 적대적 M&A의 가공할 위력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한화그룹의 계열사로 그룹의 자금줄 역할을 맡고 있는 한화종금의 비상임감사인 박의송 우풍상호신용금고 회장이 신극동제분의 이학 회장과 손잡고 지난해 6월부터 비밀리에 한화종금 주식 40% 이상을 매집해 지난해 12월6일 경영권 인수를 선언한 것이다. 그런가하면 지난해 11월에는 두산그룹의 OB맥주가 자사의 주식 15%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대선주조 무학소주 금복주 등 지방 소주 3사로부터 회계장부 열 람을 요청하는 소송을 당했다.
지금까지 가능성으로만 존재했던 외국자본의 국내기업 M&A도 실제상황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대농그룹의 계열사로 국내 굴지의 백화점인 미도 파 주식을 겨냥한 홍콩자본 유입 논란이 그 첫 사례. 증권거래소에 따르 면 홍콩페레그린과 국내 신동방그룹의 합작사인 동방페레그린 증권은 지 난해 10월부터 연말까지 1백20만주의 미도파 주식을 매입했다.
미도파 주식 매수자의 실체와 매수목적이 밝혀지지 않아, 홍콩자본이 미 도파를 인수합병하기 위해 주식을 매집했는지 여부는 아직 정확히 확인되 지 않고 있다. 대농그룹의 곽성철 회장비서실장은 “홍콩자본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미도파 주식을 대량 매입한 것은 사실”이라고 전제하고 “그 러나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해본 결과 경영권 찬탈 기도와는 거리가 멀어 일단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농그룹은 지난해 하반기에 발행한 1백5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를 다시 매입해 대주주 지분율을 높이고 우리사주조합 지분 의 매각을 금지시키는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올해 1월부터 개정 외자도입법이 발효돼, 이제는 외국자본이 국내 기업 이사회의 동의를 얻는 우호적 M&A는 가능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일부 증 권사들은 대주주 지분율이 낮은 기업이나 외국인들이 선호하는 종목의 명 부를 작성해 외국의 펀드매니저에게 ‘추천종목’으로 보내고 있는 것으 로 알려져, 외국기업 끌어들이기에 앞장서고 있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이처럼 적대적 M&A태풍에 놀란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해 말 재정경제원 과 증권감독원에 건의서를 보내 자사주 매입한도 확대 및 M&A 세력의 인 수자금 출처조사 등 ‘피난처’ 마련을 요구하기도 했다. 또 각 대기업들 은 증권사와 M&A 중개사에 경영권 방어에 관한 자문을 잇따라 요청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국가가 경영권 지켜주던 시대 끝났다
이와 관련해 박청부 증권감독원장은 “경영권을 국가에서 지켜주는 시대 는 이제 지나갔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대주주들은 앞으로 기업경영 체 크항목에 경영권 보호라는 항목을 추가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일부 기업은 M&A의 현실화로 소수 주주들이 캐스팅보트를 쥐는 사례가 늘 어나자 부랴부랴 소수 주주 달래기에도 나서고 있다. 제일은행이 지난해 말 개인투자자 2명에게 신한종금 주식 1백4만1천2백19주(지분율 15.27%) 를 매각하자 경영권 방어에 위협을 느낀 대주주와 2, 3대 주주가 긴급모 임을 갖고 경영권 공동방어를 다짐하고 3개월에 한번씩 회사 경영상황을 설명하는 모임을 갖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소수 주주인 효진쪽이 공개매수에 나선 항도종금의 기존 대주주 서륭은 항도종금의 주요 주주인 부산지역 상공인들을 찾아다니며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주주들이 가장 신경쓰는 대목은 지분율 높이기. 특히 지분율이 낮아 M&A에 취약한 일부 대기업들의 대주주들은 지분율 높이기에 갖가지 묘수를 짜내고 있다. 그 가운데 주식으로의 전환이 가능한 전환사채(CB) 는 대주주 입장에게는 손오공의 여의봉과 같은 존재다. 일반사채의 만기 이자율이 최소 12% 이상인데 비해 전환사채는 보통 4% 남짓의 값싼 조달 비용으로 발행할 수 있는 데다 주식전환 뒤 재매입할 경우는 지분율을 높 이는 데 크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 점 때문에 지난해 대주주들의 자사발행 전환사채 재매입은 건수 와 수량면에서 95년에 비해 엄청나게 늘었다. 증권거래소가 발표한 ‘대 주주의 주식전환으로 인한 주식변동사항’에 따르면 지난해 전환사채를 재매입해 지분을 늘린 기업은 11개사로 모두 4백63만여주에 이르고, 이에 따라 이들 기업 대주주들의 평균 지분율은 18.3%에서 23.7%로 크게 높아 졌다. 95년에 이 수치가 3건, 72만여주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대주 주들이 얼마나 전환사채를 ‘사랑’하게 됐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사모(私募)전환사채에 비하면 일반전환사채의 위력은 ‘새발의 피 ’에 불과하다. 박의송씨쪽과의 지분경쟁에서 열세에 놓여 있던 한화종금 쪽은 지난 7일 즉각 주식전환이 가능한 4백억원 규모의 사모전환사채를 발행한 뒤 곧바로 인수자를 통해 이를 주식전환해 지분을 17% 추가 확보 함으로써 전세를 일거에 역전시켰다. 그동안 임시주총 소집에 반대해온 한화쪽이 느닷없이 임시주총 소집을 수용한 배경에는 사모전환사채라는 ‘히든카드’가 있었던 것이다.
공모전환사채의 경우는 재경원 지침에 따라 발행 6개월 뒤에야 주식전환 이 가능하다. 한화쪽은 코앞에 닥친 임시주총에서 공모전환사채를 활용할 수 없게 되자 즉각 주식전환이 가능한 사모전환사채를 삼신올스테이트생 명보험 등 거래처 법인 3곳에 발행해 이를 우호적인 지분으로 확보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사모전환사채도 원칙적으로는 공모전환사채의 발행조건 에 따르게 돼 있지만 한화종금처럼 증권사 은행 등 금융기관이 인수기관 으로 끼지 않은 법인에 발행하는 사모전환사채에는 아무런 제재조처가 없 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한화그룹쪽은 “도덕적인 비난쯤은 각오했다”고 실토할 정도로 사모전환사채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는 급박한 상황에 몰 린 것이다.
지분율 높히기 체면차릴 때가 아니다
신호그룹 계열사인 신호제지와 신호페이퍼는 당장 M&A 위협이 있는 것도 아닌데도 지난 1월9일 이사회에서 한화종금식의 사모전환사채를 각각 3백 억원, 2백억원씩 발행하기로 결의했다. 기업들이 경영권 방어에 얼마나 전전긍긍한지를 드러내는 사례다.
그러나 기업들의 이런 백방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M&A광풍은 쉽게 수그러 들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올해 4월 개정 증권거래법이 시행되면 M&A가 지금보다 어려워지기 때문에, 그 이전에 인수합병 움직임이 더 거세게 일 것이라는 게 증시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전망이다. 새 증권거래법에 따르면 25% 이상의 지분을 확보하려 할 경우 반드시 공개매수를 통해 그해 거래 가격 중 최고가격으로 ‘50%+1주’이상을 매수해야 하고, 공동목적을 가 진 사람들의 지분이 합산된다.
특히 정부의 금융산업 재편방침에 따라 올해 활발하게 벌어질 금융기관간 합병 움직임이 다른 분야에도 자극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M&A 움 직임은 이미 지난해 말 공개된 국민투신의 증권사 전환 계획을 기점으로 본격화할 조짐이다. 국민투신이 증권사 전환 뒤 현대증권에 경영권이 넘 어갈 것으로 예상되자, 대우와 엘지증권은 대한투신과 한국투신의 유상증 자에 적극 참여해 지분율을 높이고 경영권 장악을 노리고 있다.
여기에다 그동안 소수 주주의 권리 보호와 이익 증진을 등한시해온 우리 기업의 풍토도 M&A를 자초하는 토양을 제공하고 있다. 한화종금 사태도 창업 때부터 참여해 온 박이송씨쪽에서 오랜 소외감 끝에 행동에 나섰고, 지방소주 3사도 제2주주로서의 대접을 제대로 받겠다면서 소송을 제기했 다.
한편 사모전환사채의 경우 증자와 마찬가지 효과를 냄으로써 즉각 주식값 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는데도, 목전의 지분율 제고 및 경영권 방어목 표에 급급해 일반주주들에게 아무런 양해도 구하지 않는 대주주들의 최근 행태는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증권사의 한 간부는 “한화종금이 사모전환사채를 발행해 결국 임시주총 표대결에서 승리할지 모르지만, 소수 주주 보호에 철저한 미국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난리 가 났을 것”고 대주주들의 이기심을 꼬집었다.
김도형 기자/ 한겨레 경제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