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희망의 사람들/인터뷰/하시모토 마사루	1997년01월23일 제 142호

"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하시모토 마사루는 일본 국내의 매스컴이나 작가들이 피하는 소재나 테마 에 대해 적극적인 창작 활동을 지속해왔다. 이런 그의 눈에 비친 일본 내 창작동향은 ‘진실에 대한 외면’이다. 그는 또 이런 창작경향은 곧 장기 적으로 ‘독자들로부터의 외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진단한다.

- 일본 언론에서 금기시되는 종군위안부(정신대)에 관한 작품을 지난 83 년 발표했는데.

= 종군위안부의 존재 사실은 옛날부터 공공연한 비밀로 존재하고 있었고 나 역시 그 문제는 알고 있었다. 일본의 교과서 문제가 발생한 지난 82년 역사를 왜곡하려는 문부성에 반감을 갖고 작품 발표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센 다카코가 쓴 역사책에서 사실을 확인한 뒤 작품을 발표했다. 위안부문제에 대해 많은 작품을 발표한 것은 아니지만, 일부 보수지식인 들의 반역사적 언행에 분노를 느낀다.

- 일본의 출판계나 매스컴에서 금기시하는 보도는 이외에 어떤 것들이 있 는가.

= 첫째는 천황(일왕)에 관한 보도나 풍자이다. 특히 풍자의 경우 얼굴이 직접 표현되거나 하면 그 부분이 삭제되거나, 발표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 소규모 출판사의 경우는 좀 나은 편이지만 대규모 출판사나 언론은 불 가능하다. 두번째는 광고주와 관련되는 작품이다. 대표적으로 원자력 반 대 입장에 선 작품은 대부분의 언론이 회피한다. 이는 거대한 광고주인 전력회사에 반대하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공해산업 수출 비판도 마찬 가지다. 언론이 가진 비판기능을 제한하는 자본의 논리가 활개치는 것이 다. 그외에도 논란이나 논쟁의 소지가 있는 경우도 ‘중립’이라는 가면 아래 대부분 회피하려 한다.

- 요즘 신문지면에 ‘만평’ 코너가 사라져가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만평을 싣지 않은 지 오래되었고, <도쿄신문>도 올해부터는 없애버렸다.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만평을 보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현 이 많다. 메시지가 불투명하고 날카로운 감성을 느낄 수 없다. 편집자는 이런 일 저런 일을 고려하며, 논란이 될 만한 작품은 거부한다. 작가는 편집자의 입에 맞는 작품 구상에 열을 올린다. 모든 것이 악순환의 연속 이고, 이는 더 심각한 결과를 가져온다. 독자로부터 필요성이나 존재조차 거부당하는 것이다. 작가의 책임인 동시에 편집자의 책임이기도 하다. 신 문이나 잡지에 게재된 ‘만평’이 책으로 출판되지 않게 된 것은 벌써 오 래 전의 이야기다. 왜냐하면 팔리지 않고 감동을 주는 작품이 없기 때문 이다.

- 지금까지 출판한 책과 자신의 작품의 특징을 간단히 설명한다면.

= 공저를 포함하면 약 20여권이다. 글과 그림, 그리고 그림만 제공한 경 우도 있고, 다행인 것은, 이런 비판적인 작품은 자비 출판의 경우가 많은 데 나의 경우 그 정도는 아니라는 점이다. 내 작품의 특성은 한마디로 요 약하면 잘 팔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팔리기 위해 나 자신의 작품 을 바꿀 생각도 없고 극만화를 그리고 싶은 생각도 없다. 어차피 나의 감 성과는 일치되지 않는 단순한 외도일 뿐이기 때문이다. 한 잡지사 편집장 이 한 말이 기억이 난다. “당신은 자기의 의견과 사상을 가지고 있기 때 문에 안 된다”는 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하지만 생각 없는, 생명 없는 그림은 그리고 싶은 생각이 없다.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