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음유시인 정형근씨	1997년01월23일 제 142호

세상을 속삭이는 당신의 바보

얼굴을 감싼 수염. 색바랜 청바지와 벙거지 모자. 그리고 검은 뿔테 안경 . 그의 후줄근함에선 어쩐지 히피족의 체취가 묻어난다. 그는 그것들을 그냥 자유스러움이라며 웃어넘기지만.

음유시인 정형근(42)씨가 10년 만에 두번째 음반 <나는 당신의 바보>를 냈다. 앨범에 수록된 11곡 모두를 손수 지었다. 음반과 함께 같은 제목의 시집도 냈다. 사실 그의 곡은, 노래이기 이전에 시라 해야 옳다. 시집에 서 빼낸 시에 곡을 붙인 것에 불과하니까. 노랫말에 빠지면 시요, 곡에 빠지면 노래인 셈이다.

79년 가수활동을 시작한 그는 81년부터 6년 동안은 공무원으로 살았다. 까닭은 묻지 말란다. 그는 87년 첫번째 음반 <호수에 던진 돌>을 발표하 며 가수활동을 재개했다. 하지만 이 음반은 곧 방송금지곡으로 묶이고 만 다. 이 까닭은 꽤 알려져 있다. <한겨울 눈 속에서 밟아야 올라오는 보리 나무야> 같은 노래가 저항가요로 찍혀 정권의 미움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이후 노래에서 조금씩 멀어졌다. 한때 영화, 연극의 배경음악을 만 들기도 했지만 생계를 위해 운전기사, 배추장수로 살아야 했다. 그의 노 래에 배인 허허로움은 꽤 매웠을 그런 세상살이와도 무관하지 않은 듯하 다. 그래서 이런 말이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바보는 남을 해하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의 것을 움켜쥐지 않고 그저 줘버립니다. 요즘 세상 엔 똑똑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그는 바보일지 모른다.

권태호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