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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
1997년01월23일 제 1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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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준석작 `평동마을의 오후 1' 1993. 캔버스에 유채. 105x316cm)
이주헌/ 미술평론가
풍경에 반대한다? ‘반(反)-풍경’전은 기왕의 풍경화 장르를 반성적인 시각으로 극복한 풍경화들을 선보이는 전시다. 그러니까 자연을 감상의 대상으로 고정시켜 놓고 탐미적으로 형상화하는 단계를 넘어선, 좀더 진 일보한 풍경화전인 것이다.
1월25일까지 중구 다동 동아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이 전시는 ‘의심-숨 은 이야기 찾기’‘잠재적 풍경’ ‘땅-삶과 역사의 이상향’ 등 3부로 구성돼 있으며 이나라, 최소연, 박형식, 김지원, 박진화, 이만우, 함명수 , 양대원, 이지선, 전용석, 한희원, 백범영, 오종은, 이준석 등 대부분 3 0대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내걸렸다.
역사가 서리고 현실이 투영된 풍경들
서양미술사에서 풍경화가 본격화되기 시작하는 것은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다. 스페인의 속국이었다가 독립해 자치공화국을 이룬 네덜란드는 급속히 성장하는 시민의식에 힘입어 자신들의 산하를 그리고 감상하는 일에 남다 른 애정을 보였다. 산수화가 최고 중심 장르였던 동양문화권과 달리, 서 양에서는 역사화, 인물화, 동물화, 풍경화, 정물화의 순서로 장르의 위계 가 매겨져 있었다. 따라서 풍경화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그만큼 ‘세속적인’ 지향성을 드러내는 것인 동시에 일종의 민족주의적인 정서 가 발흥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민족주의와 자유주의가 주된 이 념이었던 19세기에 자연주의 작가들과 인상파 작가들이 풍경화를 많이 그 리게 되는 것은 그런 배경에서다. 특히 인상파에 와서는 빛에 대한 관심 이 고조되면서 야외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빛의 향연을 묘사하는 일이 다 른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산수화를 높이 치던 우리나라에서 서양미술 도입 이래 한동안 풍경화가 인기 장르로 부상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특히 일제 치하 에서 서양미술을 수입해야 했던 우리 화단은 조국의 산하와 풍경을 적극 그림으로써 그 패배감을 얼마간 달랠 수 있었다. 물론 일제 또한 이국취 향의 발로로 한국의 풍경화를 선호했다. 자연히 풍경화가 보편적인 회화 장르로 자리잡게 됐다.
하지만 70년대 이후 추상미술을 중심으로 한 현대미술이 우리 미술의 지 형을 새롭게 재편하면서 풍경화를 비롯한 구상회화는 슬그머니 주변 장르 로 밀려나 버리고 말았다. 심지어는 아마추어들의 영역같은 것이 돼버렸 다.
이런 점에 비춰 80년대 민중미술의 등장 이래 우리 산하를 인문지리적 관 점에서 조명해보고 또 시대의 표정을 풍경화 형식으로 형상화하는 회화가 늘어난 것은 그야말로 풍경화 장르에 대한 반성적인 접근이 아닐 수 없다 . 단순한 심미적 감상록으로서의 풍경이 아니라 역사가 서리고 현실이 투 영된 그런 대상으로서의 풍경인 것이다.
이번 전시는 앞서 언급한 대로 3부로 구성돼 있다. 범주화된 작품들을 통 해 좀더 쉽고 단순하게 그 영역을 구분하자면 1부는 ‘정치적 풍경’ 2부 는 ‘심리적 풍경’ 3부는 ‘사회적 풍경’이라 할 수 있겠다.
1부에 속한 작품들은 그러니까 개인과 제도 혹은 권력, 또는 일상과 정치 사회적 맥락의 관계에 대한 그림이다. 최소연의 <느린 탄환>은 6개의 장 면으로 이뤄진 작품인데 연기를 내뿜으며 다가오는 포탄과 야구공을 받으 려다 놓친 아이, 가로누워 미 공군기가 나는 모습을 텔레비전을 통해 보 는 사람 등이 그려져 있다. 일상의 순간순간에 개인과 사회가 어떻게 만 나고 어떤 권력관계가 형성되는가를 차분한 시선으로 해부한 그림이다. 그런가하면 김지원의 <사적인 공간과 세 개의 공공건물>은 건물 옥상에 만들어진 작고 남루한 화단과 그 화단 위로 얼핏 보이는 삭막한 느낌의 세 개의 공공건물(아마도 구청이나 경찰서, 동사무소 같은 건물일 것이다 )을 통해 주인으로서의 시민과 ‘공복’의 역전된 권력관계를 무심한 붓 길로 표현하고 있다.
2부의 작품들은 이를테면 ‘깨어서 꾸는 꿈’ 같은 것이다. 비가 온 뒤 땅에 고인 물을 보다가 문득 무념무상에 빠져버리는 그런 경우, 그리고 그 고인 물이 무언가 예기치 않았던 이미지로 다가오는 경우, 우리는 곧 잘 쉽게 현실로부터 탈출하게 된다. 이만우의 <무제>가 바로 그런 작품이 다. 함명수의 <사유공간> 시리즈는 일종의 악몽처럼 다가오는 작품이다. 진한 안개 속에 산과 숲이 언뜻언뜻 보이는가 하면 그 사이로 또 무리지 어 몰려 있는 빌딩들이 무언가 불에 타 유성처럼 떨어지는 물체가 보인다 . 자연을 파괴하고 들어선 인위적인 사물이나 그런 인위성을 가능하게 한 욕망 따위를 연상하게 하는 그림인데, 그것은 마치 안견의 평화로운 <몽 유도원도>에 대적해 서 있는 이미지 같다.
“우리 시대의 풍경은 감상이 아니다”
3부의 작품들은 주제가 좀더 구체적이다. 사회적 소재를 다뤘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백범영의 <20세기의 유적-난지도 패총>은 강을 가로지르는 성수대교와 성수대교 뒤로 보이는 난지도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전통 산 수화 기법에 담긴 이 ‘쓰레기 유적’은 당연히 자연의 아취와는 거리가 멀다. 객관적인 풍경을 그리지만 거기에는 이렇듯 인간의 욕망이 낳은 병 폐가 서려 있는 것이다. 이준석의 <평동 마을의 오후1> 역시 유사한 시선 을 보여준다. 평화롭게 농사를 짓는 농민들 뒤로 보이는 마을 뒷산은 각 종 사격장 표시로 ‘오염’돼 있다. 이 시대 실존의 장으로서의 풍경인 것이다.
이 전시를 통해 우리가 분명히 인식할 수 있듯 우리 시대의 풍경은 이제 더이상 단순한 감상의 대상만은 아니다. 어느덧 그 둥지 속 인간들의 일 상과 권력관계가 중심된 이미지로 잡혀 있는 곳이다. 우리시대의 풍경은 결국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다.
이주헌/ 미술평론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