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시대 |
1997년01월23일 제 142호
|
|---|
(사진/우리의 공연문화를 선도하는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
우리나라 오페라계의 현실에 관해 얘기하는 자리에서 어떤 사람이 “요즘 우리나라 출신의 오페라 가수들이 세계적으로 활약하고 있는 것 같으니, 우리나라의 오페라 수준도 이제 대단하지 않은가?” 하고 말했다. 그분 말씀은 소위 3대 소프라노, 즉 조수미, 홍혜경, 신영옥 등을 얘기한 것이 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유명한 3대 소프라노가 한국의 오페라 발전에 기여 한 바는 거의 없다는 것이 필자의 대답이다. 그들은 비록 개인으로는 크 게 성공하였는지 몰라도 불행히도 국내 오페라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 았다. 다만 신영옥만이 국내에서 오페라 주역을 한 차례 했을 뿐이다(93 년 한국오페라단의 <루치아>). 이들에 대한 일반의 관심은 매스컴 덕이며 , 대부분 국민들은 이들의 오페라 공연을 실제 보거나 들은 적이 없다. 다만 콘서트, 이벤트 그리고 TV 출연 등으로 훌륭한 오페라 가수라고 선 전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 공연들과 실제 오페라와는 그 비중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직도 국내 오페라계는 외국 에서 성가를 쌓은 그들에 대해 짝사랑을 보내고 있다.
세계 무대는 아직도 멀기만 하다
그들이 세계적인 실력을 갖췄음은 분명하지만 결코 세계 정상의 가수는 아니다. 소프라노의 경우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월드클래스’는 10~20 명 정도며, 그들보다 인지도가 떨어지지만 상당한 실력을 갖춘 가수들도 수십명이 넘는다. 3대 소프라노는 ‘월드클래스’를 목표로 하는 ‘인터 내셔널 클래스’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오페라는 47년 <춘희> 공연을 시발로 열악한 기반과 일반의 부 족한 호응에도 오페라를 사랑하는 성악가들과 일부 인사의 거의 광적(?) 인 정열에 의해 이제 웬만한 수준에 이르렀다.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긴 하지만)
필자의 견해로는 지난해의 경우, 6월의 <아이다> 공연(국제오페라단)은 7 월의 뮌헨국립가극장의 공연보다 나았으며, 10월의 <청교도> 공연(국립오 페라단)은 성악적으로 상당히 높은 수준을 보여줬고, 11월의 <리골레토> 공연(한국오페라단)은 12월의 뉴욕 메트로폴리탄 공연보다 감동적이었다. 물론 그 전체적인 면 하나하나가 외국의 유명 가극보다 뛰어난 것은 아니 지만 이제 국내 오페라계에서도 외국의 가수를 초청할 때 신중을 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그외 미술, 기술, 조명 등 무대 뒷부분들이 아직도 성악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국내 오페라가 세계적인 수준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고칠 점 이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다음 일들의 해결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 생각한 다.
첫째, 무엇보다 일반인들이 오페라에 대한 편견을 벗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페라는 귀족적’이라는 등식을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오페 라의 발전은 상업으로 부를 축적한 신흥 시민계급에 의해서였다. 오페라 가 가장 융성했던 베네치아공화국에서는 무역을 하는 상인들이 오페라극 장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들은 장사로 번 돈을 오페라에 투 자했다. 그래서 오페라는 가장 민주적이고 가장 자본주의적인 예술장르다 . 귀족들의 전유물이던 살롱음악회나 미술품 감상과는 달리 입장권만 사 면 누구든 극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우리의 것은 아니지만 문화란 다양성에 의해 진가가 더욱 빛나는 법이다. 마음을 열고 오페라극장으로 가보라. 오페라를 발전시킨 가장 큰 주인공은 항상 관객이었다.
둘째 베네치아공화국에서 그러했듯이 대자본가들의 지원 없는 오페라 융 성은 없었다. 구미에서도 오페라 극장은 기업체의 지원을 받고 있다. 메 트로폴리탄 오페라도 칸텍스석유를 비롯한 크고작은 수많은 후원자들로부 터 수십년에 걸친 꾸준한 기부금으로 예술적 완성도를 유지하고 있다. 수 준 높은 공연예술이 관객의 입장료나 흥행수입에만 의존한다면 존폐의 위 기에 처하든지 아니면 인기에 영합해 브로드웨이 수준의 상업공연으로 전 락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대 뒷부분, 세계 수준에 한참 떨어져
셋째, 아직도 오페라에 대한 열정만으로 사재를 털고 있는 몇몇 마니아들 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국내 오페라무대는 그 수가 너무 적다. 성악을 비 롯한 예술분야의 해외 유학생이 상당한 수에 이르고 있지만 그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적다. 유럽에서 그곳 가수들 이상의 평가를 얻었던 훌륭한 성악가들이 국내에 들어와서 무대에 서지 못하고 생계를 위해 레슨을 하 며 좋은 목소리를 썩히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오페라의 발전은 성악의 발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스탭 진의 육성이 필요하다. 성악가들의 배출에 비하면 아직도 제대로 공연을 만들 수 있는 무대 스탭은 몇명 되지 않는다. 연출가는 물론이고, 오페라 지휘자, 음악코치, 무대감독, 기술, 미술, 조명, 의상, 분장, 번역 등 모 든 분야가 열악하기 그지없다. 이들 분야에서 제대로 인재들이 육성될 수 있다면 한국의 오페라도 세계 수준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페 라에 주력할 수 있는 오페라 오케스트라가 단 하나라도 어서 만들어져야 만 한다.
박종호/ 음악 칼럼니스트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