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997년01월23일 제 142호 한겨레21

YS ‘정보정치’에 중독됐나

(사진/김 대통령의 국정운영에서 안기부는 이미 빼놓을 수 없는 보좌기구로 자리를 잡았다. 권영해 안기부장과 자리를 함께 한 모습.)

“과거 중앙정보부로부터 가장 피해를 입은 사람 중 한 사람이 나입니다 … 그런 박해를 받은 입장에서 안기부법을 개악한다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습니다 … 안기부법 개정은 공산주의로부터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한 최 소한의 조처입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1월7일 청와대 연두 기자회견에서 안기부법 개정이 권위 주의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냐는 한 외신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답변했다. 야당 총재시절은 물론이고 3당합당 이후 여당의 대표로 있으면서도 자신 에 대한 안기부의 정치공작 가능성에 의혹의 눈길을 보냈던 김 대통령은 안기부 하면 ‘정치적 탄압’을 떠올릴 정도로 안기부를 불신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이같은 답변만으로는 남용소지가 큰 안기부법 개 정 배경을 둘러싼 안개가 걷히지 않는다. 김 대통령의 국정운영에서 안기 부는 이미 빼놓을 수 없는 보좌기구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김 대통 령은 안기부의 기능을 필요로 하고 안기부도 김 대통령의 보호와 지원을 필요로 하는 공생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이같은 공생관계는 연말의 안기 부법 개정으로 구체화됐다고 볼 수 있다.


고위관료 사생활까지 보고

김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안기부는 ‘과거의 원죄’ 때문에 전전긍긍했다 . 김 대통령에 대한 안기부의 공포감은 취임 첫해인 93년 김 대통령의 지 시에 따라 여당이 야당과 합의해 안기부 직원들의 정치활동 간여금지와 이적단체 고무찬양죄에 대한 수사권 제외를 골자로 하는 안기부법 개정을 단행했을 때 극에 달했다. 과거 독재정권의 핵심 버팀목으로서 무소불위 의 권력을 휘둘렀던 안기부로서는 무장해제를 당한 셈이었다. 그러나 4년 이 지난 지금 안기부는 김 대통령에 대해 안도하는 표정이 역력하며 김 대통령도 안기부에 대해 깊은 신뢰를 표시하고 있다.

김 대통령이 극도의 불신감을 갖고 있던 안기부의 기능에 대해 재평가하 기 시작한 것은 취임한 지 1년쯤 된 뒤부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중 총재의 정계복귀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지방자치선거 문제가 최대의 정치 현안으로 등장하자 김 대통령은 그물망과 같은 전국적인 정보망을 갖고 있는 안기부의 정보수집 활동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정국이 여야의 첨 예한 대립국면으로 치달을수록 김 대통령은 여야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고 위 공직자들에 대한 안기부의 정보보고서를 찾는 빈도수가 높아졌다. 교 수 출신이었던 김덕 부장을 권영해 부장으로 경질한 이후 김 대통령은 주 요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안기부장을 전화로 호출해 해결책 마련을 지시 할 정도로 변했다. 김 대통령은 어떤 경우는 하루에도 몇 차례 안기부장 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된 거냐”면서 대안제시를 요구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통령의 신임을 재획득한 안기부는 청와대로 매일 두 가지 이상의 보 고서를 보낸다. 그중 하나는 정치인과 고위 관리들의 신상관련 정보이며 하나는 정책관련 보고서이다. 신상보고서 중에는 정치인들과 고위관료들 의 동향과 비리관련 정보는 물론이고 사생활관련 정보까지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보기관은 최고 권력자가 좋아하는 정보를 제공하게 마련이다. 최고 권력자에게 정보는 마약과 같아 절제하지 않을 경우 중독 된다. 또 반복되다 보면 국정운영상 불가피하다는 자기최면에 빠지게 되 고 여론의 추이에 대해서도 둔감해진다. 김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안 기부는 “아무개 장관은 모 술집에서 팁을 얼마 주었다”, “아무개 정치 인은 여자관계가 복잡하다”는 식의 시시콜콜한 정보까지 보고하는 것으 로 알려졌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김 대통령이 이같은 가십성 정보를 선호하니까 안기부에서도 그런 내용의 정보수집 활동에 나설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설명했다.


대북한 정보는 사조직에 의존

김 대통령이 과거의 집권자와 마찬가지로 안기부에 의존하게 된 것은 폐 쇄적 밀실정치 스타일과 무관하지 않다. 밀실정치 스타일을 고수하다 보 니 공조직보다는 사조직에, 사조직보다는 보안에 철저한 정보기관에 의존 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해 말 공로명 외무장관의 전격 해임도 안기부의 정보보고서가 발단이 됐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연말 정치권을 강타했던 자민련 의원의 집단탈당에 앞서 안기부에서는 탈당 가능한 자민련 의원들 의 명단을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대 북한 정보에서 김 대통령은 안기부보다는 중국 연변 주변을 왔 다갔다하는 개신교 목사들이나 재미교포 등과 같은 아마추어 인사들의 정 보에 대해 신뢰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있을 정도로 사조직에 의존한 다. 김 대통령이 안기부의 전망과는 달리 북한 정권의 조기 붕괴 가능성 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는 것도 사조직 관련 인사들의 편향된 정보 때문 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통령의 독선적 국정운영방식에 근본적인 변화 가 없는 한 김 대통령과 안기부의 밀월관계는 계속될 전망이다.

김용성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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