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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1997년01월23일 제 1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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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대통령의 연두회견은 노동자들에게는 "경제가 어려운 만큼 대국적으로 참고 견디라"는 `고통분담'의 논리만을 제시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올해 연두 기자회견에 대해 유독 반색을 하며 환영한 집 단이 있다. 바로 재계이다. 재벌들의 이익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는 특 히 대통령이 직접 기업활력 회복을 강조하고 금융개혁위원회를 기업인 위 주로 구성할 뜻을 밝힌 대목에 대해 환영한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반면 정부·여당의 노동법 날치기 통과에 분노한 노동계를 비롯, 상당수 의 시민단체와 학계인사들은 대통령의 안일한 현실인식에 커다란 실망감 을 느낀다는 반응이었다. 실제로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 이후 노동자들 의 파업과 지식인들의 항의는 오히려 더 확산되는 양상을 보였다.
천연덕스러운 거짓말들
이같은 상반된 반응은 김영삼 대통령이 연두회견에서 밝힌 올해 국정 운 영계획이 어떤 방향을 지향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김 대 통령은 “경제회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산주체인 기업 활력을 되살리 는 일”이라고 강조해, 기업 지원을 정책 우선순위에 둘 것임을 분명히 했다. 반면 노동자들에게는 “경제가 어려운 만큼 대국적으로 참고 견디 라”는 이른바 ‘고통분담’의 논리만을 제시했다.
노동법 날치기 처리에 항의해 파업을 하고 거리에 나선 노동자들은 김 대 통령의 이런 발언은 공허하다못해 황당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권영길 민 주노총 위원장은 이런 조합원들의 심경을 대변해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이 노동법과 안기부법의 날치기 통과 후 그 심각성을 깨닫고 있는 지 의심스럽다”고 탄식했다.
특히 “경제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생산적 노사관계를 재정립해야 하고, 이를 위해 노동관계법을 ‘선진형’으로 바꾼 것”이라는 김 대통령의 발 언은 노동계와 전문가들로부터 즉각적인 반박을 받았다. 한국노총(위원장 박인상)은 “노동자와 국민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려는 기본자세조차 결여 된 독선”이라고 비난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김 대통령은 경제협력개 발기구(OECD)에서도 개악으로 규정하고 있는 개정 노동법을 ‘선진형’이 라고 강변함으로써 국민들을 속이고 있다”고 반박했다. 민주노총에 따르 면 경제협력개발기구 노동조합 자문위의 존 에반스 사무총장은 지난해 말 노동법 날치기 직후 김 대통령에게 항의서한을 보내 “새 노동법은 군사 독재시절의 노동조합 자유에 대한 근본적인 제약들을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노동자에 대한 주요 보호장치마저 제거했다”고 지적했다는 것이 다.
또 전국 각 대학의 중진·소장 경제학자들로 구성된 한국사회경제학회(회 장 조영건 경남대 교수, 부회장 김수행 서울대 교수)는 김 대통령의 연두 회견 직후 성명을 내 “진정한 국가경쟁력 회복을 위해서는 노동자를 비 롯한 국민대중의 적극적인 참여가 전제되어야 하나, 개정된 노동법은 노 동자와 국민대중의 민주적 권리를 억압하는 내용으로 돼 있다는 점에서 개악”이라고 규정했다. 이 학회는 이어 “이같은 노동법 개악과 임금억 제 기도는 저임금 저가격에 기초한 전근대적 산업구조를 온존시킴으로써 우리 경제의 지상과제인 기술경쟁력 확보를 통한 경제체질의 개선을 오히 려 방해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며 “한국경제의 경쟁력 회복은 저임금 과 가부장적 노사관계에 의존하고 있는 현재의 독점재벌 구조를 개편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연두회견에서 김 대통령은 노동법 날치기 처리를 합리화하고 노동자 들에게 경제회복을 위해 파업을 자제하도록 요구하는 과정에서 사실과 다 르거나 허위의 숫자와 논리를 갖다붙이는 ‘실수’를 여러 번 저질렀다. 일부 ‘무지’로까지 비친 이런 ‘실수’들은 자기 말의 설득력은 물론 그에 대한 국민적 신뢰도마저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예를 들면, 김 대통령은 기존 노동법을 헌 옷에 비유하면서 “지난 43년 동안 한번도 개정되지 않았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노동조합법과 노동쟁 의조정법은 7번, 근로기준법은 9번 개정되는 등 그동안 바뀌지 않은 노동 관계법은 하나도 없다. 또 94년에 일본에서 2백29건의 노동쟁의가 발생하 는 등 선진국에서도 매년 수십건에서 수백건에 이르는 노동쟁의가 일어나 고 있는데도, 김 대통령은 “선진국 어느 나라에 노동쟁의가 있느냐”고 천연덕스럽게 반문했다.
시국인식, 근본수정 있어야
결국 김 대통령은 올해 연두 기자회견에서 이처럼 경제와 노사문제를 재 벌 등 기업 지원 일변도의 편중된 시각에서 다루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고의든 아니든 사실을 왜곡하는 논리로 이런 자신의 생각을 국민들에게 강요한 셈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정책위원장인 이필상 교수(고려대·경영 학)는 “국민들이 문민대통령에 대해 한가닥 희망을 걸었는데 어두운 절 망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며 “대통령의 회견내용에 현재의 난국에 대한 현실인식이 전혀 없고 해법도 제시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금융개혁위 설치구상에 대해 “기업인 위주 구성 등 발표된 방식으 로는 금융개혁위가 자율적인 금융개편을 유도하기보다 재계의견을 대폭 받아들여 제2의 관치금융 체제를 창출하는 역할을 하는 데 그칠 것 같다 ”고 걱정했다.
이주명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