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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1997년01월23일 제 1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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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여 임기를 불과 1년여 남겨두고 있는 김영삼 대통령이 ‘힘에 의한 정 치’를 선언하고 노동관계법과 안기부법 개정의 날치기 처리에 항의하는 수십만 노동자와 성직자, 지식인들과 정면대결에 들어갔다. 반독재투쟁 과정에서 ‘국민을 향한 정치’ 노선을 추구하면서 이들의 지지에 힘입어 ‘문민정부’를 탄생시켰던 김 대통령이 심각한 민심이반의 표출 속에서 ‘국민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모습은 비극적 한국정치의 한 단면을 상징 적으로 보여준다. 민주화투쟁시절 “민심은 천심”이라면서 민주화투쟁의 선봉에 섰던 김 대통령이 이제 민주화 역행의 주역이라는 집중포화를 맞 고 있기 때문이다. 독불장군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공언했던 김 대통령 스 스로가 독불장군이 되고 있는 것이다.
12월 대선도 유보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등산으로 울분을 달래면서 “권력자는 산에 오 를 때보다 하산할 때 더욱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던 김 대통령은 임기 의 내리막길에 들어선 시점에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자초하고 있는 셈이 다. 이같은 위기는 말할 것도 없이 독선적 권력만능주의와 정치적 반대자 들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정치안정이 없다는 굴절된 정치철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국통신 파업 때 노조를 국가전복세력으로 매도했던 김 대통 령의 편협하고 왜곡된 노조관은 노동법 개정에서도 그대로 관철됐다. 그 는 여야의 정치대결도 국회 내 소수세력에 불과한 야당이 다수에 굴복하 지 않고 국민선동을 일삼기 때문에 비롯된다고 인식한다. 여권의 민주적 대통령 후보 선출도 그에게는 권력세습을 위한 ‘세자책봉’에 불과하다. 일각에서는 김 대통령 자신이 이같은 위기적 상황을 임기 말 권력누수의 방지와 대선국면의 주도권 장악 차원에서 방조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관측한다. 실제로 여권 내부에서는 김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를 예정대로 치를 것이냐에 대해 의구심을 표시하는 시각도 있다. 북한 정권의 붕괴가 능성에 집착하는 그가 북한 내부의 정변 가능성이 현실화하고 최근의 정 국혼미가 위기적 상황으로 치달을 경우 국가비상사태를 이유로 12월 대선 을 유보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 인사들은 김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돌발적 상황변화에 따른 대선일정의 차질 여부를 묻 는 질문에 대해 “가상적 상황에 대해 애기하지 않겠다”는 말로 부인하 지 않은 태도를 주목한다.
김 대통령의 이같은 독선적 현실진단은 지난 1월7일의 청와대 연두 기자 회견 때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는 노동관계법과 안기부법의 날치기 국 회처리에 반발하는 노동자들의 전국적인 파업으로 초래된 정국긴장의 해 소방안을 논의하자는 야당의 여야 영수회담제의를 “이 시점에서 만나서 무슨 해결의 길이 있느냐. 현재로서는 만날 계획이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또 노동자들의 파업이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규정하고 “노 동자나 기업인이나 조금씩 불리한 사항이 있더라도 경제가 어려운 만큼 대국적으로 참고 견디어야 한다”고 노동자들의 파업철회를 촉구했다. 그 의 이날 기조연설과 기자들과의 일문일답내용의 저변에는 자신의 취임 이 후 모든 국정운영이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만한 업적으로 가득 찼으며 최 근의 노동자 총파업과 같은 사태는 법개정의 취지를 잘못 이해한 데서 비 롯된 것이므로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보인다. 문민정부의 대통령이 하는 일에 야당과 노동자들이 감히 어떻게 도전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김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국정운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취임 뒤 얼 마 안 돼서부터 야당은 그의 독단적 리더십을 ‘문민독재’라고 성토했다 . 그가 최대의 업적으로 내세우는 각종 개혁조처들이 법과 제도를 무시하 고 마치 왕조시대의 군주의 ‘어명’처럼 진행됐기 때문이다. 그의 이같 은 초법적 개혁조처들은 군사독재정권의 유물을 일거에 청산한다는 명분 때문에 국민들은 묵시적인 지지를 보냈으며 야당의 문민독재 주장은 큰 설득력을 지니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개혁사정의 칼날에 추풍 낙엽처럼 사라졌던 비리인사들에 대해 김 대통령은 ‘국민화해’라는 이 름으로 정치적 복권을 베풀었다. 심지어는 80년 신군부의 쿠테타 집권과 정에서 언론인 학살을 주도했던 주역들을 신한국당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그의 ‘역사 바로세우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종잡을 수 없게 만드는 자기부정인 셈이다.
‘유시무종’(有始無終)의 정치스타일
정치권의 인사들은 이같은 현상이 김 대통령의 국정수행 능력부족에서 비 롯된다고 진단한다. 국가의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조정과 통합, 설득과 타협, 일관성 있는 정책수행, 국민여론의 수렴, 공명정대한 인사관리, 국가적 과제에 대한 정확한 판단력 등 핵심적인 자질을 결여하 고 있다는 것이다. 결단해야 하는 사안과 설득과 타협이 필요한 사안을 혼동함으로써 국민적 불신을 자초하는가 하면 단안을 내린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면서 성과를 확인하고 문제점을 차분하게 보완하는 내실 있는 국정운영보다는 끊임없이 일을 벌여나가는 대외과시형 노선을 추구함으로 써 외화내빈의 상태에 도달한다. 노사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노동관계법과, 인권탄압 및 정치사찰의 소지가 큰 것으로 의심받는 안기 부법 개정의 경우 결단에 앞서 설득과 타협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국가적 현안이었으나 김 대통령은 힘으로 밀어부치다 정치적 위기에 직면하고 말 았다.
김 대통령과 야당시절부터 친교를 맺어온 일부 원로정치인들과 언론인들 은 그의 정치스타일을 ‘유시무종’(有始無終·시작만 있고 끝이 없다)이 라는 말로 압축한다. 요란하게 시작하지만 용두사미격으로 끝나고 만다는 뜻이다. 김 대통령이 대통령 취임 이후 시행한 정책들을 보면 실제로 그 렇다. 그는 침체된 경제회복을 위해 ‘신경제 5개년 계획’이라는 청사진 을 제시하면서 매달 경제장관들이 참석하는 토론회를 개최했으나 중도에 아무런 설명 없이 그만두고 말았다. 대신 등장한 것이 ‘세계화’였으나 역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노동관계법과 안기부법 개정의 날치기 처리 이후 해외의 주요 언론들은 일제히 김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을 비난하 고 있다. 경제가 선진국 수준으로 성장한 이상 이에 걸맞은 국제적 지위 를 확보하기 위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면 서 국회비준이 성사된 이후 이를 자랑했던 김 대통령은 갑자기 경제위기 론을 펴면서 노동자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모순된 행동을 취했다. 취임 뒤 4년 내내 외친 구호 중의 하나가 규제완화였으나 아직도 김 대통령 스스 로 규제완화가 미흡하다고 평가할 정도로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청와대 가 발벗고 나서 추진했던 사법개혁도 사법고시 합격자 수 증원에서 그쳤 으며 교육개혁도 입시제도의 수정 수준에서 끝났다. 정부조직 개편도 몇 개의 부서 통폐합으로 끝났으며 공언했던 후속조직 개편은 슬그머니 실종 되고 말았다. 이번에는 또 대대적인 금융개혁을 들고나왔다. 김 대통령이 취임 뒤부터 최대의 국정과제로 제시했던 부정공직자의 부정부패 척결에 도 현직 장관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가 연두회 견에서 또다시 부정부패의 근절을 약속했지만 얼마나 실현성이 있을지는 의문시되고 있다. 구호만 있고 실체는 없는 ‘빈수레 정치’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적 위기국면 발전할 수도
물론 김 대통령은 정치적 난국을 돌파하는 결단력과 정적들과의 과감한 정면승부 등과 같은 정치적 자질을 소유함으로써 40여년에 걸친 고난의 야당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청와대 입성이라는 대망을 실현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정치적 승부의 관점에서만 보고 이에 몰두하는 그의 정치스타 일은 대통령직의 수행에 중대한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정 치적 절충과 타협을 배제함으로써 복잡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스스로 차 단하고 문제 자체를 한층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김 대통령은 청와대에 들어온 이후 모든 사안에 대해 자신만큼 아는 사 람이 없다고 자신하고 있으며 청와대 참모진과 내각의 장관들을 자신의 지시를 집행하는 도구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이 최근의 정치현실을 이렇게 인식하면서 강공책을 고수하는 한 여야의 대결구도와 노동자와 정부의 극한대립 양상은 국가적 위기국면으 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의 중재 가능성도 그가 야당 지도자들과 의 대화를 거부함으로써 봉쇄된 셈이다. 김 대통령의 임기 말기는 이렇게 브레이크 없는 열차처럼 정치적 위기를 향해 돌진하고 있는 것이다.
장정수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