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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1997년01월23일 제 1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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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울산 태화강 둔치에 모인 현총련 산하 1만5천여 조합원이 오색천을 들어 올리며 단결을 과시하고 있다.)
위기의식과 분노, 그리고 공감….
새벽 날치기에 눈곱 부비며 머리띠를 동여매고 파업투쟁에 나선 현장 노 동자나 순종의 넥타이를 벗어던지고 87년 6·10항쟁 뒤 처음으로 거리로 진출한 사무직 노동자. 파업투쟁에 나선 노동자를 대신해 멈춘 기계를 돌 리기 위해 동원된 하청업체 노동자와 이들을 독려하는 관리직 사원들…. 처지는 달라도 날치기노동법을 바라보는 눈은 하나였다. “남의 일이 아 니라 곧 닥쳐올 내 문제”라는 것이다.
‘집회 참가’로 날아간 성과금 2백만원
“여기서 물러서면 정말 파리목숨이다. 컨테이너에서 산타모로, 다시 갤 로퍼로….” “이제 그런 라인 재배치도 없어. 차가 잘 팔릴 때는 죽어라 일하고, 안 팔릴 때는 집으로 가라면 찍소리 못하고 옷 벗는 수밖에.” 1월9일 오전 10시30분. 경남 울산시 중구 양정동 현대정공 생산2부. 산타 모 조립·생산라인에서 노동자들의 이런 웅성임이 요란한 전기드라이버 소리와 뒤섞였다. 날치기노동법에 맞서 현대자동차, 미포조선 등 현대그 룹노동조합총연맹(의장 이영희·35) 산하 8만여 노동자들과 함께 총파업 을 시작한 지 보름. 15일로 예정된 공공부문, 한국노총, 사무직 노동자들 과 연대 총파업을 위한 숨고르기에 들어간 현총련 지도부의 ‘부분조업 재개’ 방침에 따라 생산라인에 다시 섰지만 파업의 고삐를 결코 놓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감돌고 있었다.
“93년에 이미 당했거든요. ‘경영상 절박한 이유로 엄격히 제한한다’고 떠들지만 법 없이도 3백50명씩 무참히 잘랐는데….” 이상능(33)씨. 그는 과거의 악몽이 되살아난 듯 “법으로 보장해준 칼을 휘두르지 않을 자본 가가 있겠느냐?”며 쓴웃음을 지었다.
지난 93년. 회사쪽은 컨테이너 생산라인의 수지가 안 맞는다며 대만으로 공장을 옮기면서 3백50명의 노동자를 자진사퇴 형식으로 옷을 벗겼다. 그 나마 버티던 2백50명은 정공 내 다른 생산라인이나 현대자동차, 현대중공 업 등 계열사로 전출시켰다. 그때 다행히 살아남은 이씨와 3천2백명의 현 대정공 노동자들에게 날치기노동법은 곧 해고 통지서를 의미했다.
“회사쪽은 더이상 전출시킬 고민도, 퇴사를 설득할 필요도 없다. 생산품 이 안 팔리면 라인을 폐쇄하고 ‘집에 가 쉬어’라고 한 마디 하면 그만 이다.” 현대정공 노조 쟁의부장 박창근씨는 “우리뿐 아니라 함께 파업 에 참여한 8만 현총련 노동자들 모두의 목을 죄는 ‘노비법’”이라며 이 렇게 말했다.
9일 오후 1시. 울산시 중구 신정동 태화강 둔치. 2단계 파업을 시작한 지 난 1월7일부터 오후 1시면 어김없이 계속되는 ‘노동악법 및 안기부법 전 면무효화를 위한 울산노동자 결의대회’는 울산 노동자들의 분노가 그대 로 서려 있다.
“노동자는 없고 노동만 있는 노동법이 재벌과 자본가의 잔치상에 올려졌 다.” 현대중공업 소조립부의 한 노동자는 이렇게 내뱉는다. 집회에 참여 한다는 이유만으로 연말성과금 2백만원을 한푼도 받지 못했다는 그는 “ 엄연히 존재하는 단체협약도 무시한 채 이렇게 목을 죄는데 노동법이 발 효되면 얼마나 기고만장 하겠냐”고 되묻는다.
“이제 조·반장들도 말리지 않는다”
가족들의 분노와 불안은 더 절박하다. 장미화(32)씨. 날치기 통과가 있은 날부터 파업에 참여한 남편 얼굴이나 보려고 집회장을 찾았다는 그는 당 장의 생계에 대한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현대자동차 도장경력 9년째인 남편이 일주일마다 주야 맞교대로 12시간씩 일해서 한달 1백50만원 정도 가져와요. 변형시간근로제가 도입되면 철야는 철야대로 하고 수당은 한푼 도 못받는다는데… 살길이 막막해요.” 적어도 “30만원 정도 수입이 줄 어든다”는 게 그의 계산이다.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돈많이 받고 일하면서 파업은 무슨 파업이냐고 말들 해요. 하지만 돈문제를 떠나 언제 공사판을 전전해야 할지 모르는 것 아닌가요? 모아둔 돈도 없고….” 파 업에 참여한 남편에게 커피 한잔이라도 건네려고 나왔다는 김혜미(27)씨 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이렇게 말한다.
이런 위기감은 파업에 적극 참여한 노동자나 그 가족들만의 몫은 아니다. 파업 때마다 노동자를 설득하고 멈춘 기계를 돌리기 위해 동원되는 관리 직 사원들. 그들도 이번만은 다르다.
“말을 안 해 그렇지 과장급 이상 관리직도 무척 불안해 하고 있다.” 2 만9천여명의 노동자들이 파업을 계속하고 있는 현대자동차의 프레스기술 부 조성(38)씨. 그는 “관리자나 조·반장들이 파업 참여를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는 차원을 넘어 동조적”이라며 분위기를 전한다.
실제 현장에 투입돼 10여명의 하청업체 직원들에게 조업을 독려하고 있는 현대자동차의 한 과장급 관리자는 “집회에 나서면 당장 불이익이 닥치는 위치 때문에 그렇지 솔직히 불안감은 현장노동자들보다 더 크다”고 말한 다. “지난해 팀제 실시이후 자기보다 하급자가 팀장으로 있는 곳에 일방 적으로 내려보내거나 전혀 알지 못하는 부서로 발령내고, 과장급 이상 직 원들에게 상여금을 차등 지급하는 등 나가달라는 압력이 눈에 보였는데 법만 시행되면 언제 잘릴지 알 수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결국 이런 광범위한 공감대는 임금인상이나 단체협약을 내걸고 파업을 하 던 때와는 확실히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대자동차 김근태 공보 부장은 “임·단투 때도 70% 정도의 파업 찬성률을 보인 현총련 산하 6개 사업장에서 모두 90%를 넘는 지지를 보였다”며 “당장 자신의 목을 조여 드는 노동법을 앉아서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분위기가 압도적”이라고 말 한다.
울산 시민들의 변화도 곳곳에서 느껴진다. 임·단투 때마다 나타나던 파 업에 대한 거부감이나 불만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신정동에서 식당 을 한다는 서진형(73)씨. 그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을 막 퇴직시키고 근로수당도 안 준다고 사람들이 이야기한다”며 “밥줄 끊는 그런 법을 꼭두새벽에 통과시켰으니 파업을 이해 못할 게 어디 있냐”고 말한다. 지 난 7일 1만5천명의 노동자들이 울산시청을 포위하며 시위할 때 일부 시민 들은 창문을 열고 박수를 치거나 백지에 ‘노동악법철폐’라는 구호를 써 창문으로 흔들어 보이기까지 했다. 87년 6월항쟁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현총련 이천호 선전부장은 “확실히 다르다”고 강조한다. “지금까지의 임·단투 파업 때는 ‘상대적으로 돈 많이 버는 현대 노동자들이 또 파업 을 한다’는 반발정서가 높았지만 이번만은 동조나 묵인하고 있다”고 말 한다. 날치기에 대한 분노와 함께, 정확히는 모르지만 노동자들의 희생만 일방적으로 강요했다는 정서가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다.
하청업체도 불만 표시 안 해
이런 정서는 울산시의회 의원들과 하청업체 직원들까지 움직이고 있다. 지난 8일 파업이 확산되자 유태일 의원(보사위원회 위원장) 등 10명의 시 의원은 “노동법 재검토”를 촉구하고 나섰다. 서명에 참여한 조승수 의 원은 “국민의 뜻을 거스른 날치기라는 반민주적 정치는 놔둔 채 불법쟁 의만을 문제삼아 수배와 구속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번 서명에는 신한국당 소속 일부 시의원까지 참여한 사실을 강조했다.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당장 도산위기에 빠진 하청업체조차 내놓고 불만을 표시하지는 않고 있다. 현대자동차에 부품을 납품하는 한 하청업체 과장 은 “부품을 납품 못해 하루 1억원씩 손해를 보고 있지만 대놓고 불만을 표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 “현대근로자들의 65%에 불과한 임금을 받으 면서도 변변한 노조가 없어 불만을 억누른 채 공장 가동에 동원된 우리 노동자들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솔직한 심정을 털어 놓 는다.
노동운동과 총파업의 중심지 울산. 현총련 노동자들의 총파업으로 시작된 노동법에 대한 위기감과 분노는 이렇게 계층과 계급을 넘어 계속 확산되 고 있는 것이다.
1월11일 오후 1시. 서울 중구 종묘공원. 3만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열린 ‘노동법 개악 규탄 범국민대회’는 울산과는 또다른 위기의식과 분노로 가득 찼다. 서울상공회의소노동조합, 대한지적공사노동조합, 전국전문기 술노동조합, 생명보험노동조합협의회…, 6월항쟁 뒤 침묵했던 사무직 노 동자, 그 넥타이부대의 위기와 분노가 분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장노동자들보다 우리에게 더 치명적이다.” 신한생명보험 나성윤씨. 그는 대뜸 이렇게 입을 열었다. “33개 보험사가 곧 10개 정도로 합병· 정리된다는 소문이 파다해 모두들 해고의 불안에 떨고 있었는데 노동법 날치기는 그나마 비빌 언덕조차 없애는 절망이었다.”
그의 절망은 자본주의 꽃인 증권시장에서도 느껴진다.
끝간 데 없이 곤두박질치는 주가. 그 객장의 숫자를 응시한 채 하루하루 를 살아야하는 증권사 직원들의 위기감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지금도 월별, 분기별 약정실적이 낮으면 조사역이나 업무추진역 등으로 발령해 사실상 퇴사를 종용하는 분위기 때문에 수천만원의 개인빚을 얻어 실적을 채우며 버티는 게 우리 현실이다. 정리해고가 합법화되면 무참히 잘려나 가지 않기 위해 또 얼마나 빚을 끌어대며 발버둥쳐야 할지 걱정이다.” 증권사노조협의회장 고영창씨(일은증권노조위원장). 그는 자신들이 거리 시위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은행이나 보험사처 럼 금융기관 통폐합에 따라 현재 인원의 30% 정도가 곧 잘릴 것이라는 소 문속에서 날치기법의 위협은 공포에 가깝다”고 그는 덧붙였다.
고용 불안에 떠는 넥타이들
아예 “명예퇴직이라도 됐으면…” 하고 절망하는 넥타이들도 있다. 11일 종묘공원 집회장 한켠에서 추위를 잊으려는 듯 동료 10여명과 오징어를 안주삼아 소주잔을 기울이던 김재연(39)씨. 서울 은평의료보험조합에 다 니는 그의 넋두리가 시작됐다. “그래도 일반기업은 나은 편이다. 설립 1 0년도 안 된 조합 성격상 명퇴조차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정부가 추진 하는 의료일원화와 기구통합에 따른 인원감축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정말 로 잘리는 것만 남았구나 하는 분위기다.”
노조 없는 전문직종의 넥타이들도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제일기획 카피라이터 김아무개(33)씨. 그는 “우리야말로 파업을 해야 하는 게 아 니냐는 분위기”라고 위기감을 표현했다. 얼마 전에는 사장이 바뀌면서 1 천2백명인 인원을 8백명으로 줄이겠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무노조 방침 과 쉽사리 떨쳐 일어날 수 없는 위치때문에 속앓이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 “결국 광고 불경기라 일이 없는데도 기를 쓰고 일을 찾아나서는 수밖 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불과 7분 만에 날치기된 노동법안이 계급과 계층, 지역을 넘어서 이 땅 모든 월급쟁이와 그 가족을 이렇게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위기. 그 두려움이 커질수록 분노와 공감, 그리고 살아남기 위한 저항의 불길도 높아만 간다.
신승근·김창석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