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1997년01월23일 제 142호 한겨레21

87년 6월과 97년 1월, 아주 비슷해져간다

(사진/노동법 무효과 투쟁은 `정권퇴진'차원의 정치투쟁으로 발전되고 있다. 방송사 노조원들의 피켓시위.)

지난 1월10일 오후 2시30분께 서울 광화문 4거리. 지나가는 차량들 속에 서 갑자기 요란스런 경적소리가 울려 나왔다. 교통상황 때문이 아니었다. 민주노총 소속 사무직 노동자들과 재야 및 시민·사회운동 단체 대표 등 5백여명이 동화면세점 빌딩 앞에 모여 김영삼 정권 규탄을 위해 손수건과 피켓을 흔들며 청와대를 향해 일제히 야유의 함성을 질렀다. 그러자 때마 침 지나가던 차에 탄 많은 시민들이 이에 동조하는 뜻에서 경적을 울린 것이다. 그런 가운데 “김영삼 정권 퇴진하라”는 구호가 터져나왔다.

10년 전인 87년 6월항쟁 때로 시계바늘을 돌려보자. 6월10일 오후 서울시 청 앞 분수대 부근을 달리던 차량들이 일제히 경적을 울려댔다. 이때 이 부근에 모여 있던 재야운동가, 학생, 시민들이 일제히 손수건을 흔들며 거리로 몰려 나왔다. 그리고 “호헌철폐! 독재타도!”의 매서운 함성이 메아리쳤다.

물론 10년 전과 현재의 상황은 엄청나게 다르다. 6월항쟁 당시는 서슬퍼 런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시절이었고, 지금은 문민정부다. 그러나 6월항쟁 당시와 현재의 상황을 비교해보면 아주 흡사한 면과 함께 다른 양상도 두 드러진다.

우선 6월항쟁 당시 전두환 정권의 ‘6·29선언’이라는 항복을 받아내는 데는 학생 재야운동가, 노동자와 함께 넥타이부대가 기폭제가 됐다. 전두 환 정권의‘4·13 호헌조치’이후 학생과 재야운동단체를 중심으로 거센 저항운동이 일어나자, 이를 관망하던 사무직 관리직 노동자들이 너나없이 자연발생적으로 시위에 가담해 불길을 댕긴 것이다.

지금 상황은 어떤가. 그때와 같이 넥타이부대들이 정권에 반기를 들기 시 작했다. 당시 무조직적, 자연발생적으로 독재정권에 맞섰던 넥타이부대와 는 달리 이제 그들은 사무노련, 건설노련, 전문노련, 언노련, 의보노조 라는 조직화된 깃발 아래 노동계의 총파업과 정권퇴진운동을 주도하고 있 다는 점이 주목된다. 학생운동 및 재야운동권,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었던 87년 때와는 확실히 다르다.

교수, 문화예술인, 종교인 등의 참여도 87년과 지금 상황은 엇비슷하다. 87년엔 4·13 호헌조치에 반발해 각계각층의 시국선언이 잇달았고, 범국 민서명운동의 열기도 뜨거웠다. 지금도 비슷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독 재와 반민주에 대한 항거라는 측면에서도 당시나 지금이나 비슷한 상황이 다. 군사독재냐, 문민독재냐의 차이뿐이다.

이번 노동계의 총파업투쟁도 87년 때처럼 넥타이부대로 불리는 사무직 노 동자와 일반시민들의 대규모 가세 여부가 열쇠다. 그러나 아직 87년 상황 에는 미치지 못한다. 일본 <교도통신>의 히라이 히사시 기자는 “현 사태 는 아직 노동문제에 국한돼 있는 것이지, 반YS투쟁 단계는 아니다”면서 “87년의 상황과는 확실히 다르다”고 말한다.

하지만 범대위 관계자들은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전 국민적 저항을 결집 해 문민독재에 대한 제2의 6월항쟁을 이끌어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귀 추가 주목된다.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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