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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1997년01월23일 제 1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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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는 김영삼 정권이 집권 뒤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는 점을 확연히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 12월26일 새벽 신한국당의 노동법·안기부법 기습 날치기 처리로 촉발된 노동계의 ‘총 파업 투쟁’은 이제 교수, 신부, 목사, 승려, 변호사, 의료인, 문인, 사 무직 노동자, 일반 시민이 가세한 전 국민적 ‘정권퇴진운동’으로 확산 될 조짐이다. 분노한 사람들은 단순히 노동법·안기부법 무효화만을 요구 하지 않는다. YS의 비민주적 국정운영과 독단적 행태에 대해 “더이상 기 대할 게 없다”며 ‘반YS’의 기치를 높이 들고 있는 것이다.
김영삼 정권, 집권 뒤 최대 위기
이처럼 현 시국은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의 생존권 확보를 위한 노동법 무 효화투쟁, 다른 한편으로는 현 정권의 반민주적 행태에 대한 양심적 지식 인 및 일반 시민들의 정치투쟁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세계의 유수한 언론들은 사설 등을 통해 김영삼 정권의 노동법· 안기부법 개정날치기 처리에 비판을 가하는가 하면, 각국 노동단체들은 한국대사관 앞에서 연일 시위를 벌이는 등 밖으로부터의 압력도 거세지고 있다. 문민정부를 자처하는 김영삼 정권으로서는 사면초가의 상황인 것이 다.
한 정치학자는 “이번 노동계의 파업사태에 대해 정부가 과거 권위주의정 권처럼 강경일변도로 나간다면 전국민적 저항에 부딪쳐, 결국 김영삼 정 권의 운명도 과거정권과 비슷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는 이어 “날 치기로 처리된 노동법과 안기부법은 재심하는 절차를 밟아야 하며, 여야 가 협의를 통해 이 두 법을 재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김영삼 정 권으로서는 그것이 국민과의 직접 충돌을 피해 정치위기를 만들어내지 않 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한다.
그가 그런 진단을 내린 지난 1월10일,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강 당에서는 현 시국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주목할만한 집회가 열렸다. 낮 12 시가 되자, 곳곳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근조 민주주 의”라고 새겨진 검은 리본을 저마다 가슴에 달았다. 재야 및 시민·사회 운동단체, 학계, 천주교 개신교 불교 등 종교계, 여성계, 법조계, 의료계 등 각계를 총망라한 3백여명의 대표자들이 참석했다.
이날 성공회 강당에서의 모임은 군사독재정권시절에나 열림직한 ‘전국사 회단체 비상시국 연석회의’였다. 87년 6월항쟁 이후 10여년 동안 거의 볼 수 없었던 비상한 모임이었다. ‘노동법·안기부법 개악 철회와 민주 주의 수호를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가 제안해 마련된 이 비상시국회의 참가자들은 현 시국을 ‘국민의 생존과 민주주의가 위협받 고 있는 비상시국’으로 규정하고, 날치기로 개악된 노동법과 안기부법의 개정을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을 결의했다. 그리고 신한국당에 항의 전화 걸기, 검은 리본·넥타이 착용, 모금 서명운동 참여 등 범국민 행동지침 도 내렸다.
결의에 참여한 단체는 무려 8백63개로 실제 전국 거의 모든 사회·운동단 체는 다 참여한 셈이다. 비상시국회의 대표로 성명을 발표한 김중배 참여 연대 대표는 “6월항쟁 10주년을 맞은 이 해에, 우리는 강도짓 같은 날치 기의 규탄에 그치지 말고, 범국민적 저항을 모으는 운동으로 다시 한번 지배권력의 항복을 받아내자”고 역설했다. 참가자들은 “해체! 신한국당 , 퇴진! 김영삼”이 쓰인 어깨띠를 두르고 거리로 나섰다.
그리고 다음날 오후 2시 서울 종묘에서는 무려 3만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범대위 주최로 ‘노동법 개악 규탄대회’가 열려, 집권여당과 김영삼 정 부를 강력 규탄했다. 이날 집회에는 특히 승려, 수녀들까지 참여해 ‘근 조 민주주의’,‘근조 김영삼 정부’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구호를 외쳤다. 참여자 대부분이 화이트칼라층이라는 사실은 주목할만한 일이었 다. 곳곳에서 “김영삼 퇴진” 구호가 터져 나왔고, “김영삼부터 정리해 고하라”는 기발한 구호도 나왔다.
‘민주 대 권위주의’의 대결
지난 1월10일 서울 여의도 신한국당 당사 앞에서는 KBS, MBC, CBS, EBS 등 무기한 연대파업에 돌입한 방송4사 노조원들과 언론노련 간부 등 1천 여명이‘노동악법 날치기 신한국당 규탄대회’를 열고 “신한국당 해체하 고, 김영삼 정권은 퇴진하라”고 외쳤다. 기자·프로듀서들도 대거 포함 된 이들은 신한국당 당사 유리창에 수천개의 달걀세례까지 퍼부으며 집권 여당을 규탄했다.
이 두 집회는 화이트칼라층마저 등을 돌린 김영삼 정권에 대한 민심이반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일부 정치학자들은 이런 상황을 두고 ‘민주 대 권위주의’대결이라는 과거 독재정권 때의 상황이 재현되는 양상이라고 진단한다.
“현 정권은 과거 군부독재정권 때보다 더 나쁜 법을 만들어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일반 국민의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 김영 삼 대통령은 집권말기 권력 누수현상을 막고, 권력이양 뒤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안기부법을 개악한 것으로 보인다. 또 권력이양기에 노동 정책을 보수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가 재벌 등 보수세력을 끌어안기 위해 노동법도 개악한 것이다. 김 대통령의 민주주의 제도화 의지는 확실하지 않다. 따라서 ‘권위주의 정권 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시민들의 대결’ 이라는 과거의 정치상황이 다시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김 대통령이 권 력이양기 경직적이고 권위적인 방법을 강화하면 엄청난 저항에 부딪쳐 심 각한 위기를 맞을 것이다.” 최장집 교수(고려대 정외과)의 진단이다.
당초 김영삼 정권은 노동자의 노동법 투쟁이 이렇게 확대될 줄은 예상하 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다소 저항이 있을지 모르나, 준여당편인 보수층 을 끌어안으면 쉽게 해결될 것으로 판단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러 나 김영삼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보인 노동문제의 몰이해와 무식견 은, 연말의 ‘날치기’에 몹시 분노해 있던 일반 국민들의 반YS정서에 기 름을 붓는 결과가 됐다. “우리는 매일 노동쟁의를 벌이고 있으나, 선진 국 어디에 노동쟁의가 있습니까”라는 따위의 그의 발언은 “일국의 대통 령이 어떻게 저 정도 수준밖에 안 되는가” 하는 자질 시비를 일으키며 지식인들과 일반 국민들의 등을 돌리게 했다.
최고 지성인인 교수를 비롯해 종교인, 예술인 등 각계 인사들의 시국성명 이 최근 봇물처럼 터지고 있는 것은, 날치기 노동법과 안기부법이 얼마나 부당하고 불법적인지에 대해 전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반증이 다. 이제 문민정부를 자부하던 김영삼 정권 아래서 지식인들의 이런 항거 는 현 정권이 과거 권위주의정권의 구태를 답습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 러내는 것이다.
지난 1월8일 명동성당에서 발표된 전국 36개 대학 법학과 교수 62명의 시 국성명은 현 정권에 대한 지식인들 비판의 신호탄이었다. 이들은 “문민 정부 4년을 마감하는 시기에 또다시 등장한 날치기는 절차적 민주주의와 의회주의를 다시 한번 유린했다는 점에서 우리 국민 모두를 참으로 참담 하고 비통하게 만드는 것이었다”면서 안기부법 무효화와 노동관계법의 민주적 개정을 강력 촉구했다. 법과대학 교수들의 이런 요구는 과거에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었다. 양승규 교수(서울대 법대)는 “스스로 법을 어기는 정권이 노동자의 생존권투쟁을 법대로 처리하겠다는 것은 어 불성설”이라면서 “사태 해결을 위해서는 정부가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 고, 국민적 협조를 구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신한국당·청와대 심각한 위기의식
이날 한국사회경제학회 소속 교수들도 “학자적 양심에 비추어 노동법과 안기부법은 절차와 내용면에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것”이라고 성토했 다. 이어 다음날 한신대 교수 70명은 “이번 개악입법은 과거 독재정권의 망령을 되살리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성명을 냈으며, 전북대 교 수 80명도 이날 “두 법의 날치기 통과는 민주화 성과를 전면적으로 부정 한 쿠데타적 헌정파괴행위”라고 강도높게 비난했다.
이어 1월9일에는 이화여대 교수 54명, 1월12일에는 한국방송대 교수 42명 과 한국외대 교수 1백1명이 각각 이에 가세했다. 전국서명교수모임 공동 대표인 장임원 교수(중앙대 예방의학과)는 “1월17일까지 전국 28개 대학 교수들이 시국성명을 발효할 예정이며, 앞으로 60여개 대학에서 3천명 이 상이 이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지난 1월13일 발표된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사제 8백62명의 ‘노동 법·안기부법 불복종’ 시국선언은 현 정권으로서는 상당히 충격적인 것 이었다. 이들의 시국선언은 87년 6월항쟁이후 10년만의 일이다. 의료인 5 백42명도 이날 두 법의 철회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보건·의료인들은 1월18일에는 사상 첫 거리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도 민변(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을 중심으로 현역 법조인을 상대로 서명운동에 들어갔으며, 조만간 시국성명도 낼 예정이다. 문화예술인 3백33명도 지난 1월9일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지역의 열기도 거세다. 범대위의 유제운 조직팀장은 “이번 투쟁을 범국 민적 저항운동으로 조직화하기 위해 지역의 무수한 동지들이 엄청난 노력 과 투쟁을 벌이고 있으며, 제2의 6월항쟁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자신감 있게 말한다. 실제 범대위는 지난 1월11일 박형규 목사, 김승훈 신부, 김 진균 서울대 교수, 이돈명 변호사, 신경림 시인 등 양심적인 각계 인사 1 천9백97명이 서명한 시국선언을 시작으로, 각 지역 시군구 단위에서 시국 선언을 유도해 전국민적 투쟁의 불길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또 아래로부 터의 범국민서명운동도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펼칠 참이다.
화이트칼라층, 즉 넥타이부대의 가세는 노동법 무효화와 김영삼 정권 퇴 진투쟁에서 아주 주목할 만한 양상으로 현 시국의 ‘태풍의 눈’으로 떠 올랐다. 최근 민주노총 집회는 사무노련(한국사무노동조합연맹), 건설노 련(전국건설노동조합연맹), 전문노련(전국전문기술노동조합연맹), 병원노 련(전국병원노동조합연맹), 의보노조(전국의료보험노동조합), 언노련(전 국언론노동조합연맹) 소속 조합원들이 강한 조직력으로 참여해 주도를 하 고 있는 양상이다. 신한국당과 청와대가 최근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도 노동 파업의 주체세력이 화이트칼라층이라는 점 때문이라는 게 정가의 시각이다.
이번 총파업에 적극 찬성하거나 심정적으로는 동조하는 사람들은 절대 다 수다. <한겨레>가 최근 전국 도시 직장인 6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봉급생활자의 75.0%가 총파업을 지지하는 것으로 드러나 이를 증명해준다. 김영삼 대통령의 고향인 부산에서 8백59명을 상대로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도 75%가 노동법 반대투쟁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대통령 좋다는 사람 아무도 없다”
그러나 각 단위사업장에서의 특수성 등으로 실제 총파업투쟁에 많은 화이 트칼라 조합원들이 적극 참여하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 사무노련 소속 한 일리스 노조위원장인 임유(36)씨의 말이다. “우리 전국리스노조협의회 차원에서만 볼 때, 밖에서 생각하는 만큼 조합원들의 정서나 투쟁의지가 고양돼 있는 것은 아니다. 운영위원급 이상의 조합원들이 현 상황을 민주 대 반민주 대결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대부분 조합원들은 감정적 저 항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처럼 넥타이부대의 총파업과 김영삼 정권퇴 진 운동에의 합류는 아직 87년 6월항쟁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하 지만 앞으로의 사태 추이에 따라 이들이 폭발적인 힘을 보일 수 있을 것 으로 보인다.
일반 국민들의 정서도 김영삼 정권에 등을 돌렸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나 타나고 있다. 택시운전사인 심아무개씨는 “야당에서 민주화 투쟁한 사람 이 더 독재를 한다”면서 “김영삼 대통령이 잘한 것은 세금 올린 것 딱 한 가지”라고 독설을 퍼붓는다. 중견 은행원인 양아무개(37)씨는 “지금 김영삼 대통령 좋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면서 “심지어 경남 부산 사람들도 욕을 하고 있다”고 사내 분위기를 전한다.
87년 6월항쟁에 참여했다는 30대 중반의 양시모(36)씨는 “요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라면서 “험난한 80년대를 살며 6월항쟁 을 통해 독재정권의 항복을 받아내는 데 일조를 했던 30대들은 요즘 시국 을 보면서 아주 불쾌하게 생각하고, 심지어 헛살았다고까지 생각한다”고 한숨을 쉰다.
김홍명 교수(조선대 정외과)는 “최근 사태는 정치투쟁적 성격이 강하며, 과거처럼 다시 민주 대 권위주의 싸움으로 돌아갔다”면서 “먹고 살 만 한 준여권의 부동층의 정서조차도 반YS로 돌아섰다”고 분석한다. 막대한 돈이 필요한 대선을 앞두고 재계를 끌어안으려는, 또한 기득권층을 결속 시키면 된다는 김영삼 정권의 안일한 전략이 이처럼 예기치 못한 상황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국민적 저항으로 확산되자 신한국당 관계자들과 청와대쪽은 상당히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1월10일 열린 신한국당 상임고문단회의는 이런 상황을 잘 반영해주고 있다. “정국이 그 어느 때 보다 심각하다고 본다. 지금 거리에 김영삼 정권 타도 플래카드가 나붙었 다. 사태는 간단치 않다. 내 나이 80이다. 자유당 때부터 정치해온 경험 에서 하는 얘기다”(민관식 고문). “오늘의 노동사태는 국민 모두가 우 려할 사태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민심이반 현상이다. 노동계와 국민 설 득이 중요하다. 검찰이 문제에 너무 일찍 뛰어든 모습이다. 검찰이 일찍 뛰어들면 사태가 매번 악화됐다”(이한동 고문).
날치기와 노동법 개악으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국가적 위신도 곤두 박질치고 있다. 미국·영국·독일 등 선진 각국의 언론들은 사설 등을 통 해 한국의 파업사태를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최근 “김 대통령의 고통분 담 호소는 파업노동자들의 비웃음을 사고 있다”면서 “국회를 특공돌격 대처럼 운용함으로써 한국민주주의는 장난감에 불과한 인상을 주었다”고 비판했다.
반김영삼 투쟁 장기화될 듯
불길처럼 번지고 있는 노동법 무효화와 김영삼 정권 퇴진투쟁은, 정부의 민주노총 지도부에 대한 구속과 강경탄압 여부와 관계없이 장기화할 가능 성이 높다. 일단 ‘노동자와 민주주의’에 대해 탄압의 칼을 뽑아든 김영 삼 정권이 후퇴해 도로 칼을 집어넣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후퇴 는 곧바로 김영삼 대통령의 임기말 권력누수의 시발탄이 될 것으로 보인 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쪽도 더이상 물러설 수 없다며 초강경으로 나오 고 있다. 밑으로부터 치밀고 올라오는 투쟁 열기에 따라 노동법안의 개정 약속 등 구체적인 성과가 보장되지 않는 한 달리 출구가 없기 때문이다.
김영삼 대통령 집권 뒤 최대의 위기는 과연 어떤 결말을 맺을 것인가. 숨 막히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김경무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