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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이 부부의 ‘작은세상’ |
1997년01월23일 제 1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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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느 면에서나 내 주변을 챙기는 데 아주 소극적이다. 팔불출에 든 다는 ‘자식이나 아내(혹은 남편?) 자랑’은 말할 것도 없고 어디 가서 자기 식구 챙기는 것에 나는 아직도 익숙하지 못하다. 하다 못해 친정에 갔을 때도 나는 자식이나 남편 챙기는 것을 천성적으로 싫어하고 부끄러 워한다.
신혼 초에 남편은 이게 굉장히 불만이었다. 처가의 반찬이 번번이 자기 입맛에 싱거웠던 남편은 내가 조용히 소금을 좀 챙겨주길 바랐는데 다소 무심한 편인 나는 친정 식구들과 열심히 수다만 떨고 있었다는 것이 남편 의 후일담이었다. 물론 나라고 생각이 없었을까? 하지만 그가 한두살 먹 은 어린애도 아닌데 친정에 가서 내가 남편이랍시고 이것저것 챙기는 모 습이 아무래도 어색했던 것이다. 이제야 말이지만 나는 친정에서 나 대신 누군가 나의 남편을 챙겨주기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나는 나 의 동생들 중 누군가가 혹은 나의 친정 어머니가 남편을 챙겨주면 내심 굉장히 고마워했기 때문이다.
한데 이것은 거꾸로 남편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다시 말해서 남편이 친 정식구들을 포함한 내가 아는 사람들을 챙겨주었을 때 나는 남편이 그 어 느 때보다 고맙다. 그가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신경을 써준다는 것은 그 만큼 그와 나의 애정이 튼실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렇다.
나를 찾는 전화에 부드럽게 답해주기. 그리고 외국에 나가는 일이 이제 큰일은 아니라지만 남편이 어딘가 장시간 나갈 때는 어른들을 찾아 뵙고 그것이 힘들다면 전화라도 직접 해주길 바라는 게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남편이 “장인 어른 요즈음 건강은 어떠신가?”라고 한마디 해줄 때 내가 고마움과 함께 남편을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된다는 것을 과연 남편은 알까 ? 또 내심 내가 친정 일에 신경은 가 있지만 막상 행동으로 선뜻 옮기지 못하고 있을 때 남편이 이심전심으로 함께 그것을 걱정하는 마음, 거기서 서로 신뢰감이 싹튼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부부가 서로 연을 맺는다는 것은 두 사람의 만남으로 끝나지 않는 게 우리네 삶이다. 이것은 각자의 배우자의 식구들과도 어떤 의미에서 새 로운 가족관계로 묶인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여자가 시댁 식구에게 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남자가 처가를 챙기는 것은 좀 특별하게 아내 를 사랑하는 애처가형에서나 가능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아직도 지배적이 다. 그래서 나는 남편보다 시댁식구에게 더 살갑게 구는 며느리의 현명함 은 아내보다 처가식구에게 더 관심과 애정을 표현하는 사위의 지혜와 다 르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이러한 지혜로운 상대방에 대한 배려 또한 서 로의 신뢰감을 더욱 튼튼하게 할 것이다. 믿는 만큼 자라는 것이 아이만 은 아니다. 서로에 대한 믿음만큼 두 사람의 애정도 자란다.
변재란/영화평론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