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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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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이보다는 뺑덕어멈으로!

등록 2003-01-22 15:00 수정 2020-05-02 19:23

앞서간 나쁜 여자들이 피 흘렸기에 오늘의 여자들은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낸다

뺑덕어멈은 정말 나쁜 여자일까. 판소리 에 나오는 뺑덕어멈의 행실을 보자.

“밥 잘 먹고 떡 잘 먹고 고기 잘 먹고 술 잘 먹고/ 양식 주고 술 받아다 저 혼자 실컷 먹고/ 시원한 정자 밑 웃통 벗고 낮잠 자고… 여자 보면 내외하고 남자 보면 쌩긋 웃고/ 코 큰 총각 유인하야 밤낮 거시기하고….”

뺑덕어멈이 남자였다면…

세상에 둘도 없는 악녀다. 그러나 그가 만일 여자가 아니었다면. 박미라 부사장은 “뺑덕어멈이 잘 먹고 잘 자고 성욕왕성한 남자였다면, 그에게 씌워진 혐의의 많은 부분은 호탕한 성품으로 여겨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역사서와 문학작품을 보면 유사 이래 나쁜 여자는 언제나 있었다. 그들의 행실은 곤장을 맞았다, 쫓겨났다, 죽임을 당했다는 식의 ‘처벌’ 강도로만 짐작할 수 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다. 반면 착한 여자의 기록은 자세하고도 넘친다. 열녀비 속에, 역사의 페이지 속에 길이길이 전승돼왔다. 한국여성향토문화연구원 차옥덕 원장은 “역사를 기록해온 이들은 남성이었고, 열녀들은 남성의 기득권, 유교적 관습을 옹호해주는 구실을 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남성들이 만든 법과 질서 속에서 액세서리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여자들의 끝은 비참했다. 에 등장하는 문종의 둘째부인 방씨 역시 당대로서는 ‘쳐죽일 여자’였다. 그는 궁녀와 동성애를 한 것이 들통났다. 기록에는 궁녀의 자백을 받은 세종과 대비가 그를 불러 추궁한 뒤 내쫓았고, 쫓겨난 방씨를 부끄럽게 여긴 방씨 아버지의 요구로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나와 있다. 성종 때는 ‘재가를 한 여인의 자식은 관직에 등용될 수 없다’는 법이 만들어져 공표되기도 했다.

수많은 금기와 억압 속에 ‘나쁜 여자들’이 명멸해갔다. 이들은 손가락질당했지만 갇혀 살지는 않았다. 그들은 제도 밖에, 집 밖에 있었다. 요부로 꼽히는 어우동은 ‘감히’ 글쓰기를 하며 세상에 도전한 주인공이다. 기생이라는 신분을 이용해 수많은 남자들과 여염집 여자들이 꿈도 못 꾸는 자유로운 문우활동을 했다. 문학이 활짝 꽃핀 1830∼50년 무렵, 용산 한강변에 집을 짓고 그곳에서 여자 친구들과 어울려 시쓰기를 즐긴 김금원 역시 정실부인이 아닌 첩실이었다. 첩의 딸로 태어난 김금원은 14살 때 남장을 하고 전국을 유랑할 정도로 자유로운 여성이었다. 이들이 만약 집 안에 있었으면 허난설헌처럼 요절했거나 방씨처럼 요절을 ‘당’했을 것이다.

“4남매 아이들아. 에미를 원망치 말고 사회제도와 도덕과 법률과 인습을 원망하라. 네 에미는 과도기의 선각자로 그 운명의 줄에 희생된 자이었더니라.”

1930년대 조선반도를 떠들썩하게 한 이혼사건의 주인공 나혜석이 남긴 유언이다. 그는 남편 아닌 다른 남자와 정을 통했다는 이유로 이혼당하고 결국 비명횡사했지만, “배가 고프면 밥을 먹듯”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것뿐이라고 말한 여자였다. 나아가 부덕으로 무장한 ‘모성’의 신화마저 여지없이 깨뜨렸다.

“유교적 윤리관은 개에게나 줘라”

21세기 한국 여자들은 심청이가 아닌 뺑덕어멈이 되려고 한다. 자기가 쓴 신용카드 빚을 스스로 갚을 수 있고, 힘들 때 먹던 밥숟가락 내던지고 달려와주는 친구들이 있다면 기꺼이 ‘나쁜 여자’로 살겠다는 20대, 30대 여성들이 급속히 늘고 있다. 이들은 결혼도, 출산도, 심지어 일대일 관계의 연애도 거부한다. 왜 그럴까.

“재미가 없으니까.” ‘베드 걸’이라는 아이디를 쓰며 국내외 인터넷 무대를 누비는 30대 초반의 ㅇ씨. 하지만 그는 “때 되면 결혼하고 애도 낳을 것”이라고 순순히 말한다. 다만 “그때가 언제일지는 전혀 알 수 없다”고 덧붙인다. “한 사람을 사랑하고 아이를 낳고 부모님 잘 모시고 사는 것도 좋은 선택일 수 있죠. 문제는 그런 개인적 선택의 형식과 순서를 사회와 제도가 강요한다는 겁니다. 그런 관습을 사과라고 친다면, 맛있는 사과를 먹기 위해 자기 몸을 칭칭 묶을 필요가 있나요 차라리 안 먹고 말지. 내 돈 내고 다른 거 사먹지.”

여성이 경제력이 생긴 것과 나쁜 여자가 늘어나는 것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역사 속에서도 그 맥락을 읽을 수 있다. 질펀한 육담이 줄줄 흐르는 진도아리랑의 한 구절을 보자. “씨엄씨 줄라고 명태를 쪘더니/ 줄라고 봉께로 방망이를 쪘네/ 씨엄씨 잡것아 잠 짚이 들어라/ 밥중에 오는 임 새벽이슬 맞는다/ 씨압씨 술값은 햇닷냥인데/ 며느리 술값은 열닷냥이다/ 씨엄씨 모르게 술 돌라먹고/ 이방저방 댕기다가 씨압씨 붕알 밟았네” 시부모는 미움의 대상, 남편은 비웃음과 조롱의 대상이다. 심지어 명태잡이 나간 서방님이 못 돌아오게 “바람아 광풍아 석달 열흘만 불어라”고 외친다.

남도지방 바닷가의 이 구전민요는 당대 여자들의 살풀이였다. 얼굴도 모르는 서방에게 시집와 죽도록 일만 하고 구박당한 여자들은 바닷가에서 물일을 하며 자기 주머니를 찰 수 있었다. 경제력을 갖게 되니 알량한 돈 몇푼 벌어오는 주제에 허세부리는 남편이 한심하고 밉다. 그런 남편을 떠받드는 시부모는 ‘몽둥이질을 하고 붕알을 밟고 싶을 정도’로 더 밉다.

유교적 윤리관은 지나가는 개에게나 던져주라고 노래했지만, 현실공간에서 이들은 유교적 윤리관을 팔자로 여기고 살았다. 그들의 딸의 딸의 딸들은 더 이상 주어진 팔자를 끼고 살지 않는다. 최근 칼럼에 20대 막바지에 명동거리에서 담배를 피워물었다가 파출소에 끌려간 에피소드를 소개한 김선주 논설위원은 나쁜 여자들의 증가 원인을 이렇게 해석했다. “정부가 여자들 치마 길이를 30cm 자로 재던 시대에 남자들은 자신이 모든 여자들을 관리감독할 책임과 의무를 천부적으로 부여받았다고 여겼다. 그 관리감독 아래 머물지 않은 여자들은 나쁜 여자들이었다. 나쁜 여자들이 증가한 것은 억압과 기득권의 지형이 바뀌고 있다는 증거다. 앞서간 나쁜 여자들이 피 흘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도끼눈을 뜨는 남자이건, 부러워하는 엄마 세대건, 봐줄 사람이 없다면 나쁜 여자들도 심심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몸에 문신을 하고, 자신의 성욕을 숨기지 않고, 맘에 안 드는 남자는 가차없이 차버린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낸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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