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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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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들 위해 봉사하는 ‘증인’이 살아남는다”

스팀잇 세계의 ‘국회의원’인 증인 조재우씨 인터뷰

“제1책무는 블록 생성을 포함한 네트워크 보안”
등록 2018-03-17 01:04 수정 2020-05-03 04:28
조재우 제공

조재우 제공

스팀잇은 ‘민주적 방식’으로 운영되는 블록체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여기서 민주적 방식이란 말은 사용자들이 직접 ‘증인’이라는 대표자를 뽑아 거래의 신뢰도를 확보한다는 뜻이다.

블록체인에서 ‘신뢰도 확보’는 가장 골치 아픈 문제다. 모든 참여자가 그동안 이뤄진 모든 거래를 확인하고 검증할 수 있다는 시스템의 장점을 이유로, 이 기능을 맡고 있던 정부나 은행 같은 중앙 권력기구를 없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중앙에서 압도적인 권한을 행사해 개개인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컨트롤타워’가 없는 셈이다. 국가에선 중앙정부, 기업에선 이사회와 경영진, 금융에선 은행을 통째로 없애버린 격이다.

최근 블록체인이 기업, 금융, 인터넷, 나아가 정부의 복지제도를 대체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중앙 권력기구가 없으면 권력 집중에 따라 발생하는 비리가 없어지고, 여러 행정 비용이 사라지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누군가 사기를 치는 등 전체 시스템을 훼손하는 행위를 했을 때 이를 바로잡아야 하는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

사용자가 뽑은 증인 20명 중 유일한 한국인

제1세대 블록체인인 비트코인에선 거래의 신뢰를 확보하는 방안으로 ‘작업증명’을 택했다. 참여자들이 함께 일하며 감시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일하면 힘이 드니 보상이 주어지는데 이 과정을 ‘채굴’이라 했다. 초기엔 누구나 컴퓨터만 있으면 이 작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비트코인의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필요한 작업량이 많아졌고, 점차 비싼 컴퓨터와 대량의 전력이 필요해졌다. 결국 권력과 이익이 소수 채굴 집단에 돌아가게 됐다. 비트코인은 사실상 중앙집중 구조로 돌아갔다. 독재정부를 없앴더니 소수 대기업에 권력이 넘어간 셈이다.

신세대 블록체인인 스팀잇은 전혀 다른 방식을 택했다. 이들이 내놓은 대안은 ‘위임지분증명’이란 대의민주제다. 스팀잇 참여자들은 투표 권한 30개를 받아 자신이 원하는 후보 30명에게 투표할 수 있다. 누구든 후보가 될 수 있는데, 총 투표수에서 상위 20위 안에 든 사람이 대표자가 된다. 스팀잇에선 이들을 ‘증인’이라 한다. 혹시 증인들이 문제를 일으키거나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 교체하면 된다. 증인들의 컴퓨팅 파워를 기반으로 거래장부(블록)가 생기고, 증인이 50% 이상 합의하면 스팀잇의 정책이 바뀐다. 비트코인처럼 불필요한 작업에 전기를 소모하지 않아도 돼 친환경적이라는 장점도 있다. 증인은 스팀잇 세계의 ‘국회의원’인 셈이다.

이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할까. 전세계 80만 사용자가 뽑은 증인 20명 가운데 유일한 한국인 조재우(@clayop)씨를 인터뷰했다. 2016년 4월부터 증인으로 활동한 조씨는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어바인캠퍼스에서 도시계획과 공공정책을 연구하는 박사과정(졸업 예정) 학생이다.

스팀잇에서 ‘증인’은 전체 시스템을 유지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

스팀잇의 증인은 사용자들이 직접 선출하는 스팀 네트워크 지킴이다. 증인의 제1책무는 블록 생성을 포함한 네트워크 보안이다. 스팀달러에 대한 이자율 등 스팀잇과 관련된 각종 설정값도 조정한다. 스팀 가격 정보를 외부 거래소에 모아 스팀 블록체인에 입력해주는 일도 한다.

현재 스팀잇 증인은 몇 명인가.

총 21명이다. 스팀잇 사용자에게 투표를 받아서 20위 안에 포함되면 ‘상위 증인’이라 하고, 다른 한 명은 ‘백업 증인’이라 한다(백업 증인은 21위 이하에서 임의로 정해진다). 21명은 ‘그렇게 적지도 많지도’ 않은 수다. 증인 21명을 통해 적당히 합리적인 수준의 분권화가 이뤄졌다고 생각한다.

스팀 정책을 논하고 결정하고 21명에게 블록체인 전체의 권한과 권력이 집중되는 것 아닌가.

스팀잇 증인은 투표로 실시간 퇴출될 수 있다. 21명이라 해서 권력이 특정 소수에게 집중됐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한 시점만 놓고 보면 집중됐다고 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커뮤니티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증인은 밀려나고 사용자들을 위해 봉사하는 증인이 살아남는 시스템이다.

스팀잇처럼 위임지분증명을 택한 블록체인 플랫폼 ‘EOS’는 21명의 대표자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 ‘메모리 4테라바이트(TB), 중앙처리장치(CPU) 40코어 이상, 스토리지 1천TB, 초당 거래처리 1만건 이상’ 등을 요구한다. 스팀잇은 증인이 되기 위한 최소 요구 조건이 있나.

스팀 네트워크가 활성화될수록 증인들에게 요구되는 하드웨어 사양도 올라가고 있다. 현재 ‘쿼드코어 CPU, 64기가바이트(GB) 이상 메모리, 300GB 이상 SSD 저장장치’ 등이 평균이다.

비트코인 등 기존 블록체인의 채굴 방식과 다른 점은 뭔가.

비트코인에서 작업증명을 하려면, 네트워크 유지 과정에서 컴퓨팅 파워와 전기를 써야 한다. 채굴이란 기술적으로 보면 네트워크 유지에 들어가는 노력을 보상해주는 것이다. 위임지분증명은 지분 비율에 의한 알고리즘을 쓴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스팀은 토큰을 새로 발행해 의사결정에 참여한 이들에게 보상하는 재원을 마련한다.

최근 국내에서 스팀잇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가입자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인 스팀잇 사용자 비중이 높아진 만큼 추가로 한국인 증인이 나오길 바라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이미 나 외에 한 분(@asbear)이 증인을 시작했고, 현재 77위에 올라와 있다. 증인을 하려면 일단 영어 능력과 어느 정도 개발 지식이 필요하다. 또한 커뮤니티 공헌도가 중요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공동선을 바라보고 노력하는 부분이 필요할 것 같다.

증인이 되면 어떤 이점이 있나.

블록 생성 보상과 더불어 스팀의 정책을 논하고 결정할 수 있다.

투자자 보상 위한 프로젝트 진행 중처음 스팀잇에서 한국어로 글을 올리면 (영어 사용자들은 해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무조건 플래그(flag·추천하지 않음)를 했다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팀잇 내에서 했던 프로젝트나 활동은 무엇인가.

대표적으로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먼저 국외 스팀 사용자 ‘donkeypong’을 주축으로 진행된 큐리(Curie) 프로젝트가 있다. 각 사용자들에게 기증받은 스팀파워를 한곳에 모은 다음, 각 커뮤니티에서 선발된 큐레이터의 좋은 콘텐츠에 보상을 주는 작업이다. 큐리를 통해 한국 커뮤니티가 초창기에 많이 성장했다. 또 한국 커뮤니티 내 보상 어뷰징 보팅풀(다중 계정을 이용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행위)을 제재했다. 반년 전만 해도 열댓 명의 ‘고래’(영향력이 큰 사용자)가 서로 보팅을 몰아주면서 보상을 가져간 탓에 ‘KR’ 트랜딩(검색어 순위) 페이지를 보면 저자 서너 명의 글이 대부분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운보팅으로 보상을 삭감해 사태를 정리했다. 끝으로 지금 진행하는 ‘스팀마노’(스팀 투자자를 위한 인센티브 시스템) 프로젝트가 있다. 창작자에 대한 보상도 중요하지만 투자자 보상도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프로젝트다.

앞으로 계획과 목표는?

증인이 아니어도 하겠지만 한국에서 하는 스팀잇 관련 모임이나 콘퍼런스에 참석해 스팀마노, ‘SMT 프로젝트’(스팀 기반 토큰 생성을 쉽게 하는 프로젝트) 등 스팀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전하고 싶다.

박근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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