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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 회피, 아이디어 폭발의 역사

등록 2018-12-15 13:29 수정 2020-05-03 04:29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얼마 전 LG그룹 구광모 회장의 상속세 신고가 세간의 이슈가 되었다. 선친에게 받은 (주)LG 주식을 포함한 상속재산에 대해 약 9200억원의 상속세를 신고했는데, 이것이 종전 최고액의 5배에 이르는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LG그룹의 행보를 보면서, 그간의 수많은 편법 상속 수법이 주마등같이 스쳐갔다.

CB, BW, 일감 몰아주기, 회사 분할·합병…

1990년대에는 신종 증권이 유행했다. 다들 주식, 채권밖에 모르던 시절에 삼성그룹은 차원이 다른 행보를 보이며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같은 신종 증권을 활용해 상속의 기반을 닦았다. 삼성에버랜드가 헐값에 발행한 전환사채를 알 수 없는 이유로 기존 주주인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포기했고, 이재용 부회장이 이를 대량으로 인수해 에버랜드의 최대주주가 되었다. 같은 수법으로 삼성SDS가 신주인수권부사채를 헐값에 발행했고, 이를 이재용 부회장이 가져갔다. 이제는 법령이 정비돼 더는 쓸 수 없는 수법이지만 한동안 편법 상속의 방법으로 유행했다.

이에 뒤질세라, 2000년대 들어와서는 현대자동차그룹이 일감 몰아주기라는 방법을 사용했다. 일감을 몰아줘 상속세를 절감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다. 아들인 정의선 부회장을 최대주주로 내세워 현대글로비스라는 회사를 설립한 뒤, 현대자동차의 물류 관련 일감을 몰아주기 시작했다. 많은 재벌이 큰 깨달음을 얻었다. 주변에 살펴보니 물류 말고도 건설, 광고, 전산 등 몰아줄 수 있는 일감이 널려 있었다. 자녀 명의로 새로운 회사를 만들고, 그 회사에 일을 몰아주는 방식이 상속세 절감 컨설팅의 대세가 되었다. 규제가 만들어지면 이를 회피하는 숨바꼭질도 이어졌다. 특수관계자가 30% 이상 보유한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면 안 된다고 하면 지분율이 29.99%로 맞추어지는 신기한 일이 발생했다.

2010년대에는 새로운 방법이 등장했다. 상속세 절감 분야의 혁신(?)은 10년 주기로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총수 일가가 지배하는 계열사들을 자르고 붙이기 시작했다. 이론적으로 보면, 모든 회사의 경영진은 그 회사의 주주와 직원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할 것 같지만, 재벌 계열사들의 경영진은 총수 일가만을 위해 달려갔다. 옛 삼성물산의 경영진은 일감 수주를 하지 않고 이미 한 일감 수주를 숨기거나 계열사로 넘겨주었다. 그렇게 해서 합병 비율의 산정 기준인 주식가격이 옛 삼성물산에 가장 불리할 때 제일모직과 합병을 결정했다. 그 합병을 반대해야 마땅한 이유는 너무나 많았지만, 옛 삼성물산 경영진은 회계법인을 통해 그 불리한 합병 비율을 정당화하는 보고서도 만들어냈다.

상장회사인 계열사들을 그대로 붙이기도 했지만, 하나를 잘라서 비상장회사로 만들어 다른 상장회사에 붙이기도 했고, 인적 분할이라는 방법으로 회사를 자른 뒤 주식 교환이라는 묘기를 쓰기도 했다. 삼성그룹뿐만 아니라 SK그룹, 현대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한진그룹, 롯데그룹 등 대부분의 재벌 그룹이 총수 일가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계열사들을 총수 일가에 가장 유리한 방법으로 자르고 붙이면서 편법 상속했다.

먼저 꼼수가 사라지면…

LG그룹의 어마어마한 상속세를 보면서, 우리나라 상속세가 너무 과중하니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그런데 그간의 수많은 편법 상속사례를 떠올려보면, 일의 순서가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편법 상속이 사라지고 정정당당한 상속이 대세가 되어야 한다. 재벌들의 상속과 관련된 꼼수가 사라진 뒤에, 상속세를 점검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다.

홍순탁 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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