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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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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대 시곗바늘을 꺾으려는가


복귀 노리는 김문기 전 이사장 등 옛 비리 재단들, 결단 못내리는 사학분쟁조정위
등록 2008-12-05 02:27 수정 2020-05-02 19:25

“인터넷에서 상지대학교를 검색해보세요. 제일 먼저 나오는 게 ‘분쟁사학’ ‘비리재단’이라는 단어들입니다. 학교 구성원이 아니면 어떤 기분일지 모를 거예요. 후배들한테는 물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지난 11월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각 앞에서 열린 ‘상지대 정상화를 위한 결의대회’에 참가한 인문사회과학대학 학생회장 김은주(행정학 4)씨. 김씨는 “내가 다니는 상지대가 문제가 있는 학교라는 시선에서 이제는 벗어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10월2일, 서울 종로구 수성동 사학분쟁조정위원회 앞에서 상지대·조선대·광운대·세종대의 교수, 학생, 교직원들이 교과부의 임시이사 파견 음모 중단과 사학분쟁조정위의 정이사 조속 선임 등을 촉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한겨레 김종수 기자

지난 10월2일, 서울 종로구 수성동 사학분쟁조정위원회 앞에서 상지대·조선대·광운대·세종대의 교수, 학생, 교직원들이 교과부의 임시이사 파견 음모 중단과 사학분쟁조정위의 정이사 조속 선임 등을 촉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한겨레 김종수 기자

뉴라이트 단체와 손 잡은 재단

이날 결의대회에는 상지대 학생·교직원 등 2천여 명이 모였다. 보신각종 주변을 빼곡히 메운 이들 손에는 ‘NO 김문기’ ‘사학비리 전과자 김문기 반대’라는 팻말이 들려 있었다. 김문기 전 이사장이 비리 등의 문제로 물러나고 상지대가 임시이사 체제로 운영된 지 15년째. 지금의 재학생들은 김문기 전 이사장을 직접 접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김 전 이사장의 복귀를 반대하는 이유는 뭘까?

“솔직히 김문기 이사장을 본 적도 없어요. 하지만 그 사람이 학교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압니다. 학교를 위한다면 장학금 지원 등 얼마든지 방법이 많잖아요. 근데 오로지 학교를 소유하겠다는 마음뿐인 것 같아요.” 지난해 입학한 최근호(한방의료 2)씨는 “학교는 ‘김문기’라는 개인의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영식 총학생회장도 “김문기 전 이사장은 언론 등을 통해 지금도 학교를 비방하고 상처를 내고 있다”며 “그 사람이 복귀하면 학교는 과거처럼 또다시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교수들의 심정도 똑같다. 심상용 교수협의회 대외협력위원장은 “김문기 이사장이 떠나고 15년 동안 구성원들의 노력으로 상지대는 ‘민주사학’으로 발전해가고 있다”며 “시계를 되돌릴 수는 없다”고 했다.

상지대를 비롯해 조선·세종·광운대 등 학교 정상화를 바라는 4개 대학은 요즘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라고 한다. 올해 안에 임시이사를 대체할 정이사가 파견되지 않으면, 현 정부 분위기상 비리 등의 문제로 물러났던 옛 재단들의 복귀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학교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4개 대학은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이하 사분위)의 정이사 선정을 절박하게 기다리고 있다. 자문기구에 그쳤던 사분위는 지난해 7월 개정된 사립학교법에 따라 임시이사가 파견된 대학의 정이사를 선정하는 등 권한이 대폭 강화됐다. 사분위는 그동안 ‘분쟁사학’ 40여 곳에 대해 심의를 끝냈지만 조선·세종·광운·상지대 등 4개 대학 문제를 놓고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들 대학은 지난 6월30일자로 파견 임시이사의 임기가 종료돼 ‘이사 공백’ 상태다.

새 정부가 들어선 뒤 4개 대학의 옛 재단들은 복귀를 노리고 있다. 4개 대학 옛 재단끼리 대책위원회도 구성하고, 뉴라이트 계열 단체와 연대에 나서는 등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지난 5월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등 보수 성향의 5개 시민단체는 “임시이사가 파견된 조선대 등 8개 사립대가 불법과 비리 행위를 저질렀다”며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하고 검찰에 고발까지 했다. 해당 대학들은 “옛 경영진이 대학에 복귀하려고 의도적인 흠집 내기를 하고 있다”며 명예훼손 소송 등 법적 대응에 나섰다. 6월30일 임시이사 임기가 종료된 4개 대학은 이들 단체의 공격으로 정이사 선임 등 학교 정상화가 늦어질까봐 노심초사했다. 결국 교과부는 세종대를 상대로 지난 9월 감사에 들어갔다. 대학들은 자칫 한국방송처럼 ‘뉴라이트 단체의 비리 의혹 제기 → 감사 → 인사 교체’ 수순이 진행되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하고 있다.

사분위원 ‘물갈이’ 기다리며 ‘버티기’
사학분쟁조정위원회 위원 명단

사학분쟁조정위원회 위원 명단

4개 대학 옛 재단들은 두 주에 한 번은 교과부 앞에서 집회를 하고, 신문광고에도 적극적이다. 이들의 요구는 “대학을 다시 돌려 달라”는 것이다. 김문기 전 상지대 이사장(전 한나라당 의원)은 기자와 만나 “정부는 헌법정신과 대법원 판결에 따라 (임시이사 선임 전의) 종전 이사에게 경영권을 돌려주고 건학이념에 맞게 사학을 운영토록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대법원이 “정부가 임명한 임시이사들이 정식이사를 선임한 것은 무효”라며 김 전 이사장 손을 들어준 판결을 말하는 것이다. 1993년 4월 김 전 이사장이 부정입학과 관련한 금품 수수 및 횡령 혐의로 구속된 뒤 당시 교육부가 임시이사를 선임했고 이 임시이사들이 2003년 12월 정식이사를 뽑았는데, 대법원 판결로 이 과정이 무효가 되면서 상지대는 지난해부터 다시 임시이사 체제로 운영돼왔다.

이에 대해 심상용 상지대 교수협의회 대외협력위원장은 “지난해 대법원 판결은 임시이사가 정이사를 선출한 것을 문제 삼았지, 옛 재단에 경영권을 돌려줘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라며 “김문기 이사장은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대법원 판결 이후 사분위가 정이사 선임 권한을 갖게 된 만큼 사분위의 정이사 선임 절차를 따르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4개 대학 옛 재단 인사들은 사분위에도 협조하지 않고 버티기를 계속하고 있다. ‘보이콧’ 수준이다. 사분위가 정이사 선정에 속도를 내려면 옛 재단들이 이사 후보 9명의 명단을 제출해줘야 한다. 하지만 조선대를 제외한 나머지 3개 대학의 옛 재단들은 아직까지 명단을 내지 않았다. 권영상 ‘상지학원 설립자 학교 찾아주기 운동본부’ 대변인은 “우리가 왜 사분위에 명단을 내야 하냐”며 “김문기 이사장에게 경영권을 돌려주면 종전 이사들이 건학이념에 맞는 새 이사를 선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예 사분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세종대 옛 재단 관계자는 “좌파 정권 때 임명된 사분위 위원은 편향돼 있어, 임기가 끝나는 내년 말까지 정이사 체제로 전환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지난 상반기에는 옛 재단들이 사분위 위원들의 성향을 문제 삼아 기피 신청을 내기도 했다. 결국 기피 신청이 받아들여져 사분위 위원 11명 가운데 김윤자(한신대)·주경복(건국대)·박거용(상명대) 교수는 세종대·상지대의 정상화 심의에 대한 의결권을 잃었다.

사분위 위원은 모두 11명으로 대통령(3명)과 국회의장(3명), 대법원장(5명)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위촉한다. 임기는 2009년 12월26일까지 2년이며, 위원장은 대법원장 추천 인사 가운데 호선한다. 내년 말까지 정이사 선정이 지연되면 사분위 위원들이 바뀌게 되고 새 임명권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된다. 옛 재단들은 1년 뒤에 정이사 방안을 논의하면 훨씬 유리한 국면이 조성된다고 보고 있다.

교과부마저 임시이사 파견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교과부는 ‘이사 공백’으로 학교 운영이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며 지난 9월 4개 대학에 임시이사 파견을 추진하다 일부 사분위 위원과 대학의 반발에 부딪혀 중단했다. 연말까지 4개 대학의 정상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교과부가 다시 임시이사 파견 움직임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런 이유로 사분위의 이른 결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사분위 내부도 복잡하다. 법조인 출신을 중심으로 한 사분위 위원들은 사립학교법 시행령 및 사분위 운영규정에 정상화 심의 과정에서 옛 재단의 입장을 청취하라고 돼 있는 만큼, 정이사 선임 과정에서 이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갈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교수 출신 위원들은 벌써 여러 번의 기회를 줬으나 옛 재단 쪽이 협조를 거부하고 있으니 정이사 선정을 계속 미루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주장한다. 한 사분위 위원은 “견해 차이가 좁혀지지 않아 심의가 길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귀호 위원장, 결정 미루는 까닭은?

또한 4개 대학은 정귀호 사분위 위원장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다. 지난해 12월 정귀호 위원장 임명 당시,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와 교수노조 등 7개 단체로 구성된 전국교수단체연대는 “정 위원장이 대법관 재직시 족벌 운영과 재정 부정으로 촉발된 세종대 사건의 재판장으로, 원심 판결을 파기하면서 사학재단과 운영자를 위한 판결을 내렸다”며 부적격 인사라고 반대하기도 했다.

사분위는 12월4일 전체회의를 열고 4대 대학 정상화 방안을 논의한다. 박정원 임시이사파견대학 공동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4개 대학 구성원들은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까봐 불안해하고 있다”며 “사분위는 설립 취지에 맞게 대학 정상화를 위해 정이사 선임이라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상지·세종·광운대 재단비리사
부정입학·공금횡령… 얼룩진 이사장들


조선·상지·세종·광운대 등 4개 대학 옛 재단 인사들은 각종 비리 사건으로 검찰 수사와 법원 판결을 받았다. 그런데도 이들이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학교를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대학 구성원들에게 상처를 입혔다는 게 현재 대학 구성원들의 반발 이유다.
김문기 전 상지대 이사장은 부정입학 등의 혐의로 지난 1994년 대법원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앞서 상지대에서는 1986년 강사 채용 비리가 불거지자, 본관 앞에 ‘가자, 북의 낙원으로!’ 등의 내용을 담은 유인물이 뿌려지는 등 ‘용공조작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경찰은 이 유인물이 학교 교직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김 전 이사장은 1994년 재단 반환 소송을 내는 등 학교 복귀를 시도했으나 99년 대법원에서 패소했다. 김문기 전 이사장 쪽은 최근까지도 학교 근처에 ‘북조선에도 없는 시민대학, 원주시에 웬말이냐’ ‘시민대학 추진자들은 처자식과 역사의 심판이 두렵지 않느냐’ 등의 펼침막을 걸기도 했다.
주명건 전 세종대 이사장은 지난 2005년 당시 교육부가 종합감사를 통해 113억원의 교비 회계가 부당하게 집행됐다며 교비 회수 및 변상을 지시했으나 이를 이행하지 않아 해임됐다. 감사 결과를 보면, 주 전 이사장은 정관에서 정한 상근 임원이 아닌데도 3년 동안 6억9300만원의 보수를 받았고, 연구실적이 없어 탈락돼야 할 교수 지원자를 합격시키는 등 교원 신규채용에도 문제가 있었다.
조선대 전 이사장인 고 박철웅씨는 학생들 앞에서 교수의 종아리를 때리는 등 교수 폭행 사건과 교직원 임용 비리 등이 문제돼 1987년 학생들이 113일이나 농성을 벌인 끝에 물러났다. 광운대도 옛 재단의 부정입학과 공금횡령 등으로 갈등을 빚었다.
방정균 상지대 교수협의회 공동대표는 “옛 재단 인사들은 학교를 개인 재산으로 여기면서 각종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이라며 “다시 복귀를 한다면 학교는 또다시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소연 기자 한겨레 사회교육팀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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