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인터뷰|김창국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11월25일 출범 앞두고 부처 견제 심해… 시민사회의 우수인력 참여 위해 문호 개방
오는 11월25일 출범할 예정인 국가인권위원회(이하 ‘국가인권위’)가 조직규모와 직원채용방식 등을 둘러싸고 행정자치부 등의 반발에 부닥쳐 있다. 독립적인 국가기구의 모양새를 갖추는 데만 꼬박 3년 이상이 걸린 국가인권위가 또 하나의 장애물을 만난 셈이다. 김창국(61) 국가인권위 위원장은 11월5일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출범이 순조롭게 되려면 지금이라도 기존 부처들의 전폭적인 이해와 협력이 필요하다”며 “기존 관료조직에서 인권위를 새로운 권력기관으로 생각하는 것은 오해와 막연한 불안감에서 비롯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인권위, 투명성을 바탕으로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인권위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1981년 부장검사를 끝으로 변호사로 개업해 대표적인 인권변호사로 활약해왔으며, 참여연대 공동대표와 대한변협 회장을 역임한 뒤 임기 3년의 초대 국가인권위 위원장을 맡았다.
인권 선진국 도약 위한 제도적 장치
위원장으로서 요즘 하는 일은.
=‘창업’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지 새삼 느낀다. 헌정 사상 최초로 입법·사법·행정 등 3부의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적인 국가기구를 출범시킨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관련 부처들이 새 권력기구가 생기는 게 아닌가 하는 오해와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관련 공무원들과 언론계 인사, 시민단체 간부들을 만나 설득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기대가 너무 크고 또 한쪽에서는 걱정부터 하는 상황이다. 잘못하면 두쪽 모두에서 욕을 먹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이런 갈등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역할도 필요하다고 본다.
인권위의 탄생이 우리 현대사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인권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도 확실한 제도적 장치라고 본다.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행복추구권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행복추구권이 어떤 모습인지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현대 복지사회는 삶의 질을 추구한다. 인권위는 삶의 질을 추구하는 국가기구가 될 것이다.
인권위 운영에 관한 철학이나 대원칙은 어떻게 정하고 있는지.
=가장 중요한 점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인권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민주적 운영과 투명성을 확보하는 일도 중요하다.
이미 국가인권위를 운영하고 있는 나라들의 경험에서 참고할 만한 것은 없는가.
=각 나라 인권위는 다 해당 나라의 특수한 사정을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다. 어떤 한 나라만이 모범적인 모델이라고 보기 어렵다. 인권 선진국들에서는 차별행위 해소에 역점을 두고 있는 데 비해, 후진국에서는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행위에 대한 조사와 피해구제에 역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배울 점이 있다면 참고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미국·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필리핀의 인권위는 지방사무소를 설치해 인권 취약지역의 국민들에게 이 제도의 혜택을 좀더 손쉽게 받도록 한다. 또 시민·인권운동 관련 활동가를 특별채용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최근 각 부처에서 1실5국에 장관급 1명, 차관급 4명 등 정원 439명 규모로 짜여진 국가인권위 인원이 너무 많다면서 반발하고 있다.작은 인권위를 만들라는 요구에 대한 생각은.
=국가인권위법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 인권위와 비교해 권한이 아닌 기능만을 놓고 볼 때 업무범위가 가장 넓다. 우리가 요구한 인력 규모는 법에 있는 기능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최소인원이다. 주먹구구식으로 산출된 인원이 아니라 조직과 예산 전문가들인 행정자치부 파견 공무원들이 포함된 준비기획단이 구체적인 조사 뒤에 마련한 것이다. 그 정도를 인정하지 못한다면 국가인권위 법은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직무유기를 넘어 직무방기를 하는 것이다. 정부 전체의 인력수급 상황도 어렵겠지만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는 인원을 확보하는 일도 중요하다.
업무범위 넓어 인권위 규모 커졌다
인권 및 시민사회단체 활동경력 14년 이상이면 3급, 4년 이상 활동경력이면 5급 공무원에 임용할 수 있는, 이른바 ‘직원채용특례규정’이 형평성을 잃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 규정을 만든 근거는 무엇인가.
=일부 공무원들의 심정적인 거부감은 이해한다. 그러나 인권의 전문성에 비춰볼 때 시민사회의 우수인력을 참여시키는 일은 필수적이다. 처음부터 기존 공무원들로만 구성되면 쉽게 관료화할 가능성이 있다. 민간 특례채용 규정은 시민·인권운동 출신자들로 국가인권위를 모두 채우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겠다는 얘기다. 미국 법무부 인권과에서 근무하는 검사들의 경우 인권 관련 민간전문가들을 채용하고 있다. 현재 유수한 시민사회단체들이 참 많고 우수한 인력들도 있다. 군대에 갔다온 경력을 인정해주는 것처럼 형평성을 유지하자는 얘기다. 민간인이 공무원이 되려면 장벽이 너무 높다. 변호사 같은 경우도 2급 국장으로 채용되려면 변호사 경력 15년 이상을 요구한다. 그 정도면 대법관이나 대법원장이 될 수 있는 경력이다.
“공무원들이 국가인권위를 시어머니 하나 생긴 것으로 여기고 있다”고 언급한 적도 있는데.
=시어머니 얘기는 우리 편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 한 말이다. 청와대쪽에도 ‘공무원사회에 인권위가 생기면 괜히 귀찮게 오라가라 할 거라는 말이 많다’는 식의 정보보고가 올라온다고 한다. 의도적으로 그런 얘기가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부 부처가 기존에 해오던 업무방식과 다르다며 반발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구금보호시설에 대한 인권위 조사기능과 관련해서 법무부는 서면으로만 진정이 가능하도록 하자는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인권위쪽에서는 진정이 실효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전화나 팩스로도 진정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출범 이후에도 기존 국가기구와의 갈등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특히 몇몇 부처들은 기능이 중복된다고 주장하는데.
=부분적으로는 중복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인권위를 독립기구로 만든 이유는 기존 관료조직이 하지 않았거나, 할 수 없었던 인권 관련 업무를 인권위가 종합적으로 수행하자는 뜻에서다. 유엔 등 국제사회가 국가인권기구를 두도록 각 나라에 권고하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인권상황이 좋은 선진국에서도 국가인권위를 만들어 운영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중복된다는 것도 기우다. 예를 들면 여성에 대한 차별행위는 여성부의 업무이기도 하고 인권위의 업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권위 업무에서는 극히 일부를 차지한다. 인권위는 여성부가 혼자 수행하기 어려운 부분을 함께하면서 협력하면 된다. 서로가 이기는 ‘윈윈게임’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지금의 준비속도로 11월25일 출범이 가능한가.
=법률에 공표일로부터 6개월을 준비기간으로 뒀는데 그동안 준비가 너무 미흡했다. 4개월 동안 인권위원이 임명되지 않았다. 주된 이유는 국회 선출몫의 인권위원 임명이 너무 늦어진 것 때문이지만 어쨌든 사무국 구성 등의 실질적인 준비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직제를 결정하고 직원을 채용하고 사무국을 구성한 뒤 청사도 마련해야 한다. 시일이 매우 촉박하지만 정부 부처 모두가 전폭적으로 지지해준다면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라도 11월25일 이후에는 국가인권위에 진정하려는 국민들의 진정서는 받아야 할 것으로 본다.
국가·사회 위한 기구로 자리잡을 터
시민사회와의 협조·협력은 유엔권고안에도 포함돼 있는 인권위 구성과 운영의 중요한 원칙이다. 앞으로 시민사회와의 관계는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인권위안에 시민·인권단체와의 대화와 협력을 위한 전담부서를 두도록 했다. 인권침해나 차별행위의 피해자들은 여전히 힘없고 약한 쪽이다. 시민·인권단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필수적이다. 시행령과 직제안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295개 시민·인권단체를 상대로 설문조사를 통한 여론조사를 했다. 이같은 여론수렴은 일상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본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은 반드시 이뤄내야 하겠다는 점이 있는가.
=헌법재판소 생길 때 사법부에서 얼마나 반대가 심했나. 일부 학자들은 ‘옥상옥’이라고 했다. 그러나 생기고 나서 12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헌재가 없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긍정적인 영향이 많다. 국민의 권리신장 측면에서 소득이 많았다. 인권위가 출범한 뒤 1년 안에 국민들로부터 ‘참 좋은 국가기구가 하나 생겼구나’ 하는 평가를 받았으면 한다. 또 관료조직이나 기득권층으로부터도 ‘우려와는 달리 그것 참 국가와 사회를 위해 도움이 되는 기구구나’ 하는 소리를 듣는 국가기구가 됐으면 좋겠다.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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