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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치 물꼬를 트긴 텄는데…

윤-이, 720일 만에 처음 만나…정국 경색 풀려면 여야 모두 정책 어젠다 강화해야
등록 2024-05-03 12:12 수정 2024-05-06 10:37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4월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의 영수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4월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의 영수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4년 4월29일 이뤄진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이 성과 없이 끝났다. 이 대표는 회담 머리발언에서 12개의 요구사항을 내놨지만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 2시간15분 동안 이뤄진 회담에서 합의가 이뤄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나마 성과로 꼽힌 것은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정권 출범 720일 만에야 겨우 ‘만났다’는 점, 그리고 회담 직후인 5월2일 여야가 이태원참사특별법을 합의 처리했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은 여당의 총선 참패 이후에도 국정 기조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묵살해왔다는 점에서 이런 결과는 어느 정도 예견돼 있었다. 이번 ‘빈손 회담’은 윤석열 정부 초기부터 2년간 이어져온 여야의 ‘강대강 대치’가 앞으로 남은 임기 3년 동안에도 계속될 것임을 전국민에게 각인시키며 끝났다.

실무 협의부터 난항 겪은 영수회담

사실 윤 대통령에겐 애초부터 야당의 요구를 받아들일 의지가 별로 없어 보였다. 이번 영수회담은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는 한국갤럽 여론조사가 나온 4월19일 본격적으로 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한국갤럽이 4월16~18일 전국 만 18살 이상 1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19일 오전 발표한 결과를 보면,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 긍정평가는 23%였다. 부정평가 역시 68%로 취임 이후 최고치였다.(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 최악의 여론이 확인된 날 오후에야 윤 대통령은 부랴부랴 이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용산에서 만나자고 제안했다. 정치적 결단으로 ‘통 큰 합의’를 이뤄내기 위한 회담 제안이 아니라 여론에 떠밀린 억지 손짓에 가까웠다.

지난 2년간 영수회담을 꾸준히 요청해왔던 이 대표는 즉시 초청에 응했지만 회담이 성사되기까지의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처음 예정됐던 대통령실과 민주당의 의제 실무협상이 대통령실 정무수석 교체로 삐걱댔다. 이후 홍철호 신임 정무수석과의 1차 실무 회동 때는 구체적 의제에 대한 서로의 입장 차이만 확인하고 40분 만에 헤어졌다. 2차 실무 회동에선 대통령실이 “의제 조율 없이 자유로운 형식의 회담을 하자”고 하면서 결론 없이 끝났다. 어느 회담에서든 특정 의제를 놓고 긴밀한 사전 조율을 거친 뒤에야 ‘합의문’을 내놓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빈손 회담’은 사실상 이때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이 대표는 대통령실의 뜻을 받아들여 의제 설정 없이 대통령을 만났다. 그리고 그는 머리발언을 통해 △해병대 채아무개 상병 순직 사건 외압 의혹 특검(채 상병 특검) 수용 △거부권 행사 유감 표명 △민생회복지원금 수용 등 12개의 요구를 나열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날 회담에서 이 대표의 요구는 그 어떤 것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의 메시지는 대통령이 아닌 지지층을 향해서만 발신된 메아리에 그치고 말았다. 135분간의 대화에서 70~85%의 지분을 차지하며 이야기를 쏟아낸 윤 대통령도 국정 기조 변화 가능성을 차단하며 ‘불통 이미지’를 재확인했다.

새 국회에서도 대치 가능성 커

양쪽 모두 얻은 것 없이 끝난 이번 회담은 여야 대치 정국으로 이어지고 있다. 회담을 통해 기대했던 협치보다는 여야가 서로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이며 파열음이 커지는 상황이다. 민주당은 회담 이후 “우이독경, 마이웨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실망이 많이 크다”(4월30일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의힘도 “(이 대표는) 사실상 국정을 포기하라고 협박한 것 같았다. 마치 이 회담이 잘 안 되기를 바랐던 거 아닌가 싶을 정도”(4월30일 김용태 국민의힘 당선자)라며 공세를 펼쳤다.

주요 법안 처리도 난항을 겪고 있다. 제21대 국회 마지막 회기인 5월 임시국회가 4월30일 시작됐고, 여야는 5월2일 일부 핵심 쟁점을 수정한 이태원참사특별법을 합의 처리했지만, 다른 안건에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다른 야당과 함께 이날 채 상병 특검법을 단독으로 통과시켰고, 국민의힘은 의원 대부분이 단독 강행 처리에 항의하며 표결에 불참했다.

문제는 이러한 대치 정국이 제22대 국회에서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5월3일 치를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 단독으로 출마한 친명계(친이재명계) 박찬대 의원은 제22대 국회가 개원하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운영위원회 위원장을 모두 민주당이 차지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여야 강대강 대치를 예고했다. 여당에서는 총선 참패에도 불구하고 한때 친윤계(친윤석열계)인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의 원내대표 단독 출마 가능성이 거론되기도 했다. 당시 형성된 ‘이철규 대세론’은 친명인 박찬대 원내대표에 대항해 대통령과 사이가 긴밀하면서 강한 발언권을 가진 원내대표가 필요하다는 논리였다. 이후 당내에선 총선 참패에 책임이 있는 이철규 의원이 원내대표가 되는 것은 ‘도로 친윤당’으로의 회귀라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이 의원이 아니더라도 민주당 독주를 막을 수 있는 원내대표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여전히 힘을 받고 있다. 여기에 차기 국회의장 후보자들이 당파성을 강조하며 치열한 ‘선명성 경쟁’을 치르고 있는 상황까지 더하면 제22대 국회의 미래는 더욱 암울해진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윤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역대 가장 높은 수준의 무한 대결, 사실상 정치적 내전 상태가 지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책’이라는 정공법으로 돌파해야

첫 영수회담 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다시 만나자는 데 동의했지만 당분간 이런 대화 채널이 이어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전문가들은 꽉 막힌 정국을 풀기 위한 해법으로 정부든 야당이든 정책 이슈를 통해 정국 주도권을 쥐려고 경쟁해야 한다는 조언을 내놨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여소야대 상황에서) 현재의 돌파구는 야당 리더십”이라며 “가지고 있는 의제 가운데 무엇을 우선순위로 둘지 정한 뒤 순서대로 하나씩 실현하기 위한 협상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은 “정책 어젠다의 주도력이 없다는 게 윤석열 정부의 핵심 문제”라며 “국민적 대의명분이 뛰어난 정책 어젠다를 대통령이 자신의 것으로 가져가면서 야당을 압박하는 것이 윤 대통령의 지지율을 만회하는 정공법”이라고 짚었다.

송채경화 <한겨레>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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