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별 임금차이는 OECD 평균의 두배, 생산성 차이가 아니니 ‘차별’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서비스업 시대, 디지털 시대, 그리고 디자인 시대다. 굴뚝 제조업 공장으로 상징되는 무거운 경제에서 이제 정보통신 기술이 주도하는 이른바 ‘무게 없는 경제’(weightless economy)로 바뀌고 있다. 여성친화적인 경제환경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도 “제조업을 서비스업처럼 다루라!”고 부르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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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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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노동시장도 지식과 감성에 바탕을 둔 노동을 요구하고 있다. 상품 디자인과 감성이 강조되면서 여성적 감성과 상상력이 상품 개발과 마케팅의 중요한 가치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던 인력구성에서 탈피해 기업 내 의사결정 구조에 여성의 새롭고 다양한 시각을 적극 참여시켜 혁신을 추구하는 회사도 늘고 있다. ‘다양성의 힘’이다. 매킨지보고서 등 최근의 많은 연구들은 여성고용 비율이 높은 기업일수록 영업이익 등에서 더 높은 성과를 낸다는 실증 분석을 제시하고 있다. 관리직에 여성이 많이 진출한 기업일수록 소비자의 요구에 발빠르게 대응해 신제품을 먼저 출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도 있다. 이처럼 ‘기업문화’는 달라지고 있다.
그럼 여성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은 어떨까? 남녀 간 임금격차가 지속적으로 축소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가별·성별 임금격차 자료(2004년)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남녀 간 임금격차는 40%(OECD 평균은 약 20%)다. 일본·미국·체코·스페인·헝가리·폴란드 등 그 어느 나라보다 훨씬 높다. 소득분위별로 보면 상위 소득 20%의 남녀 임금격차는 2006년 현재 30%를 밑돌고 있다. 바꿔 말해 중간소득 이하의 임금을 받는 계층일수록 남녀 간 임금 차이가 더 크다는 얘기다.
여성이 임금페널티를 받는 건 ‘차이’일까, 불합리한 ‘차별’일까? 이는 노동생산성을 이용해 판단해볼 수 있다. 임금이 생산성의 차이를 반영한다면 차이이고, 동일한 생산성을 갖고 있음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더 낮은 임금을 받는다면 차별이라고 할 수 있다. 생산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은 교육 수준·경력·자격증·성·나이 등 인적 자본 변수들인데, 총 임금격차 가운데 생산성에 영향을 미치는 이런 ‘관찰 가능한 변수들’이 임금 차이를 낳을 수 있다. 이런 차이 부분을 통제하고도 여전히 존재하는 ‘잔여임금격차’는 차별로 볼 수 있다. 물론 개개인의 노동생산성이나 차별에 의한 임금격차를 정확하게 측정하기란 사실상 어렵다. 즉 ‘관찰되지 않는 생산성 차이’(근무태도 등)에 의한 임금 차이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한국노동연구원의 ‘여성인력과 생산성’(2000)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성별 임금격차 가운데 38% 정도만 생산성 격차로 설명되고 나머지 62%는 설명되지 못하고 있다. 여성차별적인 제조업이 약화되고 대신 정보통신·서비스업이 확대되면서 성별 임금격차가 완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꽤 많은 부분이 설명되지 않는 또는 성차별적인 임금격차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인 남자의 값은 50세겔(고대 화폐단위), 여성이라면 30세겔”이라는 성경의 말씀(<레위기>)이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비율 그대로(여성 임금은 남성의 60% 수준) 적용되고 있는 셈이다.
과연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능력이 뒤떨어지고 생산성도 남성보다 낮은 것일까? 여성이 남성에 비해 생산성이 낮은지 아닌지에 관해 아직 합의된 정설은 없다. 일부 노동경제학자들은 남녀 간에 임금격차가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사실에 주목한다. 노동시장이 완전경쟁적이라면 여성한테 임금을 차별하는 사용자는 궁극적으로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차별이 아니라, 남녀 간의 ‘관찰할 수 없는 생산성 측면의 차이’를 반영해 임금격차가 존속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야말로 이론적 설명일 뿐이다.
사실 설명되지 않는 62%에는 명시적인 차별뿐 아니라 관찰되지 않은 영역에서의 수많은 차별이 작용하고 있다. 승진 사다리가 ‘아주 가까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직 멀리 있는’ 이른바 유리천장 차별, 육아·가사노동에 따른 일자리 중단의 차별, 교육훈련에서의 차별 등이다. 동일한 생산성을 갖고 있음에도 여성의 생산성이 낮다는 근거 없는 편견 때문에 고용주가 여성을 불평등 대우하는 ‘통계적 차별’도 있다. 이런 편견 때문에 차별당하는 여성은 스스로 인적 자본에 투자할 의욕을 상실하게 되고, 인적 자본 격차로 인해 차별은 확대재생산되고 고착화된다.
여성 임금근로자 가운데 3분의 2는 각종 여성 보호제도를 제대로 적용받기 어려운 20인 미만 사업장에 근무하고 있다. 임금차별을 통해 작은 이윤이라도 유지하고 있는 기업들이다. 또 여성 취업자 대다수는 임시·일용직으로, 대한민국 시장경제에서 가장 많이 잃고 있는 노동자는 ‘비정규 여성’이다. 지식기반 경제와 시장은 여성 노동자를 필요로 하면서 동시에 여성에 대한 임금차별을 계속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