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칼럼 > 김창진의 제국의 그늘 > 내용   2008년07월16일 제719호
미국을 통째로 횡령하는 사람들

현역 의원 수의 다섯 배가 넘는 로비스트들에 포위된 워싱턴… 정·관계와 회전문 타고 돌며 ‘약탈’의 공생관계

▣ 김창진 성공회대 교수·사회과학부

지난 6월 초, 사실상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직후 버락 오바마가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워싱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미국-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 회의였다. 내로라하는 몇천 명의 정치인과 거물급 유대인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오바마는 ‘이스라엘의 진정한 친구’를 자임하면서, “이스라엘의 안보는 신성불가침이며…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깨질 수 없다”고 선언했다. 1967년 전쟁 때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을 내쫓고 강제로 그 일부를 점령한 예루살렘조차 “이스라엘의 수도로서 분할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 ‘이스라엘의 진정한 친구에게 박수를…’ 지난 6월4일 ‘미국-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연례 정책회의 폐막 연설에 나선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선 후보가 “이스라엘의 안보는 신성불가침”이라고 강조하자, 참석자들이 기립박수를 치고 있다. (REUTERS/KEVIN LAMARQUE)

오바마의 예루살렘 발언에 담긴 의미

이런 그의 주장은 명백히 사실에 어긋나는 것이다. <한겨레>가 6월6일치에서 “심지어 조지 부시 행정부조차 이런 식으로 명시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었다”고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오바마의 이날 발언은 정치인으로서 그가 정확히 어디에 서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는 그럴듯한 명칭으로 포장한 유대인 로비조직의 정책적 압력과 그들로부터 나오는 정치자금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지난 7월 초, 이번에는 ‘전미총기협회’(NRA)라는 막강한 압력단체가 4천만달러(약 400억원)를 풀어 오바마의 낙선운동을 시작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대법원의 총기 소유 합법화 판결에도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총기 소유에 대해 여러 가지 제한 조처들이 시행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 협회는 이참에 오바마 쪽에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벼르고 있다고 <데일리텔레그래프>는 7월2일 전했다. 그들이 실제로 영향력을 발휘해 동부의 백인 노동자들과 남부의 총기 소유자들을 자극하게 되면, 그 지역의 표를 갈구하고 있는 오바마로서는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미국에서 로비활동의 역사는 곧 미국의 정치·경제사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최초의 의회에서 관세법이 통과되는 것을 지연시키기 위해 상인들이 의원들에게 향응을 제공한 것에서 최초의 로비활동이 시작됐다는 기록은, 이 특별한 정치적 전통이 미국이라는 상업주의 사회에 얼마나 질기게 뿌리내려 있는가를 예시해주는 실마리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로비의 정치학’을 이해하지 못하면 미국 정부(공화당이건 민주당이건)의 국내 정책과 대외 정책의 핵심을 이해할 단서를 놓치게 된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최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촛불 정국이 조성되면서 정치학 교과서에나 실려 있던 단어 하나가 한국의 매스컴에 빈번히 오르내리게 됐다. 바로 ‘회전문’(revolving door) 인사라는 말이다. 정부 부처인 미 농무부와 민간 부문인 축산업계가 정책결정 라인에서 인적으로 얼마나 긴밀히 연결돼 있는가를 지적하면서 부각된 단어다. 이런 현상은 미국 사회에서 전혀 새로울 것이 없고, 농업 부문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오늘날 미국에서 메이저 정유회사들, 제약회사들, 보험업계, 의사협회, 자동차업계 등의 로비활동은 공공연한 비밀에 속한다. 퇴직한 군장성들이 국방부의 고관이 됐다가 다시 무기를 생산하고 수출하는 방위산업체의 중역으로 돌고 돌면서 군부-정부기관-군수업체 사이에 ‘이해관계의 공모’가 구조적으로 이뤄질 위험성을, 바로 장군 출신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이미 1961년 고별 연설에서 경고했다. 이후 미국 사회가 지나온 궤적을 살펴볼 때 전직 대통령의 엄중한 경고는 이미 널리 퍼진 잘못된 사실의 추인에 불과했고 그러한 잘못이 개선되는 데 실질적인 효과를 가져오지는 못했다.

왜 그런가? 미국의 기업들과 법률가, 정치인들이 한통속이 돼 그 회전문을 타고 돌면서 생존과 이익의 불가분한 공생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1995년의 ‘로비공개법’은 무분별한 로비활동을 ‘규제’한다는 취지보다는 회전문을 이용한 로비활동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공공 이익을 위해 로비활동을 감시해온 ‘공공책임성센터’(CPI)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지난 6년간 상위 50개 로비회사 중 49개가 의회 사무국에 필요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또 ‘정부윤리법’에 따르면 전직 의원, 그들의 고위 보좌관, 전직 정부 고관들은 퇴직 뒤 1년간 로비활동이 금지되고 있다. 하지만 그 1년 동안에도 전직 의원들은 자기 부인이나 친척들을 합법적인 로비스트로 등록시켜 얼마든지 조종할 수 있다. 또한 전직 의원들은 의원 전용 식당·체육관·휴게실(바로 그 로비들!)을 이용할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 CPI에 따르면, 1998년에서 2004년 사이에 273명의 전직 백악관 직원을 포함한 2200명 이상의 전직 연방관리들, 그리고 약 250명의 전직 의원들과 기관장들이 로비스트로 등록돼 있다. 무등록 로비스트들도 300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상하 양원을 합친 현역 의원 수의 다섯 배가 넘는 각종 로비스트들이 촘촘한 그물망처럼 워싱턴 정가를 에워싸고 있는 것이다. 자기 활동 시간의 60~75%를 정책 개발이나 유권자와 접촉이 아니라 정치자금 조달에 쏟고 있는 미국의 국회의원들과 정치가들에게는 식사 시간 이외에도 여행 기간은 절호의 찬스다. 의원들은 로비스트로부터 직접 여행 경비를 받을 수는 없지만, 로비스트는 로비 대상인 의원을 위해 여행 스케줄을 대신 짜고, 예약을 대행하고, 여행길에까지 동행할 수 있다!(‘로비스트 자신이나 회사의 공금을 쓰지 않는다면’이라는 허울 좋은 단서 아래)

깊은 분열과 갈등의 전조

그렇더라도 미국식 민주주의는 잘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천만의 말씀이다. 오늘날 미국의 민주주의는 로비스트들에게 사로잡혀 헐떡거리고 있다. 대중의 감시가 없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공개적 토론이 봉쇄된 밀실에서 이루어지는 거대한 로비산업은 미국이라는 국가를 은밀히 약탈하고 있다. 후진국에서는 전제권력을 통해 국가가 사회를 약탈하지만, 세계 제국을 자처하는 미국에서는 대기업과 특수 이익집단들이 탐욕스럽게 자기 구성원들의 수입을 늘리기 위해 사회적 자원을 ‘합법적으로’ 횡령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일부 공모 집단이 공동 이익을 추구해야 할 정부를 사실상 ‘사유화’하고, 활력 있는 사회에 필수불가결한 사회적 효율성을 지속적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그런 특수 이익집단들의 사익을 위한 로비활동은, 일찍이 정치사회학자 맨커 올슨이 <국가의 흥망성쇠>에서 지적한 대로, 국부의 추가적 생산보다는 기존의 부를 소수에게 편향적으로 분배하는 효과를 갖는다. 그리고 그것은 강대국이 사회적으로 쇠퇴하는 원인이 된다. 로비회사들이 정치가들에게 쏟아붓는 수천억원보다 훨씬 더 많은 ‘투자이익’을 가져갈 것이란 점은 자명하지 않은가? 그렇게 되면 정치는 천문학적으로 더 많이 가진 자들과 어떤 로비활동도 벌일 수 없는 처지에서 점점 더 자신의 몫을 부당하게 빼앗기고 있다고 느끼는 다수 사이의 깊은 분열과 갈등으로 빠져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