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경선 칼럼니스트·Http://www.catwoman.pe.kr
세간의 러브스토리는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맺어지면 보통 거기서 디엔드(THE END)를 고한다. 짓궂은 우리 창조주는 ‘안정’과 ‘긴장’이라는 전혀 다른 두 개의 사랑의 욕망을 주시다 보니 그 이후의 스토리는 만만치 않게 거칠기에 우리 모두는 그렇게 가혹한 현실까지 묘사하길 원치 않는다. 살아가려면 판타지도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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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레이션/ 이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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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스토리가 늘 행복의 절정에서 끝나야만 한다는 강박증만큼이나 전형적인 것은 TV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주는 혼외연애의 모습이다. 대다수는 우유부단하고 달짝지근하게 생긴 결혼한 남자와 기가 너무 세서 주변 남자들을 다 갈아 마셔버릴 것 같은 섹시한 결혼 안 한 여자가 한 세트로 구성된다. 그녀는 늘 와이프보다 더 미인이었다. 마치 그래야 불륜이 성립되는 것처럼. 그러나 현실에서 개시 중인 커플들을 보면 ‘저, 저런’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수수하고 우직할 정도로 성실한 여자들이 결혼한 남자와 목하 연애 중이다. ‘여우 같은 년’들은 손해 보는 장사 절대 안 한다.
어쨌든 이 사태를 두고 그녀의 친구들은 ‘멀쩡한 네가 왜 하고많은 남자 중에서 유부남이냐’며 뜯어말린다. 유부녀 친구들에겐 당연히 말조차 못 꺼낸다. 바보처럼 그런 놈의 어디가 좋냐고, 그 남자가 너를 갖고 노는 것뿐이라고 곁에서는 애태우지만 정작 답답한 것은 당사자 본인이 가장 강하게 체감하기에 “역시 와이프밖엔 없네”라며 그를 향해 비아냥거리게 된다. 남자는 애써 상냥하게 응한다. “마누라면 뭐해. 형식뿐이야. 애정은 없어.” 하지만 그는 여자들이 애정의 깊이나 내용보다 애정의 형식을 때로는 더 간절히 원한다는 것을 모른다. 그들의 연애가 어떤 형식으로도 정리될 수 없음을 아는 그녀가 볼멘소리로 한마디 덧붙인다. “아무리 사랑받고 있다 한들 친구들이나 가족에게 소개도 못하는 여자가 더 비참해.”
이럴 때 여자가 사랑을 구걸하거나 집착을 하면 이별만 더 빨리 찾아온다는 것을 알기에 그런 불안과 실망감이 동반하는 그 사랑을 받아들이면서 그저 내가 어떻게 상대를 사랑하고 사랑받았나 하는 사실만을 상기시키며 위태로운 줄다리기를 이어간다. 이런 게 무서웠으면 아예 처음부터 이런 사랑 따윈 안 했어, 라며 강한 척이다.
그러고는, 전화벨이 울리면 잠시 자리를 피해 방구석을 찾아 들어가 자근자근한 목소리로 아내와의 통화를 끝내고 계면쩍음을 속이는 그의 어정쩡한 미소와 그렇게 불완전 연소를 하고 집에 돌아가는 그의 지쳐 보이는 뒷모습을 보며 아이로니컬하게도 이젠 정말 끝내자는 다짐이 또 한 번 무너진다. 그에게 맞추느라 내가 휘둘린다 해도 고독과 기다림에 중독되다 보면, 막상 얼굴을 마주할 때의 행복은 그 고통 이상으로 강하니까. 그리고 말이다, 나를 걱정해주는 친구들아, 그는 적어도 내가 바라는 그 이상으로 내게 충분히 분에 넘칠 만큼 사랑을 표현해주거든. 그렇게 표현력이 있는 남자들은 늘 사랑에 이겨왔다. 이 면에서 총각은 유부남을 절대 이기지 못한다. 그도 그런 것이 사실 유부남이 그녀에게 기꺼이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사랑밖엔 없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