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 <개그콘서트> · SBS <웃찾사> · 문화방송 <개그야>, 세 대륙에서 펼쳐지는 개그의 향연
▣ 안인용 기자 한겨레 매거진팀nico@hani.co.kr
‘학’자가 들어가는 과목은 꽤나 복잡한 편이다. 수학과 과학이 대표적이다. 그중에서도 과학, 그중에서도 지구과학이 늘 두통을 유발했다. 건강을 위해 지구과학에 유독 눈길을 주지 않은 관계로 그 시간에 뭘 배웠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름대로 지구과학에 대해서는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 ‘지구는 태어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 움직이고 있다.’ 느닷없이 개그 칼럼에서 지구과학을 운운하는 이유는 하나다. 개그 역시 지구처럼 늘 움직이고 있고,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방송 소속’이 정체성 될 순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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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종철은 아카펠라를 코믹하게 변형한 ‘나카펠라’로 <개그야>에서 첫인사를 했다. 이 코너에서 정종철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는 각종 성대모사와 표정연기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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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개그 프로그램 3개를 꼽으라면, 두말할 것 없이 한국방송 <개그콘서트>와 SBS <웃찾사>, 문화방송 <개그야>다. 이 세 프로그램은 개그라는 같은 별 위에 살고 있지만 개그에 접근하는 방식이나 개그 스타일이 저마다 다르다. <개그콘서트>에는 대중성에 노련함이 섞여 있고, <웃찾사>에는 마니아성에 기발함이 녹아 있으며, <개그야>는 깔끔함에 신선함이 담겨 있다. 세 프로그램은 마치 유라시아 대륙과 북아메리카 대륙, 남아메리카 대륙처럼 서로 다른 대륙에 살고 있고, 개그라는 웃음의 언어를 조금씩 다르게 사용한다. 당연히 그 프로그램에서 활동하는 개그맨들도 각자 자기 프로그램에 어울리고 잘 맞는 개그를 만들어낸다. 서로 조금씩은 다른 웃음의 언어를 가지고 누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지를 놓고 적당히 견제하고 경쟁하는 게 개그라는 행성의 생리다.
이 행성에 최근 거대한 지각변동이라고 할 만한 사건이 있었다. <개그콘서트>의 상징이나 다름없던 박준형과 정종철이 <개그야>로 옮겨간 사건이 그것이다. 왜 옮겼는지는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알 수도 없고, 시청자 입장에서는 굳이 알 필요도 없다. 이 사건은 이적이나 수혈, 영입, 합류, 입성, 투입 등 여러 가지 단어로 설명됐다. 또 정종철이 옮긴 뒤 처음 선보인 ‘나카펠라’에 대해서 사람들은 그가 <개그콘서트> 시절에 했던 개그와 비교하며 ‘재미없다’ ‘실망이다’ ‘별로다’ ‘좋다’ 등 다양한 뒷얘기를 꺼내놓았다. 이런 상황은 개그 프로그램과 개그 프로그램 시청자가 얼마나 보수적인지를 새삼 느끼게 한다.
심형래나 최양락 등 ‘개그의 장인’ 반열에 오른 개그맨들을 볼 때 우리는 그들이 주로 활동했던 방송사나 프로그램명을 따지지 않는다. 그들이 어디서 활동했느냐 대신 그들이 어떻게 활동했느냐를 떠올린다. 유재석이나 박명수, 신동엽 같은 개그맨 출신 엔터테이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어느 방송사 출신 개그맨인가를 지금 그들의 활동과 연관짓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유독 2000년대 들어서부터 ‘어느 방송사 개그 프로그램에 소속되어 있느냐’가 마치 그 개그맨의 정체성이나 개그 실력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것처럼 바라보고 있다.
‘웃는다’는 현상 만드는 사람에게 경의를
이쯤에서 다시 한 번 지구과학 시간으로 돌아가 희미한 학창 시절 기억 속에서 판구조론이나 대륙이동설 같은 단어를 건져올려보자. 아직 확실한 학설은 아니지만 지구는 원래 대략 하나의 땅이었는데 그 땅이 조각조각 갈라져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판구조론과 대륙이동설인지의 대략적인 설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개그도 마찬가지다. (정색하고 쓰려니까 민망하지만 어쨌든) 개그 역시 본래 하나의 땅이다. 방송국이나 프로그램별로 조각조각 갈라져있을 뿐, 본질은 같다.
방송사나 프로그램은 그저 개그를 펼치는 하나의 대륙일 뿐이다. 한국방송 공채 개그맨이기 때문에 <개그콘서트>에서 개그를 시작하지만 여건이 맞으면 다른 방송사에서 연기를 할 수도 있고, 자기에게 더 잘 맞는 웃음의 언어를 찾아갈 수도 있다. 개그맨은 어느 방송사에서든, 어느 프로그램에서든 자기가 최고의 웃음을 만들어낼 수 있는 환경에서 웃기면 되니까.
변화와 움직임은 새로운 힘을 만들어내는 에너지다. 개그에도 그런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개그맨은 한 프로그램에 둥지를 틀면 웬만해서는 옮기지 않는다. 변화와 움직임을 더 장려해도 부족한데 누군가 옮기기라도 할라치면 마찰이나 사연이 있는 것쯤으로 해석한다. 개그맨의 이동에 대해 과민반응하는 것은, 개그를 대하는 태도로 올바르지 않다. 개그의 팔할은 개그맨들 사이의 합이고 시너지 효과다. 한현민과 유세윤, 이용진과 오정태, 신봉선과 정주리가 만들어내는 코너를 보고 싶지 않은가. 다른 영역에 비해 개그는 유난히 높고 두꺼운 벽을 부수는 것이 더 새로운 개그의 형식과 내용을 위해 꼭 필요하다, 고 이 연사 힘차게 외치는 바이다.
모든 개그맨은 예술가다. 아이디어와 연기로 ‘웃는다’라는 신기한 현상을 만들어내는 신기한 사람들이다. 지난 2년 동안 이 칼럼에서 언급한, 혹은 시기를 놓쳐 언급하지 못한 모든 개그맨에게 경의를 표하며, 이번 회를 마지막으로 ‘안인용의 개그쟁이’는 막을 내린다. 마지막 인사는 철 지난 유행어로 대신하겠다. “분위기 다운되면 다시 돌아온다!”
*‘안인용의 개그쟁이’는 이번 호로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