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광 안산의료생협 부설 새안산의원 원장
어느 날 ‘세인트’ 신부님께서 웬 여인을 데리고 진료실로 들어오셨다. 한국말을 잘 못하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단체 실무자들이나 자원봉사자들이 같이 와서 통역을 해주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은 신부님(신부님은 안산의 모 이주노동자 단체의 소장님이기도 하다)이 직접 환자를 데리고 오셨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환자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같이 온 안젤라(가명)는 1~2년 전에 자궁경부암이 발견돼 모 대학병원에서 수술치료와 화학요법을 받았다. 이후 특별한 문제 없이 일상생활을 했는데 얼마 전부터 자주 피곤하고 몸도 여기저기 아파서 왔다고 한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청진을 한 뒤, 몇 가지 검사와 처방을 하였다. 이전에 자궁경부암을 수술하기도 했으니 산부인과에도 가서 진찰해볼 것을 권유했다. 진료가 끝나자 그녀는 몸이 아파 한국에서의 생활이 어려울 텐데도 해맑은 미소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연발했다.
이후 한두 달이 지나 진료실에 신부님이 다시 오셨다. 신부님은 안젤라의 문제를 상의하러 오신 것이다. 안젤라가 이전에 수술을 받을 때는 수술치료로 좋아질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러한 상황을 호소해 친구들과 이주노동자 모임 등을 통해 모금을 해서 수술을 받았다.
실제로 의료보험이 없는 이주노동자가 내야 하는 의료비는 엄청나다. 또 이들의 급여는 형편없는 수준이다. 그 돈을 모으기 위해 주변 사람들은 엄청난 노력을 했을 것이다. 이후 환자는 다 좋아진 것으로 판단하고 일상생활을 했다. 특별한 사후관리나 정기적 진찰 등은 받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담당의사는 수술을 한다고 해서 좋아진다는 보장을 할 수 없다고 했단다. 오히려 가망이 별로 없는 상태라면서 수술을 해야 한다니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냐며 신부님이 물으셨다. 신부님도 여러 번 담당의사를 만났는데 담당의사는 자신은 설명을 다 했으니 결정은 환자와 보호자들이 알아서 하라고 말했단다.
나는 신부님께 드릴 말이 별로 없었다. 원칙적으로 질병이 있을 때 그 치료 가능성이 아주 적어도 방법이 있다면 시도한다. 의사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배운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여기에는 돈이 많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의사는 이 사실을 고려할 수 없고(또는 상관할 필요가 없고), 환자나 그 보호자는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담당의사에게 연락해 상황을 좀더 정확하게 알아보는 일뿐이었다. 현재의 상황을 당사자들에게 알아듣기 쉽게, 잘 판단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기 위해서. 그런데 대학병원 과장님인 담당의사는 워낙 바빠 전화 통화를 하기도 힘들었고, 자기의 입장을 간단히 말해주는 것 이외의 호의를 보여주지 않았다.
1~2주 결정을 미루다가 결국 환자는 퇴원을 했다. 그리고 다시 몇 주 뒤 신부님이 오셔서 안젤라는 고향으로 갔다고 하셨다. 고향에서 죽음을 맞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1990년대나 지금이나 우리 의원을 찾는 이주노동자의 대부분은 아직도 의료보험증이 없다. 안젤라가 많은 친구들의 도움으로 자궁경부암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나서 적절한 사후관리를 하지 못한 것은 이런 부당한 대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모든 이주노동자들이 ‘돈이 없어서 진료를 못 받고 눈물을 흘리는 일이 없어질 때’는 언제 올까. 안젤라는 지금 고향에서 잘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