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칼럼 > 잊을 수 없는 환자 칼럼 목록 > 내용   2006년09월29일 제629호
할머니의 쪽방

▣ 백인미 독거노인 주치의 맺기 운동본부 운영위원장·우리집의원 원장

문 할머니 집에 가려면 산기슭에 차를 대놓고 한참 걸어 올라가야 한다. 걷다가 숨이 조금 찰 만하면 폭이 1미터 정도 되는 좁은 골목에 다다르고 여기에서 두 번째 쪽방에 혼자 살고 계신다. 대문은 없다. 약간 비뚤게 짜여진 문틀을 넘으면 바로 부엌이다. 부엌에는 낡은 찬장이 입을 벌리고 있고 그 안에는 몇 달 동안 먼지가 앉은 그릇들이 내팽개쳐져 있다.


부엌에서 방으로 들어가려면 꽤 높은 문턱을 넘어야 한다. 할머니는 여기를 넘다가 여러 번 굴러 떨어지셨다고 한다.

할머니 방은 한 평 반 남짓이다. 오줌 냄새에 절은 방에는 작고 때가 낀 구형 전기밥솥이 두 개 있다. 밥솥 한 개에는 밥을 모아 담아놓았다. 맨 밑의 밥은 아마도 일주일 전쯤 넣은 듯 색깔이 누렇게 변해 있었다. 다른 밥솥에는 시큼한 냄새가 나는 국이 있었다. 할머니는 무릎관절염 때문에 거동이 어려워 식사 준비를 못하신다. 그래서 복지관에서 배달해주는 밥과 반찬을 이렇게 전기밥솥에 저장해놓고 며칠씩 드신다.

처음 방문하여 뵌 할머니 얼굴은 참 어두웠다. 그때가 3년 전 12월이었는데, 연말에는 찾아오던 사람도 발길이 뜸해져 싫다고 하셨다. 그 후 몇 달은 찾아가도 별로 좋아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으셨다. 곧 죽을 사람에게 무슨 상관이냐는 얼굴이셨다. 박카스를 한 박스 사들고 간 어느날, 할머니는 처음으로 활짝 웃으시면서 박카스 병뚜껑을 열어달라고 하셨다. 할머니는 아기처럼 좋아하시면서 박카스를 조금씩 조금씩 아껴서 마셨다.

할머니를 진찰하면서 보니 이마에 풍뎅이같이 생긴 피부병변이 4~5개 자리잡고 있었다. 피부암같이 보여 할머니께 “이거 없애볼까요?” 했더니 그럴 수 있냐고 되물으셨다. 조직검사를 하고 치료하려면 돈이 좀 들 것 같았다. 독거노인주치의맺기운동본부에 지원신청을 내었고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되었다. 조직검사소견은 기저세포암이었고 할머니는 병변을 절제하고 약물치료를 받으면서 좋아지셨다.


어느 날 할머니에게 도시락을 배달해주는 옥수복지관 하경환 재가노인 복지사가 내게 전화를 했다. 할머니께서 노인시설로 가시는 게 좋겠다는 것이었다. 거동도 예전보다 훨씬 못하시고 대소변도 점점 가리지 못하셔서 갑자기 돌아가셔도 손을 쓸 수가 없으니 노인시설로 들어가시는 것이 옳았다. 진작부터 노인시설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던 나였지만 막상 할머니를 보내려니 서운했다. 하 복지사는 할머니 얼굴의 피부암을 치료해드리기 위해 할머니를 들쳐업고 대학병원과 우리 병원을 여러 번 왔다 갔다 하였다.

진단서를 쓰면서 마음이 아파왔다. 할머니는 시설로 들어가고 싶어하지 않으셨기 때문이었다. 힘들어도 혼자 사는 것이 좋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어렵사리 갈 곳을 정하고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뵙던 날이었다. 할머니는 힘든 몸을 이끌고 꼭 문밖까지 배웅을 나오셨다. 내 손을 잡으시는 할머니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얼굴의 피부암은 거의 사라지고 흔적만 남아 있었다. 먹고사는 게 너무 힘겹다고 하시던 할머니셨다. 그러나 혼자서는 그곳에 가기 싫다고 계속 중얼거리셨다.

“할머니, 시설로 가시면 때 되면 밥도 주고 친구들도 많이 계세요.”

“그래도 혼자 가기 싫어.”

할머니는 날 붙들고 있으면 시설로 안 가도 되는 것처럼 내 손을 놓지 않으셨다. 괜히 내 눈에서도 멀건 뭔가가 차올라왔다. “할머니, 시설에 가셔서 끼니 거르지 마시고, 항상 외로워하셨는데 친구들과도 잘 지내세요. 아프지 마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