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칼럼 > 아프리카 초원학교 칼럼 목록 > 내용   2006년05월11일 제609호
콰헤리 탄자니아

전기가 없어도 행복한 삶과 하늘의 소중함을 가르쳐준 아프리카와의 작별…사람들이 카트로 엉덩이를 찌르는 서울의 쇼핑몰에서 다시 그곳을 꿈꾼다

▣ 구혜경 방송작가·세원, 윤재 엄마 hk21bh@hanmail.net

의사의 만류와 지인들의 걱정을 뒤로하고 온 아프리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가기에는 더럽고 위험한 곳이 아니냐고 했다. 그러던 이곳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여섯 달이 흘렀고, 이곳에도 사람은 살고 있었다. 인연의 끈이 어떻게 이곳에 닿았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여기서 보고 배우고 느꼈다. 저 깊은 기억 창고의 밑바닥에라도 우리가 경험한 것들을 묻어둘 것이다. 아이들은 여기서 전기 없이도 행복한 사람들의 삶을 보았다.

그 많은 동물들이여, 잘 지내거라

양초 하나만 있어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촛불 아래 오순도순 얘기 나누는 것이 즐겁다는 것을, 물이 얼마나 고마운지를 소리 높여 얘기하거나 반복해서 말하지 않더라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 아프리카는 우리가 발 딛고 사는 대지와 하늘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가르쳐주었다. 철로변을 걷는 아루샤 주민들.

또 우리가 먹고 입고 쓰는 모든 것들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우리가 발 딛고 사는 대지와 하늘과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떠나자니 이곳에서 정들었던 많은 것들이 눈에 밟힌다. 우린 인사를 나눌 수 있는 가까운 것들과 인사했다.

안녕, 우리 집 목욕탕에 사는 민달팽이. 매일 아침 이를 닦으며 오늘은 천장 어디쯤에 붙었는지 찾아보곤 했다. 통통한 너를 바라보며 이 닦던 재미도 이제 접어야겠구나. 잘 있어, 이름 모를 새야. 너의 울음소리 덕분에 잠이 깨곤 했지. 네 울음소리를 흉내내며 놀던 것도 추억이 되겠구나.

건강하렴. 가끔씩 우리 집에 놀러왔던 줄무늬 도마뱀아. 너로 인해 처음으로 징그럽다고 생각했던 것들과 친구가 될 수 있었어. 하지만 꼬리가 잘리지 않도록 조심해.

또 만나. 아보카도 나무야. 너는 짧은 시간 동안 쑥쑥 커줬다. 네가 크는 걸 지켜보면서 우리도 함께 컸단다. 어김없이 사람들에게 그늘을 주고, 멋진 아보카도도 많이 키우길 바라.

행복해야 해, 아프리카의 동물들. 우리를 황홀하게 했던 코뿔소와 치타야. 흰 바탕의 검은 줄인지, 검은 바탕에 흰 줄인지 알 수 없는 얼룩말들아. 키가 커서 물 먹을 때는 꼭 앞발을 옆으로 벌려야 하는 기린아. ‘호로호로’ 하며 뛰는 듯 나는 듯 하는 호로새(닭의 일종)야. 젊어도 늙어도 늘 할아버지처럼 보이는 누들도. 동물의 왕답게 멋졌던 사자들아. 달릴 땐 안테나를 세운 듯 꼬리를 세우고 뛰는 야생 멧돼지, 워통(warthong)아.


△ 초원의 파란 하늘.

응고롱고로 분화구와 세렝게티, 올드바이협곡, 킬리만자로산 그리고 우리 집 뒤에서 우리를 늘 내려다보던 메루산, 패션 과일 맛의 환타와 오렌지, 우당탕탕 시내버스 달라달라와 하쿠나마타타의 당신들. 이제 우리는 집으로 간다. 우리가 사랑했던 하늘과 바람과 구름과 나무와 동물들이 우리 기억 속에 영원하기를. 사랑한다, 검은 땅의 모든 것들. 너로 인해 행복했고 너에게서 배웠다. 고맙다. 아산테사나!!(고맙다는 뜻의 스와힐리어)

봄이와도 서울은 춥구나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서울로. 떠나 있을 땐 돌아오고 싶었는데 그리움도 잠깐이다.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은행의 빠른 서비스와 가까운 가게에만 가도 필요한 것을 구할 수 있는 편리함이 반갑다. 긴 줄을 앞에 두고 아무도 불평하지 않고 서 있는 아프리카 은행에서의 경험이 오버랩된다. 그때는 나 혼자만 불평했다. 내 뒤에 서 있던 여인은 자신의 차례가 되자 창구에 대고 “폴레사나”라고 했다. 스와힐리어로 “천천히 천천히”. 서울에서 들른 마트에서는 뒤에 오던 사람이 카트로 엉덩이를 쿡쿡 친다. 비켜달라는 건가? 한꺼번에 필요한 것은 원스톱으로 살 수 있는 이곳에서도 사람들은 지나가는 통로를 카트로 막고 휴대전화를 받느라 열심이다. 뉴스는 여전히 역동적이다. 짧은 군대 생활을 한 사람이 오히려 군대 얘기를 많이 한다고 하던가? 나 역시 기껏 여섯 달이란 시간이었는데, 한국에서의 생활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한동안은 유명 연예인 이름도 기억나지 않았다.

몸의 리듬이 더운 날씨에 맞춰져 있었는지 봄이 몹시 춥다. 큰아이는 학교에 들어가 1학년이 되었고, 아프리카에서 두 번이나 깁스를 한 둘째아이 팔도 괜찮다고 한다. 꿈같은 시간이었다. 4살, 6살 아이 둘을 혼자서 끌고 나섰던 첫 여행길. 아니 낯선 곳에서의 짧고도 긴 생활. 제대로 된 정보도 없이 비상약과 볶은 고추장만을 싸들고 나섰던 2005년 7월. 그리고 다시 서울. 마치 공간이동을 한 듯한 지금. 세원이는 아루샤 하늘이 보고 싶다고 한다. 둘째 윤재는 동물 다큐멘터리에 푹 빠져 있다. 그리하여 나는 다시 꿈을 꾼다. 이미 그리운 곳 아프리카를… 콰헤리, 탄자니아. 바다이!(안녕, 탄자니아, 또 만나!)

*아프리카 초원학교를 이번호로 마칩니다. 성원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