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레일리아의 386세대’가 향유했던 무료 공교육 제도는 옛말
▣ 시드니=권기정 전문위원 kjkwon@hotmail.com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무상 공교육을 자랑하던 오스트레일리아가 변신 중이다. 사립 유치원 제도를 실행하고 공립 초겵?고등학교와 대학 예산을 대폭 삭감하더니, 아예 대학 등록금까지 자율화했다. 그동안 교육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손’으로 기능해오던 연방정부의 역할을 대폭 줄여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4선 재임 중인 자유당 존 하워드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노선을 도입한 이후 ‘복지국가의 후퇴’ 때문에 생긴 결과다. 특히 연방정부가 전국 39개의 종합대학 등록금 자율화 정책을 실시한 지는 2년에 불과하지만, 학부과정 등록금이 10만오스트레일리아달러(약 7072만원)를 넘는 학과들 수는 그사이 2배나 많아졌다.
각 대학이 최근 발표한 내년도 입학요강만 보더라도 학부 과정 졸업장을 따기 위해 4년간 내야 하는 등록금이 10만달러를 훌쩍 넘어선 학과는 100개가 넘는다. 이 고가 학부 과정들은 대부분 의학겙幣鬼ㅀ墟?등의 복수학위 과정이지만, 이 중에는 법학겭袁宕弔愍?인문 복수학위 과정 등 인문계열도 다수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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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비는 국가가 지불하라!” 지난해 8월 시드니에서 열린 집회에서 한 대학생이 존 하워드 총리의 등록금 자율화 조치를 비판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 REUTERS/ NEWSIS/ DAVID GR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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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학비가 무려 20만달러를 넘는 학과도 5곳에 달한다. 그중에서도 내년 학부 과정 등록금이 가장 비싼 곳은 시드니 소재 뉴사우스웨일스대학(UNSW)의 의학-인문학 복수학위 과정이다. 이 학과를 졸업하려면 등록금으로만 우리 돈으로 약 1억7천만원에 가까운 23만7천달러가 소요된다. 멜버른 소재 본드대학의 의예과 등록금도 23만3천달러로 그 뒤를 잇고 있으며, 멜버른대 의대 내겳丙?통합 과정 등록금도 22만달러에 육박한다.
이같은 대학 등록금 인상에 대해 정부는 “수많은 대학생들을 졸업과 동시에 빚더미에 올려놨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사실 오스트레일리아에선 무상 대학교육을 실시했던 80년대까지만 해도 등록금 걱정 안 하고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정부가 등록금을 학생들에게 빌려주고 졸업 뒤 세금으로 갚아나가게 하는 등록금 후불제도인 일명 ‘헥스’(HECS) 제도를 도입한 이후 학생들은 몇만달러에 달하는 빚을 안고 캠퍼스를 떠나게 됐다.
게다가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한 이후 각종 복지 예산을 줄여가면서 각 대학 지원금도 삭감했다. 결국 운영난에 허덕이던 각 대학은 궁여지책으로 정부 예산 대신 학생들의 등록금에서 재원을 마련하고자 ‘등록금 자율화’를 정부에 요구했다. 교육계와 야권의 반대에도 하워드 정부가 등록금 자율화를 허가한 지 불과 2년 만에 등록금이 20만달러가 넘는 학과들이 속출하게 된 것이다.
물론 정부는 등록금을 후불로 납부하지 않고 선불로 납부하는 학생들에게는 학비의 25%를 할인해준다. 하지만 연간 3만달러가 넘는 등록금을 선불로 낼 수 있는 학생들은 제한적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부모의 도움을 안 받고 스스로 졸업 뒤 학비를 갚아나가는 후불제도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스트레일리아인 평균 주택융자금 규모가 22만달러인 것과 비교해보면, 후불제를 선택했던 대학생들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순간 집 한 채 값에 해당하는 빚을 안고 시작하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대학 진학을 아예 포기하는 수험생들도 하워드 총리 집권 이후 급증했다. 연방 제1야당인 노동당이 공교육 정상화와 함께 대학 등록금 자율화 폐지를 내년 연방총선 이슈로 끌고 가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당이 집권한다 해도 ‘교육비는 국가가 지불’했던 그 시절로 복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유치원에서 대학원까지 학비를 내본 적이 없는 ‘오스트레일리아의 386세대’가 향유했던 무료 공교육 제도를 요즘 대학생들이 무척 그리워하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