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국제 > 와일드 월드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6년02월09일 제596호
발리, 앞으로 3년은 괜찮다?

테러 이후 관광객 급감… 서구인 자취 사라지고 중국인들 활개

▣ 발리=서영철 전문위원 uzseo@hanmail.net

테러가 일어난 지 3개월, 구름 한 점 없는 맑디맑은 발리의 하늘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고 되묻는 것 같았다. 2005년 10월1일 발리의 ‘관광의 삼각지’라고 불리는 쿠타 거리와 짐바란에서 자살 폭탄 테러가 일어나 26명이 죽고 수십 명이 부상을 당했다. 3년 만에 다시 터진 폭탄 테러였다. 하지만 발리 폭탄 테러의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활기를 되찾아가던 발리 관광산업이 다시 침체된 것이다. 관광객들이 급감하면서 주민들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 공항에서 탄 택시의 기사는 “지난해 이슬람 명절인 르바란에는 보통 하루에 40회 이상을 운행했는데 이번에는 한 번도 손님을 태우지 못한 날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하루벌이도 힘든데 집에 두었던 목돈까지 도둑맞았다”며 울먹였다. 택시를 그냥 내릴 수가 없어 요금에 조금 돈을 얹어주었다. 운전사는 “트리마카시”(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면서 미소로 인사해주었다.

많은 발리 주민들도 택시기사와 같은 형편이다. 실제로 이번 르바란 명절 기간에 발리 지역의 호텔 투숙률은 50% 미만을 기록했다. 폭탄 테러가 있기 전에는 매일 4천~5천 명이 입국을 했지만 지난해 10월1일 이후 1200명으로 급감했다.

중심지인 덴파사르에서 북쪽으로 20km 정도 떨어진 예술의 중심지 우붓에서 만난 경찰은 “지금 발리 전체가 힘들다. 폭탄 테러 이후 외국인 관광객이 절반 이상으로 줄었다. 모든 숙박업소들이 숙박비를 40~50% 내렸지만 객실이 많이 비어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을 증명하듯 필자가 묵었던 우붓의 호텔방은 거의 비어 있었다. 이 호텔 매니저는 체크아웃하는 필자에게 “한국에 돌아가거나 다른 한국인을 만나면 지금 발리와 우붓은 폭탄 테러 위험이 없고 안전하니 여행해도 좋다고 선전해주세요”라며 자신의 호텔 명함 수십 장을 집어주었다.


△ 테러에 희생된 이들을 넋을 달래는 힌두교식 제단이 차려진 라자스 바 & 레스토랑

주요 거리와 유명한 음식점을 피해 변두리의 작은 술집과 음식점에 가는 진기한 풍속도도 펼쳐진다. 그리고 폭탄 테러가 미국인, 오스트레일리아인 등 서구인을 목표로 했다는 이유로 지금 발리에서는 서구인들을 거리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예전에 발리는 오스트레일리아인으로 대표되는 서양인들의 관광섬이었다. 눈 크고 코 높은 이들이 서핑보드를 들고 활보하던 거리에 지금은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서 온 중국인이 가득하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의 여행사들이 ‘테러로 인해 발리의 호텔과 음식점들이 가격을 내려서 저렴하게 발리를 여행할 수 있다’며 구두쇠로 알려진 중국인들의 지갑을 열고 있다. 내가 발리에 오기 전에 중국인 친구는 “지금이 저렴하게 발리를 여행할 수 있는 시기”라고 말한 반면 미국인 친구는 “어떻게 겁나서 그곳에 갈 수 있냐”고 걱정스럽게 말했다.

관광객의 감소로 힘들어 보였지만 내가 만난 발리 주민들은 “이런 힘든 상황들이 곧 해결되고 발리는 예전처럼 관광객으로 북적일 것”이라고 희망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식당 종업원은 나에게 “발리에서는 3년 주기로 폭탄이 터집니다. 이번에 터졌으니 3년간은 발리가 안전하겠죠”라고 장난기 섞인 농담을 던졌다.

자살 폭탄 테러로 파괴됐던 ‘라자스 바 & 레스토랑’ 앞에는 이곳에서 죽은 이들의 넋을 달래는 힌두교식 제단이 놓여 있다. 아침이면 발리 전통의상을 입은 남성과 여성이 바바나잎과 야자수잎으로 만든 광주리에 제삿밥을 담아와 제단에 바치고 향을 피운다. 합장을 하고 묵도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발리를 방문한 관광객들은 고개를 살짝 내리고 두 손으로 공손히 합장하며 미소를 지어주는 발리 주민들을 접하는 순간 폭탄 테러의 공포를 잊을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만난 발리인, 그들 안에는 발리가 관광객으로 붐비던 예전의 활기찬 모습을 꿈꾸는 희망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