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국제 > 와일드 월드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5년12월15일 제589호
찍힌 스탬프에 넌 찍혔어!

이스라엘을 드나든 여권의 희미한 흔적만으로도 시리아 출입금지!

▣ 암만=김동문 yahiya@hanmail.net

중동에서 이스라엘 거주 비자를 가지고 있다면 입국이 금지될 나라는 수두룩하다. 이스라엘에 다녀온 전력이 있는 외국인에게도 중동 국가는 까다롭다.

얼마 전까지 소지하고 있던 내 여권에는 시리아, 레바논, 이란, 이라크, 예멘은 물론 웬만한 아랍 국가의 출입국 스탬프가 가득하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스탬프는 없다. 물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도 수차례 드나들었다. 그런데도 스탬프가 없는 것은, 여권에 출입국 스탬프를 찍지 않는 요르단과 이스라엘의 간이 국경인 후세인 국경사무소를 출입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스라엘을 출입국하는 사람의 고충을 알기에 이스라엘 국경사무소에서는 입국자가 요청하면 별지에 스탬프를 찍어준다.

레바논이나 시리아는 이스라엘 출입국 흔적이 있으면 입국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란도 마찬가지다. 이라크도 이라크 전쟁 이전까지 이스라엘을 출입한 자의 입국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것은 국가보안법에 해당하는 금지사항이었다. 자국민이 사전에 정부의 허가 없이 이스라엘을 출입하거나 이스라엘 사람을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처벌받을 수 있다. 이스라엘을 입국하는 경우는 이른바 이스라엘의 적성 국가를 출입했다고 하여 법의 강제 규정으로 공식적으로 입국을 금지하지는 않는다.

2001년 봄 나는 시리아 국경사무소에서 승강이를 벌여야 했다. 입국을 시켜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시리아의 지도에 이스라엘을 표시하지 않는 관례를 들어 요르단과 맞닿은 시리아 국경사무소장에게 슬쩍 항의해보았다. “시리아 지도에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존재하기라도 한단 말입니까?” “당신 말이 맞습니다. 이스라엘은 우리나라 지도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니, 실정법상 존재하지도 않는 나라를 출입했다는 이유로 입국을 거부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그러나 입국을 허용할 수는 없습니다.”


△ 모든 길은 다마스쿠스로 통한다.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는 인접 국가 레바논과 요르단 등을 연결하는 국경택시들이 많다.

시리아 국경에서는 스탬프도 없는데 이스라엘을 드나들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것은 이스라엘에 닿아 있는 이집트 타바 국경 출국 스탬프가 희미하지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시리아 입국을 거부당하고 암만으로 돌아왔다. 똑같은 여권으로 2000년 3월 중순에는 시리아를 다녀왔었다. 이후 여권을 갱신해야 했다. 갱신한 여권으로도 어떤 때는 입국을 거부당하고 어떤 때는 들어갔다. 입국 심사관의 ‘심사’(心思)에 따라 출입이 허용되고 거부되는 것이다.

번거로운 일은 적성 국가 출입이 허용되는 이스라엘에도 있다. 2002년 봄 이스라엘을 방문하려고 후세인 왕 다리 국경사무소를 빠져나가 이스라엘 쪽의 여리고 국경사무소에 도착했다. 짐 검색을 마치고 입국 심사대에 서 있었다. 잠시 뒤 국경 보안요원이 보안책임자 사무실로 데리고 갔다. 이스라엘 적성국가를 찾은 이유와 그곳에서 한 일들, 그리고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만난 현지인들에 대한 자세한 진술을 요구했다. 4~5시간 동안의 깊이 있는 대화(?)를 마치고 나서야 이스라엘 입국이 허용됐다. 이런 일을 겪으면 기운이 다 빠져서는 “내 다시는 오나 봐라” 하는 심정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종종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을 오가고 있다.

예멘이나 레바논, 시리아 등지를 오가면서 만난 현지인들과 대화하다가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속으로 식은땀이 흐른다. “아니, 이스라엘 점령 지역을 다녀오셨나요? 어떻게 그렇게 자세하게 알고 있나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그냥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다…”라며 말을 얼버무렸다. 휴~! 아랍 국가 사이의 정치적인 긴장이 줄어들지 않는다면 그 나라들을 출입하는 사람들도 그만큼 신경전을 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