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이미지를 창조하는 컨설팅 회사 인터브랜드코리아의 박상훈 사장
단기 목표보다는 장기적인 브랜드 구축이 기업의 가치 강화로 이어진다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해마다 7월께 나라 안팎 기업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 중 하나가 ‘세계 100대 브랜드 가치 평가’ 결과다. 올해는 코카콜라(675억달러), 마이크로소프트, IBM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나란히 1~3위를 차지한 가운데, 현대자동차가 국내 자동차 업체로는 처음으로 100대 브랜드에 진입했다는 게 단연 화제였다. 삼성전자는 지난해보다 한 계단 오른 20위로 일본 소니를 제쳤으며, LG전자가 97위로 100위권에 처음 진입한 사실도 눈길을 끈 대목이다.
상표만이 아닌 고객과의 관계
이런 브랜드 가치 평가는 세계 최대 브랜드 컨설팅 업체인 인터브랜드에서 이뤄지고 있다. 영국계에서 출발해 지금은 미국계로 바뀐 인터브랜드는 설립한 지 꼭 20년 만인 1994년 한국에 인터브랜드코리아를 세워 네이밍(회사 이름 짓기), 회사이미지통합(CI) 작업, 컨설팅 등 기업의 브랜드 전략 전반을 아우르고 있다. 국내에 네이밍, 디자인 등 분야별로 전문화된 업체는 많아도 브랜드 전략 서비스를 다양하게 포괄적으로 제공하는 데는 인터브랜드가 유일하다. 지난 2002년부터 인터브랜드코리아를 이끌고 있는 박상훈(44) 사장은 한-미 합작 동서식품, 이탈리아계 베네통, 프랑스계 지방시, 영국계 디아지오에서 경력을 쌓았다. 거쳐온 기업들의 업종도 국적만큼이나 다양해 식품, 패션(베네통·지방시), 주류(디아지오)에 브랜드 컨설팅이 덧붙었다.
브랜드 컨설팅이 어떤 것인지 알 듯 말 듯합니다. 브랜드 자체의 의미도 넓어 모호하고…. 브랜드라고 하면 흔히 ‘상표’ 정도로 여기는 시각이 아직 많은 것 같습니다.
“과거엔 브랜드를 상표로만 봤는데, 지금은 고객에게 비쳐지는 기업 이미지 전반을 포괄합니다. 브랜드 컨설팅은 ‘회사가 고객과 어떤 관계를 맺도록 하느냐’는 문제를 다루는 것입니다. 기업의 이미지를 독특하고 호의적이며 강하게 만들어주는 ‘의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브랜드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심지어 브랜드 정책을 곧 사업전략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브랜드의 중요성을 말하는 건 알겠는데, 너무 추상적으로 들린다. 설명을 들어도 잘 와닿지 않는다는 얘기에 박 사장은 말을 이어갔다.

△ 박상훈 사장의 인터브랜드코리아는 회사 이름 짓기, 로고 디자인, 브랜드 가지 평가 및 관리 등을 종합적으로 서비스하는 브랜드 컨설팅 업체다. (사진/ 곽윤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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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의 가치를 들어 설명해보면 좀더 명확해질 것입니다. 통상 해당 기업의 브랜드 가치는 시가총액에서 유형자산(설비, 재고 등)과 무형자산(경영능력, 특허권 등)을 뺀 나머지 전부를 일컫습니다. 지난해 인터브랜드 평가 결과, 미국 500대 기업의 시가총액에서 브랜드 가치의 비중은 38%로 유형자산(36%)보다 컸습니다. 1950년대 초 브랜드 가치의 비중이 23% 수준이었던 것에 견줘 굉장히 높아진 것입니다.” 기업의 가치를 따질 때 자산 가치 이상으로 고객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는 게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인터브랜드코리아라는 이름은 낯설어도 여기서 만들어진 ‘작품’은 한두 번씩 들어봤음직한 게 꽤 많다. 우선 작명(네이밍)의 사례로, 두산그룹에 인수된 대우종합기계의 새 이름 두산인프라코어를 들 수 있다. 인터브랜드코리아가 특히 두각을 나타내는 분야는 자동차 새 모델의 이름짓기다. 오피러스(기아자동차), 액티언·카이런(쌍용자동차), 에쿠스·티뷰론(현대자동차) 등이 모두 인터브랜드코리아의 손을 거쳤다.
최근에는 브랜드 네이밍 못지않게 브랜드 슬로건(구호)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인터브랜드의 손길을 거친 브랜드 슬로건은 현대자동차의 ‘드라이브 유어 웨이’(Drive your way), 국민은행의 ‘미래를 여는 지혜’, 교보생명의 ‘소중한 꿈이 이어지는’ 등이다. 이런 슬로건은 TV, 신문 등 각종 매체에 실리는 광고를 통해 고객한테 전달돼 해당 업체의 이미지를 굳히고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구실을 하게 된다. 브랜드 컨설팅 업체의 전통적인 사업 분야인 로고 디자인도 여전히 한 줄기를 차지하고 있다. 신한금융지주, KT, GM·대우자동차의 로고가 인터브랜드에서 만든 것이다. 인터브랜드코리아는 우리의 국가 브랜드인 ‘다이내믹 코리아’(국정홍보처)의 로고를 새롭게 바꾸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싸구려 이미지를 굳힐 순 없다
회사와 상품의 작명에서 국가 브랜드 개선 작업까지 아우르며 국내 브랜드 컨설팅 시장을 주도하는 박 사장의 첫 직장은 동서식품이었다. “학부(연세대) 때 공부한 경제학은 똑똑한 이들이 오랜 기간 연구하는 학문으로 여겨지더군요. 그것보다 좀더 단기적으로 실적을 낼 수 있고 구체적인 걸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 때문에 기업체에 취직하게 됐고, 훗날 경영학석사(MBA) 공부를 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명문대 졸업에 MBA(미국 조지워싱턴대) 경력은 외국계 기업의 최고경영자(CEO)한테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이력입니다. 너무 모범적인 길이 회사 경영에는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도 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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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훈 사장과 직원들이 우리나라의 국가 브랜드 슬로건인 '다이내믹 코리아'의 로고 개선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사진/ 곽윤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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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한테 MBA 과정은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해결 방법을 터득하는 틀을 제공해주거든요. 솔루션(해결책)을 찾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게 MBA 과정입니다. 제가 공부할 당시 제너럴모터스(GM)의 ‘지오’ 광고 캠페인 프로젝트를 따내 실제 참여한 일도 있습니다.” MBA는 결코 장식용이 아니라는 뜻이다.
MBA 과정을 마친 뒤 동서식품을 떠난 그는 이탈리아계 패션업체인 베네통 한국 지사의 마케팅 팀장으로 영입된다. 그가 이곳에서 일한 1992~94년에 베네통의 한국 매장은 0개에서 110개까지, 매출은 600억원까지 늘어나며 왕성하게 성장했다. 당시 베네통은 루치아노 회장의 알몸 광고를 비롯한 파격적인 마케팅 활동으로 화제를 뿌렸다. 루치아노의 알몸 광고 등의 한글 카피를 만드는 일이 모두 마케팅팀의 업무였으니 베네통의 파격적인 광고물에는 박 사장의 땀도 녹아 있는 셈이다.
베네통에서 일한 때가 파죽지세로 뻗어나갔던 시절이라면, 그 뒤 이어진 프랑스계 ‘지방시’에서는 좌절을 겪으며 경영 철학을 익힌 과정이었던 듯하다. ‘지방시’는 패션 브랜드로는 한참 떨어진 2류로 여겨지고 있어 국내에서 영업을 해나가는 게 힘들 수밖에 없었다.
“마케팅에 대한 멘탈리티(인식)에서 국내외 기업 간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기업은 신제품을 만들면 광고비 등 초기에 투자비를 많이 쓰는데, 외국계 기업은 우선 매출을 올리고 거기서 떼어 마케팅 비용을 조달합니다. 2류 브랜드인 지방시로 경쟁하기는 대단히 힘들었지요.” 좀 구체적인 설명을 요청하자, 백화점 입점에서 겪었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1998년 6월께 현대백화점에 입점할 때였는데, 우리가 원하는 공간의 4분의 1밖에 안 되는 5~6평만 배정해주겠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눈에 띄지도 않는 구석 자리에…. 이럴 때 2류 브랜드로선 좌절감을 느끼고 선택의 기로에 빠집니다. 매출 목표를 맞추려면 5~6평이라도 받아야 하는데, 장기적인 브랜드 전략에선 손해거든요. 싸구려 이미지를 굳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선택을 해나요?
“한참 고민하다 입점을 포기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그해 7~8월에 현대백화점 쪽에서 더 큰 자리를 내주더군요.”
만약 점포를 배정받지 못했다면, 결국 손해를 보지 않았을까요?
“막무가내로 버틴 건 아니었고, 나름대로 알아본 결과 백화점 쪽에는 마이너 브랜드도 필요하다는 점을 파악했습니다. 메이저 브랜드는 지방 점포에는 입점하지 않으려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마이너 처지에선 지방 점포에 입점하는 대신 서울 지역에서 점포 공간을 배정받는 나름의 파워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일종의 니치(틈새) 전략이었지요.“ 박 사장은 이런 과정을 통해 “단기 목표보다 장기적인 브랜드 빌딩(구축)이 회사의 가치 강화로 이어진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세계 곳곳의 지사를 연결한 언어평가망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어떤 고객은 (브랜드 컨설팅을 맡기면서) 가격을 깎자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매출 위주로 영업을 한다면 어떻게든 수용해야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 회사의 장기 비전을 세우고 솔루션을 찾으려면 일정한 인풋(비용)이 들어가야하거든요. 질 위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게 장기적으로 서로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외국계 기업의 경영자들을 만나면서 가끔씩 드는 의문인데, 거대한 다국적 기업의 한 갈래일 뿐이어서 경영의 독자성이나 자율성의 폭이 매우 좁은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매출 10조원을 올리는 미국 뉴욕의 인터브랜드 본사에는 200명만 근무하고 있습니다. 중앙에선 세계 곳곳의 브랜치(지사)를 숫자로만 통제합니다.” 기업의 성과를 보고 인사권을 통해 관리할 뿐 일상적인 경영 활동에선 폭넓은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거꾸로 인터브랜드라는 거대 조직에 들어 있는 데 따른 장점은 무엇인가요?
“브랜드 컨설팅이란 게 오늘은 자동차 쪽을 맡다가 내일은 은행을 담당하는 식이어서 각 산업·기업에 대한 배경 지식을 재빨리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인터브랜드 인트라넷인 ‘OUR FISH BOWL’을 통해 7천여 개의 프로젝트 사례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어항에서 고기를 낚듯 원하는 지식을 신속하게 얻을 수 있는 것이지요.” 또 인터브랜드는 세계 곳곳의 지사들을 연결한 ‘언어평가망’을 갖춰 네이밍 때 부정적인 뜻의 단어를 48시간 안에 걸러낼 수 있다. 이를 통해 예컨대 자동차 이름을 지을 때 ‘Nova’(스페인어로 ‘가지 않는다’) 같은 단어를 채택하는 실수를 원천적으로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