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배우 심은하씨는 내가 기자 일을 하면서 만난 인터뷰이 가운데 인체공학적 측면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씨네21> 창간 멤버로 일하면서 ‘한국의 배우’라는 4쪽짜리 고정 꼭지를 2주에 한 번씩 썼던 1995년의 일이다. 미혼인 20대 남자였던 난 당대 최고의 여배우를 만난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었다. 일을 핑계로 스타 배우와 서너 시간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건 일종의 ‘특혜’인지도 모른다. ‘아, 기자가 이래서 좋다는 거구나’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배우 가운데 김혜수씨 같은 이는 말을 잘한다. 대학에서 연극영화과를 전공했기 때문에 연기에 대한 이론이나 철학을 화려하게 정리하는 기술도 있다. 그에 비하면 심은하씨는 화려한 말을 구사하는 인터뷰이는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이 왜 스타가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만큼은 제대로 아는 것 같았다. 지금도 기억나는 대목. “대중이 당신에게서 느끼는 매력은 무엇일까요? 그러니까 당신 속에서 무엇을 발견하면 좋아하는 걸까요?” 내가 물었다. “나는 순진하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순수한 면이 있는데 그런 점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통찰력이 묻어나는 그의 대답이었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지만 인터뷰 역시 철저한 준비가 필수적이다.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준비를 잘 하면 인터뷰 결과도 대강 만족스러웠다. 배우가 인터뷰이인 경우 나는 다른 매체에 나온 인터뷰 기사들을 훑은 뒤 그가 출연한 드라마와 영화를 모두 챙겨봤다. 그래야 구체적인 질문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영화의 이 장면에서 이런 연기를 하는 것을 봤는데 평소 이미지와 너무 달라 깜짝 놀랐다”는 식으로 말하면 배우들은 흥이 나서 묻지도 않은 뒷얘기까지 하게 된다. ‘아, 이 기자가 나한테 이렇게까지 관심을 많이 보이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대충 생각해간 질문들만 던지면 “정말 열심히 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식의 교과서에 나오는 답변만 듣게 된다.

‘검사는 피의자를 잘 만나야 한다’(정치적인 성격이 짙은 사건의 피의자를 만나게 되면 나중에 그 영향을 받게 된다는 뜻이 강함)는 말이 있듯이 기자도 인터뷰이를 잘 만나야 기사가 잘 풀린다. 기자들이 제일로 꼽는 인터뷰이의 조건은 솔직함이 아닐까 싶다. 배우 이혜영씨와 가수 전인권씨는 그런 경우였다. 전씨는 하지 않아도 될 얘기까지 다 하는 바람에 내 마음이 다 조마조마했다. 물론 일부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의도하거나 계산해서 하는 얘기는 아니었다. 마광수 교수 역시 솔직했다. 이런 인터뷰이들은 기자가 따로 머리를 굴리느라 골치를 썩지 않아도 인터뷰가 잘 진행된다. 축구 국가대표팀 홍명보 코치처럼 스포츠 스타들도 담백한 편이다.

반면 자신이 한 말 하나하나를 꼼꼼히 뜯어보면서 인터뷰를 진행시키는 이들은 피곤하다. 이런 부류의 인터뷰이들은 머리도 좋아서 인터뷰 말미에 “인터뷰가 시작된 지 15분 정도 지났을 때 내가 이런 단어를 썼는데 이런 표현으로 바꿔주세요” 하는 식의 주문도 한다. 인터뷰를 통해 뭔가 가시적으로 얻을 것이 있으리라고 믿는 이들이 이런 행동을 보인다. 서로 머리를 굴리느라고 인터뷰 내내 긴장감을 늦출 수 없어 일하는 맛은 나지만, 다시 만나라고 하면 싫어할 이들이다.

따끈따끈한 기삿거리도 주면서 인간적인 매력도 풍기는 인터뷰이들 어디 없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