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본 아이의 주검은 잠든 인형 같았다. 엉덩이와 허벅지는 보랏빛으로 멍들었고, 이마에는 검붉은 딱지가 앉아 있었다. 변사 사건 발생보고서에는 “키 93㎝, 왜소하고 마른 체형에 타인으로부터 폭행당한 상처로 보이는 멍 자국이 있다”고 씌어 있었다. 경찰은 “며칠 전에 부검을 끝냈고, 주검은 이미 화장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난 586호 표지 이야기에 쓴 보모의 남편에게 맞아 죽은 하나(3)의 얘기다.

하나의 주검을 보면서 그동안 잊고 지냈던 4년 전 그날 일이 떠올랐다. 2002년 1월9일이었다. 그때 나는 <한겨레> 종로 라인의 수습기자였다. 매일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다음날 새벽 2시께 잠이 들었다. 몸은 고달팠고, 마음은 괴로웠고, 사람들이 무서웠다. 아침 보고를 끝내고 경찰서에 멍청하게 앉아 있는데, 선배 기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다가 의문사한 사람의 부검이 있다. 인권단체 사람들과 당장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가봐라.”

택시를 잡아타고 국과수에 도착해보니 인권실천시민연대의 간사 2명이 도착해 있었다. 그들과 함께 한창 부검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을 ‘급습’했다. 동행했던 한 간사가 부검실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자 다른 간사는 “부검 사진을 찍어야 한다”며 카메라를 빼들고 주검을 향해 뛰어들었다. 거의 동시에 부검을 진행하던 의사들과 격투가 벌어졌다.

어처구니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주검은 배를 활짝 열고 있었는데, 그 안의 내용물들이 잘게 잘려 테이블 위에 뒹굴고 있었다. 두개골을 쪼개는 데 사용하는 전기톱과 그 밖에 용도를 알 수 없는 기구들이 주검 주변에 흩어져 있었다. 죽음의 원인을 정확히 알아야겠다는 우리 편과 이런 식의 정보 공개는 있을 수 없다는 연구소 쪽의 고함과 몸싸움이 서른넷에 죽었다는 젊은 주검 앞에서 20분이 넘게 이어졌다. 동생의 죽음을 제보한 ‘형님’은 “지금 내가 못 볼 것을 보고 있구만”이라며 오열했다.

그는 동생의 배가 갈리고, 내장들이 나오고, 나온 내장들을 칼로 잘게 여미고, 머리를 톱으로 잘라 꺼내고, 팔과 다리의 근육을 가위로 째고 다시 모든 것을 몸 안에다 구겨넣고 다시 거친 대바늘로 절개된 모든 곳을 듬성듬성 꿰매는 순간을 물끄러미 지켜봤다. 부검의들은 그 한순간 한순간을 사진으로 찍어 남겼다. 그때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살다 보면 그저 모든 게 아득해지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 있다.

부검이 끝난 뒤 의사는 “신체에 구타로 보이는 외상은 없고 사망의 원인이 심근경색으로 추정되나 자세한 결과는 조직검사가 끝난 후에나 밝혀질 것이다”라는 소견을 내놨다. 모든 의혹을 한순간에 날려버리는 부검의의 자신 있는 소견에 모든 소동은 그냥 끝난 듯했다.

93cm짜리 하나의 주검도 똑같은 과정을 겪었을 것이다. 그날 일기에 “생의 괴로움이 때로 견딜 수 없이 크더라도, 삶은 계속되는 것이고, 우리는 내일이 오늘보다 더 나을 것이라고 고집스럽게 믿어야 한다”고 적었다. 그리고 조금씩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해 5월이 되자 수습 기간이 끝났고 난 <한겨레> 경제부 증권팀으로 발령났다. 증시는 그해 4월 900으로 꼭짓점을 친 뒤 520까지 떨어졌다. 어떤 종목이 왜, 얼마나 떨어졌는지를 설명하는 기사를 써대느라 1년 내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