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더기가 들끓는 장독 같은 중국의 현실을 고발하는 <추악한 중국인>
인간관계가 법을 지배하고 내분 일삼는 모습에서 한국을 떠올린다
▣ 장정일/ 소설가
중국인은 단결할 줄 모르고 내분을 일삼으며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데다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른다. 또 법의 원리가 적용돼야 할 곳에서 인간관계가 좌지우지되는 특성을 가졌으며, 중국인이 자랑하는 인정이라는 것도 아는 사람 사이에서나 작동되지, 낯선 사람들에게는 매몰찬 배제의 원리가 된다. 영성이 발달하지 못하고 사회적 책임이 방기된 중국에서 ‘바른 길’이란 부귀공명을 의미하고, 그것을 얻지 못하는 행위는 바르게 행동하지 않고 바른 길을 걷지 않은 것으로 치부된다. 이런 나라에서 민주란 “너는 민(民), 나는 주(主)”를 의미한다.
장제스 모독으로 9년간 옥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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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레이션/ 황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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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양(柏楊)의 <추악한 중국인>(창해·2005)은 중국 문화에서 배울 점은 하나도 없으며, 중국이 곧 망할 듯이 말한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예거된 중국인의 단점은 우리의 추악상이다. 그러므로 중국인이 한국인을 따라잡으려면 “10만 광년”이나 걸린다는 글귀는 빨리 잊어야 한다. 이 책을 보며 위안하는 한국인이 많을수록 21세기는 고단해진다. 오히려 ‘추악한 중국인’을 ‘추악한 한국인’으로 바꾸어 읽으면 얻는 게 생긴다. 중국인은 한국인과 같이 여러 종류의 장(醬)을 담가 먹는데, 보양은 뭐든 오래되고 케케묵은 것일수록 좋다고 믿는 중국인의 의식을 ‘장독 문화’라고 부르면서, 그 원인을 유교사상에서 찾는다. 정치와 조상숭배를 결합한 유교가 중국을 지배하면서부터, 중국 문화는 보수적이고 폐쇄적이 되어 구더기가 들끓는 장독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익이 열 배를 넘지 않으면 변법할 수 없다”는 장독 문화의 썩은 냄새를 우리는 쉬지 않고 맡는다.
1985년 대만에서 초간된 이 책은 양안(兩岸)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서로 대치하고 있는 대만과 중국에서 똑같은 책이 열화같이 읽히게 된 맥락도 흥미롭지만, 보양이라는 인물도 만만치 않게 극적이다. 장제스 숭배자였던 보양은 18살 때 국민당에 입당한 뒤 대륙이 공산당 손에 넘어가자 대만에 정착했다. 교편을 잡고 작가 생활을 겸하던 그는 언론인으로 날카로운 사회 비판 칼럼을 쓰기도 한다. 그러던 1968년, 한 신문에 미국 만화 <뽀빠이>를 연재 번역하면서 장제스 정권을 빗댄 일로 ‘간첩죄’와 ‘국기문란죄’ 등의 죄명을 덮어쓰고 12년형을 선고받는다. 화소도에서 9년간 옥살이를 하며 완성한 책이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권의 책 가운데 하나로 선정된 <맨얼굴의 중국사>(창해·2005).
우리나라에도 번역되고 영화로도 소개된 보양의 소설 <이역>(시대문학사·1991)은, 1962년 대만에서 출간돼 100만 부나 팔렸다. 대륙이 공산화되고 장제스의 국민당이 대만으로 퇴각한 뒤에도, 본토 탈환을 위해 윈난성에서 항전하던 부대가 있었다. 마지막엔 공산군에게 쫓겨 윈난성과 가까운 버마·타이·라오스 접경지대에 은거하게 된 그들은, 그곳에 본토 탈환의 거점을 세우고자 했다. 대만 정부의 외면 속에서 11년씩이나 공산군과 싸우고, 국경을 침해받았던 3국 정부군의 토벌에도 맞섰던 ‘잔여분자’의 처절한 투쟁을 기록한 <이역>의 외양은 반공 성전. 하지만 실제 인물의 수기를 옮겨놓은 이 작품에는, 장제스 정권을 불편하게 하는 생생한 육성이 깔려 있었다. 즉, 잔여분자들이 대륙과 타국에서 싸우고 있을 때, 재물욕과 권세욕에 취한 고급 장교와 권력자들은 모조리 대만행 비행기를 타고 달아났으며 그것이 현 정권이라는 것. 보양의 독방은 이때 예약됐다.
동양에 대한 서양의 날조가 오리엔탈리즘이라면, 옥시덴탈리즘은 서양에 대한 동양의 날조를 일컫는다. <옥시덴탈리즘>(강·2001)이란 책을 쓴 샤오메이 천은 그것을 ‘관변’과 ‘반관변’으로 나누었다. 관변 옥시덴탈리즘은 국민을 지도하는 정권이나 체제의 필요에 따라 서구를 부정적으로 채색한다. 서구 민주주의를 방임과 비효율이라고 명명하면서 ‘한국적 민주주의’를 제시하거나(박정희), 서구 공산주의를 모조리 수정주의로 폄하하면서 ‘주체사상’을 내세우는(김일성) 작업들이 여기에 속한다. 반대로 서구의 합리주의와 민주주의를 이상화하면서 자국의 정치적 후진성을 비판하는 경우가 반관변 옥시덴탈리즘이다.
아편전쟁이 1천 년이나 앞서 일어나 “서방의 현대화된 문명이 낡은 중국으로 좀더 일찍 치고 들어왔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중국이 깨어나기 위해서는 서구의 인권·법치·자유·민주를 빨리 도입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 책은, 확실한 반관변 옥시덴탈리즘 텍스트다. 80년대 중반, 청년·학생들에게 문화대혁명의 악몽을 진단하는 교서 노릇을 수행했던 이 책은 한때 중국에서 금서가 되었으나, 오랫동안의 묵인을 지나 2004년부터는 정식 출간이 허용됐다. 중국 공산당의 맷집이 이 정도는 수용할 정도가 된 것일까? 아니면 반관변 옥시덴탈리즘마저 중국 국민의 자아를 교화하기 위해 동원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