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그러니까 1992년, 바르셀로나와 처음 만났다.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를 낳은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통해서였다. 당시 바르셀로나 올림픽 분위기를 전하는 단신 중 하나는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바르셀로나 거리에 스페인 국기는 드물고, 카탈로니아 깃발만 나부낀다는 기사였다(바르셀로나는 카탈로니아 지역의 중심도시다). 아니 올림픽 같은 거국적인 행사에 지역 깃발만 나부낀다니, 서울 올림픽은 곧 한국 올림픽이라는 공식을 추호도 의심해본 적이 없는 동방의 청년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일전 못지 않은 격렬함, 엘 클라시코

얼마 전 위성방송에서 <스패니시 아파트먼트>라는 영화를 봤다. 유럽의 여러 나라 대학생들이 바르셀로나의 아파트에 모여 살면서 아옹다옹하다가 화기애애해진다는 이야기였다. 카탈로니아의 지역성을 드러내는 장면도 있었다. 외국인 유학생이 카탈로니아어로 강의하는 교수에게 “왜 스페인어로 않느냐”고 따지자, 교수는 “여기는 마드리드가 아니라 바르셀로나”라면서 “스페인어로 강의를 듣고 싶으면 마드리드로 가라”고 말한다.

음… 스페인어와 카탈로니아어가 좀 다른가 보군, 뭐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프랑코 독재 시절, FC 바르셀로나의 이름이 카스티아식 어순인 CF 바르셀로나로 강제 개명당했다는 이야기도 겹쳐졌다(카스티아는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가 위치한 지역이다).

지구상의 라이벌전 중에서 단 하나의 경기만 보라면, 나는 ‘엘 클라시코’ 더비를 선택하겠다.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가 충돌하는 엘 클라시코 더비는 한-일전 못지않게 치열하다. 한-일전처럼 가해와 피해의 역사까지 덧붙여져 단순한 라이벌전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레알 마드리드가 일본, FC 바르셀로나가 한국이라면 지나친 비유지만, 가해와 피해의 역사가 그렇게 겹치는 것도 사실이다.

마드리드의 중앙권력은 바르셀로나의 지역주의를 억압했다. 1930년대 스페인 내전을 거칠게 지역으로 요약하면, 마드리드 왕당파와 바르셀로나의 공화파의 충돌이었다. 스페인에서 가장 빠르게 산업화된 지역인 바르셀로나 일대의 카탈로니아 지역은 평등을 요구하는 공화파의 근거지였다. 평등의 땅을 지키려는 세계의 의용군들이 스페인으로 몰려왔지만, 스페인 내전은 공화파의 패배로 끝났다. 그리고 카탈로니아인들에게 남은 것은 그들의 축구팀, FC 바르셀로나뿐이었다. 1970년대 프랑코 독재가 끝날 때까지, FC 바르셀로나는 레알 마드리드에 맞서 ‘대리전’을 치렀다. 아직도 엘 클라시코 더비에는 전쟁 같은 열기가 남아 있다. 바르셀로나의 영웅 피구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을 때 팬들이 왜 그토록 분노했는지, 레알 마드리드 출신의 에토오가 바르셀로나로 왔을 때 팬들이 왜 ‘고맙다’는 펼침막을 들고 수선을 떨었는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FC 바르셀로나는 시민구단이다. 10만 명의 소시오(Socio)들이 내는 자금으로 운영된다. 그래서 FC 바르셀로나는 명실공히 지역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시민들이 십시일반 모은 자금으로 바르셀로나는 12만 명을 수용하는, 유럽에서 가장 웅장한 구장인 누캄프를 세웠다. 카탈로니아인들의 자존심은 바르셀로나 선수들의 가슴에 상업광고가 들어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치열한 논란 끝에 유니폼에 스폰서 광고를 넣는 것을 허용하기로 했지만, 아직 바르셀로나 선수들의 가슴에는 오직 FC 바르셀로나의 로고만이 아로새겨져 있다. 카탈로니아의 국제주의는 바르셀로나의 선수 구성으로도 드러난다. 바르셀로나는 언제나 다국적 선수로 구성됐고, 바르셀로나 최고의 영웅 중 한 명은 네덜란드의 요한 크루이프다. 크루이프는 바르셀로나 선수로 프리메라리가 우승을, 감독으로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일구어냈다. 현재 감독인 레이카르트까지, 바르셀로나의 오렌지 커넥션은 유구하다. 한편으로 카탈로니아 지역주의에는 잘사는 지역의 지역주의라는 복잡한 성격도 있다.

호나우딩요와 프리메라리가 챔피언

너도나도 오늘의 FC 바르셀로나를 칭송한다. 호나우딩요의 FC 바르셀로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기를 펼치는 클럽으로 손색이 없다. 2000년대 초반은 FC 바르셀로나에 암흑의 시기에 가까웠다. 레알 마드리드가 지구방위대를 구성해 리그 타이틀을 석권하는 동안 FC 바르셀로나는 빈번한 감독 교체에 시달렸다. 호나우딩요의 매직은 FC 바르셀로나의 어둠을 희망으로 바꾸어놓았다. 호나우딩요의 FC 바르셀로나는 지난해 프리메라리가 챔피언을 거머쥐었고, 올해도 우승은 따놓은 당상이다. 무엇보다 FC 바르셀로나는 15년 만에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다가가고 있다. 프리메라리가에서는 레알 마드리드에 버금가는 성적을 거둬온 FC 바르셀로나지만, 챔피언스리그 우승은 91~92 시즌 단 한 번뿐이었다. 레알 마드리드가 9회를 우승해 역대 최다 우승 클럽인 것에 견줘 초라한 성적이다. 바르셀로나는 챔피언스리그 4강 첫 경기에서 AC 밀란에 1-0 승리를 거두었다. FC 바르셀로나는 아름다운 플레이로 멋진 타이틀을 거머질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그나저나 조지 오웰이 스페인 내전에 민병대원으로 참가한 뒤 썼다는 <카탈로니아 찬가>나 빨리 읽어야 할 텐데, 이렇게 게을러서야. 그때 그곳, 카탈로니아에서는 불가능한 희망처럼 보이는 아나키즘이 정말로 실현되고 있었다지 아마.

추신. 외국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Where are you from?”이다. 우리는 ‘자동빵’으로 “Korea”라고 답한다. “Seoul” “Busan”이라고 답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물론 외국인들도 대개 국적을 먼저 말하지만, 도시를 내세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우리가 도시를 상상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국가만 있고, 지역은 없기 때문이 아닐까. 따지고 보면, 내가 생활하는 곳은 나라가 아니라 도시인데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