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칼럼 > 우종영 칼럼 목록 > 내용   2005년05월11일 제559호
봄의 끝자락, 진달래를 찾아서

바위 병풍이 서늘한 기운 드리우는 대구 비슬산…초록색 짙어지는 자연휴양림을 따라

▣ 사진 · 글 우종영/ 야생화 사진 작가 · 나무 전문가

남녘에서 깨어난 봄꽃들이 산을 넘지 못하고 들판을 가로질러 북으로 달음질칠 때 산을 오르는 꽃들은 가쁜 숨을 고르느라 쉬엄쉬엄 보챔이 없이 여유롭게 핀다. 차창 밖에는 개나리, 진달래꽃 이미 찾을 길 없는데 낮은 구릉엔 배꽃이 눈부시고 산은 어느덧 연초록색 잎새들이 앞다투어 산을 오르는 모습이 성장을 한 미소녀의 모습으로 다가선다.

계곡에는 4월 말에도 얼음들이

봄의 끄트머리에는 높은 산일수록 좋다. 진달래가 페르시아의 융단처럼 곱게 내려앉은 비슬산(琵瑟山). 산꼭대기 바위의 모습이 신선이 거문고를 타는 모습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나무로 덮인 산이라 하여 포산(苞山)이라고도 불리는 겹산이다. 팔공산과 함께 대구를 빙 둘러싸고 있어 여름에 찜통더위를 만들지만 골짜기마다 서늘한 미기후를 이루기에 대구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기도 한다.


△ 비슬산의 진달래가 전국에도 몇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소문이 산꾼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톱바위 밑에 있는 진달래밭.

구마고속도로의 현풍나들목을 빠져나와 좌회전하면 ‘비슬산 자연휴양림 7.6km’라는 팻말이 나온다. 4번 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향하면 산의 웅장한 자태가 한눈에 들어온다. 말안장 같은 재를 가운데 두고 왼쪽 봉우리가 비슬산 정상인 대견봉이고 오른쪽에 뾰족한 봉우리가 조화봉이다. 길가에는 경관작물(景觀作物)인 유채와 자운영을 심어 봄 분위기를 돋우고 이어 유가사 가는 길과 자연휴양림의 길이 갈라진다. 예의 그러하듯 오를 때는 경사가 완만한 계곡을 끼고 오르고 능선을 타고 내려오는 식의 코스를 잡는 것이 산행에 무리도 없고 다양한 식생을 볼 수 있는 이점이 있기에 자연휴양림 코스를 택하기로 했다.

휴양림 가는 길의 끝 왼쪽은 무료 주차장이고 오른쪽은 하루 주차료 2천원을 내는 유료 주차장이다. 모두들 무료 주차장을 이용할 것 같지만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무료 주차장은 능선 밑에 위치해 있어 주차 뒤 도로 걸어 올라와야 하는 불편이 있기 때문이다. 주차장 주변에는 식당과 매점이 있어 가벼운 행동식을 구입할 수 있다.

산행 들머리는 관기봉에서 흘러내린 지능선을 끼고 들어간다. 사면을 따라가는 내리막길에는 신갈나무 잎이 아직 굳지 않은 채 바람에 너울거린다. 다리를 건너 휴양림 오르는 길에는 참꽃축제의 뒤끝이라 어수선하고 계곡에는 4월 말인데도 얼음들이 북사면에 덮여 있다. 그만큼 이곳의 미기후가 주변보다 온도가 낮다는 증거다.

휴양림 관리사무소를 지나면 통나무집들이 너덜겅 위에 지어져 있다. 비슬산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위덩어리들이 계곡의 사면을 메우고 있는데 이곳의 바위는 세 가지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암괴류(巖塊流·Block stream)와 애추(崖錐·Talus), 그리고 토르(Tor)다.

암괴류는 휴양림 계곡에서 시작돼 거의 대견사지 밑까지 이어져 있는 농짝만 한 바위덩어리들인데 마지막 빙하기 때 흘러가다 멈춘 것으로 가히 돌의 바다라 할 만하다. 바위들이 모가 나지 않아 커다란 호박돌을 연상케 한다. 한편 애추는 암괴류보다는 크기가 작고 모서리에 각이 살아 있다. 순수 우리말로는 너덜지대 또는 너덜겅이라 하며 계룡산의 은선폭포 위쪽이나 노추산의 너덜이 유명하다. 토르는 산 위에 얹힌 큰 바위덩어리들이며 수락산 정상이나 도봉산의 오봉, 설악산의 울산바위 등이 이에 속하고 대견사지 주변에서도 볼 수 있다.

바위 밑에서 생명을 피우는 나무들

비슬산은 마치 바위들의 전시장 같지만 바위로 인해 등산에 어려움이 있거나 위험한 곳은 없다. 휴양림길 계곡 옆의 정자에는 참느릅나무가 심어져 있다. 참느릅나무는 9월에 꽃이 피고 10월에 열매가 익기 때문에 느릅나무와 구별이 되고 열매는 둥그렇고 씨앗은 한복판에 위치한다. 겨울에도 열매가 달려 있어 멀리서도 식별하기가 쉽고 경기도 이남의 냇가 근처나 서해안의 섬에서도 많이 자란다.


비슬산의 높이는 해발 1083,6m이고 이곳 자연휴양림의 높이는 600m 정도. 2km의 산행 길에 표고차 400m이니 크게 부담은 없는 산이다. 길가에는 줄딸기꽃이 가지 위에 나비 앉듯 사뿐히 펴 있고 왼쪽 사면에는 애추가 나타난다. 경사가 30도 이상 되는 비탈에 빼곡히 들어찬 돌무더기에는 누군가 소원을 빌며 쌓아놓은 돌탑들이 수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러나 이런 생명이 빌붙지 못할 만큼 험한 곳에도 조그만 나무들이 푸릇푸릇 잎을 내고 꽃을 피웠다. 건조에 강한 생강나무, 말발도리, 병꽃나무는 돌 틈에 쌓인 조그만 유기물들에 희망을 걸고 신산스런 삶을 살아가고 있고, 물기를 좋아하는 물참대, 고광나무, 산딸기는 바위 밑의 습한 곳을 용케도 알아내었나 보다. 커다란 바위 밑 어둠침침한 곳에 떨어진 씨앗이 빛을 찾아 긴 어둠의 터널을 뚫고 성공한 모습을 보면 우리 인생살이 또한 역경을 딛고 성공한 자의 얼굴에서나 느낄 수 있는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

길옆에는 비목나무와 산벚나무가 꽃을 피웠다. 비목나무는 같은 녹나뭇과의 털조장나무처럼 뾰족한 잎 밑에 노랑꽃이 털목도리처럼 둘러 나는데 암그루 수그루가 따로다. 암나무의 꽃은 암술의 끝부분이 약간 굵어진 암술대에 달리고 수나무의 꽃은 아홉개의 수술이 자잘하게 붙어 있다. 이어서 오른쪽으로 암괴의 강이 나온다. 입구에는 이를 관찰하는 나무 데크를 설치해서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암괴류 사이에도 섬처럼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양옆으로는 소나무들이 자라고 그 한가운데 외로이 자라는 나무는 나래회나무 같다. 그런데 왜 같다라는 표현을 했느냐. 지금 시기에는 정확한 구분이 어렵기 때문이다. 여름이 지나며 익는 열매에 4개의 날개가 길게 달리면 나래회나무이고 날개가 짧으면 버들회나무이기 때문이다.

휴양림의 산막이 끝나면 넓은 길도 끝나고 산길이 시작된다. 알록달록한 표지기를 따라 들어가면 양쪽으로 암괴가 따라 이어지고 그 중간에 등산로는 흙길이다. 암괴류 밑에는 복류(伏流)하는 물소리가 끊어질 듯 이어지고 소나무 숲 사이로는 간간이 진달래가 피어 나그네의 시선을 멎게 한다.

산불로 울창한 수림 사라져

4월과 5월 어느 산엘 가더라도 예쁘지 않은 산이 어디 있으랴만 천리 먼 길 이곳을 찾은 이유는 이 산만이 갖고 있는 매력 때문이다. 팔공산의 명성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고 사방으로 산군을 거느리고 있어 그 웅장한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기에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산이다. 언제부터인가 비슬산의 진달래가 전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소문이 산꾼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그곳의 바위도 다른 곳에서 보지 못한 형태이기에 더욱 마음이 끌리는 곳이었다.


△ 애추 위에서 자라는 말발도리. 강인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비슬산이 원래는 산에 나무가 많아 포산이라는 이름도 갖고 있는 것을 보면 울창한 수림을 자랑했을 터인데 어찌하여 억새와 진달래의 산이 되었을까. 궁금증은 자연휴양림의 관리 담당이며 그곳에서 제일 오래 근무한 김수현씨에 의해 풀리어갔다. 산을 오르며 보면 알겠지만 그리 오래된 큰 나무가 없고 곳곳에서 조림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산불이 난 것이다. 주민들 표현에 따르면 사흘 밤낮으로 연기를 토해내며 타는데 지금처럼 헬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워낙 큰 산이라 사람이 들어가 끌 수도 없어 그냥 두고 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30여년이 흐르고 비슬산은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었다. 요즘처럼 산불이 자주 일어나고 대형화하는 추세에 옛 산불 지역을 돌아보는 것도 바람직하다 하겠다.

커다란 돌틈 사이로 난 길을 밟으면 쿵쿵 울린다. 흙은 별로 없고 순수 유기물과 나무뿌리가 엉켜 있기 때문이다. 오르는 길은 양쪽으로 바위의 강을 끼고 가는 듯 왼쪽과 오른쪽을 번갈아보며 오르게 되어 있고 주변에는 신갈나무와 당단풍나무, 굴참나무가 감히 암괴류의 틈을 비집지 못하고 빈 공간을 보고 안타까운 듯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등산로 옆에는 어느 산이나 그렇듯 국수나무와 병꽃나무가 길을 인도한다. 이 두 나무는 부지런한 나무들이다. 겨울에 보면 물기라고는 하나 없이 깡마르고 수피는 거칠기 그지없이 죽은 나무들인 양 겨울잠을 자다가도 봄바람 냄새에 누구보다 먼저 코를 벌름거렸는지 일찍 내민 잎 사이에 꽃망울들이 앙증맞다.


△ 멀리 낙동강이 보이는 대견사지. 농짝만 한 바위덩어리들이 휴양림 계곡에서 시작돼 거의 대견사지 밑까지 이어져 있다.

큰키나무들이 크지 못하는 이유

경사가 조금씩 가팔라지면 왼쪽 암괴류 사이로 대견사지의 탑이 올려다보인다. 해발 900m 지점이다. 이곳부터는 건조에 강한 쇠물푸레나무, 팥배나무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잠시 암괴류 사이의 식생을 살펴보러 들어가보니 거기 또한 무생물의 전유공간이 아니라 그 어느 곳에도 우린 살 수 있다는 녹색의 의지가 듬쑥하니 전해져온다. 붉나무, 생강나무, 당단풍나무, 신갈나무가 바위 밑 깊숙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나래회나무, 말발도리, 병꽃나무는 한줌의 유기물이 삶의 터전이 되었다. 산수국은 그나마 바위 밑 습한 곳에 웅크리고 있으니 안전가옥이 따로 없다. 그곳에 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씨앗들이 도전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하다.

이곳을 오르며 관찰력이 있는 사람은 나무들의 모습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할 것이다. 휴양림의 애추(너덜) 밑에서 자란 다릅나무, 등산로 입구에 있던 신갈나무, 암괴류 사이에서 자란 피나무. 이들의 공통점은 곧고 크게 자라는 큰키나무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큰키나무들이 곧지도 크지도 않게 자라고 줄기가 밑에서 여러 가지로 갈라져 마치 떨기나무인 양 다보록하다. 그 이유 몇 가지를 추론해보면 이렇다. 첫째는 싹이 트고 보니 주변에 나무들이 없어 경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쓸데없이 키를 키워봐야 바람만 타니까. 둘째는 여름철 바위가 내뿜는 열기다. 나무줄기가 고온에 노출되면 화상(볕데기)을 입기 때문에 줄기의 아랫부분을 가려야 한다. 셋째는 부적당한 토양이다. 바위 밑은 유기물이 없는 척박한 곳이기 때문에 남들처럼 몸체를 키울 수 없다. 이상은 내 개인적인 견해다. 누구든 다른 의견을 제시할 수 있지만 어쨌든 상상과 추론은 재미있는 일이다.

암괴류가 끝나갈 즈음이면 함박꽃나무, 노린재나무, 상수리나무가 나타나고 찔레밭에 둘러싸인 화장실이 나온다. 현대식 위생 화장실이 놀랍기도 하지만 더욱 생경스러운 것은 포장도로가 보인다는 것이다. 임도의 끝이다. 터벅터벅 대견사지로 간다. 이곳에선 토르를 만지고 볼 수 있다. 바위 사이로는 진달래가 곱게 물들고 아스라이 솟아 있던 탑이 지척에 있다. 절터치고는 꽤 높은 곳에 있다. 치악산 상원사도 높지만 이곳은 조화봉의 날 등에 겨우 바위 한겹을 등에 업고 있는 형태다. 낙동강 물이 유유히 흐르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고 부처바위, 곰바위, 거북바위, 칼바위 같은 기묘한 형상의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 비목나무의 수꽃.

대견봉 가는 길, 봄날은 간다

이제 대견사지 너머 30만평에 이르는 드넓은 곳에 오르면 30여년 전에 타오르던 불꽃이 붉은 꽃이 되어 그날을 재현하듯 타오르고 있다. 이곳 관리소에서는 4월17일부터 24일까지 참꽃축제를 열었지만 매년 4월 말경이 가장 좋다. 모두들 할 말을 잃고 쳐다본다. 한라산의 털진달래와 같은 순도 높은 군락이다. 간간이 다복한 소나무가 있어 시선을 거두기에도 좋다. 이곳에서 대견봉까지는 4km. 안온한 능선길이다. 힐끗힐끗 뒤를 돌아보며 가는 풍경도 좋지만 이 시기에 부르는 누군가의 국민가요 소리도 듣기 좋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입에 물고 흥얼흥얼 봄날은 간다. 그렇다. 연분홍 진달래는 봄날의 끄트머리에 핀다. 여름이 도적처럼 기다리고 있는 마지막 날에.


<산행 길잡이>


제1코스 : 주차장 → 휴양림 → 대견사지 → 휴양림(5.6km)

제2코스 :주차장 → 휴양림 → 대견사지 → 대견봉 → 유가사(10.7km)

제3코스 : 주차장 → 휴양림 → 대견사지 → 사거리 → 유가사(8.8km)

제4코스 : 주차장 → 휴양림 → 대견사지 → 임도 → 휴양림(약 6.5km)

<주변 볼거리>

비슬산 북쪽에 있는 용연사의 석조계단(보물 제529호)

<먹을 데>

현풍할매곰탕

<잘 데>

자연휴양림 : 통나무집, 콘도형, 청소년수련장, 텐트장 등 다양한 시설이 있으며 여름 피서철에 이용할 경우 3개월 전 예약을 해야 함. 텐트장은 예약 없이 이용가능(예약문의 053-614-5481).

<교통>

자가용 : 구마고속도로 현풍나들목, 좌회전 4번 도로 10여분 거리

대중교통 : 주말에는 대구에서 601번 직행, 평일에는 현풍에서 하루 6회.

안내문의 : 대구 달성군청 홈페이지(www.dalseong.daegu.kr)

문화관광 → 관광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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