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산 기자의 학교!]
서울 강남 학원 특별단속 좌충우돌 동행기… 사교육 거품 잠재우려면 솜방망이 대신 칼이 필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강남 학원단속의 요지경 세상. 고액 개인과외를 잡기 위해 밤새 숨바꼭질을 하고 채근할 때마다 고무줄처럼 느는 수강료에 허탈해했다. 부동산 거품보다 무서운 사교육 거품을 누가 잡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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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에 넌더리가 났다”고 말하는 한 탈학교 학생은 학생 수가 2천~3천명을 헤아리는, 서울 강동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학원에 다녔다. 인근 지역의 학생들은 모두 학교 수업시간에 밀린 잠을 보충하고 이 학원에서 ‘교육’을 받았다. 이건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학원 수업은 오후 6시에 시작해, 자율학습까지 포함하면 새벽 1시까지 이어졌다. 이것도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이 학원은 학기 시작부터 엘리트반과 일반반을 가르고 각 반의 등급을 또 세분화해 학생들을 경쟁시켰다. 이건 그럭저럭 견딜 만하지 않았다. 모두들 엘리트반에 들어가기 위해, 또 엘리트반에서도 최고반에 오르기 위해 강사와 학부모들을 관중으로 둔 ‘닭싸움’을 벌였다. 고1 9월에 시험을 쳐서 대망의 최고반에 오른 그는 이 ‘닭짓’을 그만두기로 했다.

△ 대치동의 한 과외방을 점검하는 단속반원들. 이곳의 수강료는 추궁할 때마다 점점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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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과의 전쟁, 실패뿐일까
우리 사회에서 더는 눈뜨고 봐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사교육 열기다. 학원들은 법망을 교묘히 피해 변칙 영업을 하면서 학부모들의 욕망을 부추겼다. 오래 전부터 단속이 뜨면 잠시 학원 불을 꺼놓는 풍경이 계속돼왔다. 상상해보라. 어둠 속에서 숨죽이다 ‘경계경보’가 해제되면 문제집을 꺼내는 아이들을. 우리는 이런 야만적인 ‘등화관제’를 교육이라 부른다. 그간 이루어진 단속은 처벌 규정의 미비나 인력 부족이라는 이유로 솜방망이에 지나지 않았다. 정부가 그 ‘솜방망이’라도 꺼낼라치면 보수언론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다.
지난해 11월24일부터 시작된 서울시 교육청의 강남지역 학원 특별단속도 예상된 수순을 따랐다. 교육청이 ‘전쟁’이라는 말을 쓸 정도로 전례 없는 의욕을 보였으나 예상보다 초라한 실적과 함께 “단속하느라 쓴 돈이 아깝다”는 비아냥까지 흘러나왔다. 역시 ‘학원과의 전쟁’이란 패배를 예정한 것일까. 이 전쟁의 진실을 들여다보기 위해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불법과외 추방을 위한 강남지역 학원 특별단속본부’(아래 단속본부)를 찾았다.
지난해 12월18일 목요일 오후 5시, 단속반 투입 준비로 분주한 단속본부 사무실. 동행하기로 한 4반 2조 단속원들이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이날은 불법 개인과외 강사들의 ‘집결지’로 유명한 오피스텔을 단속할 예정이었다. 2조는 먼저 금전출납부조차 제대로 만들어놓지 않은 대치동의 한 자그마한 학원을 점검하고 서둘러 대청역 부근의 오피스텔로 향했다.

△ 대치동 사거리의 한 수학 교습소 입구. 단속반원이 들어가려 하자 먼저 다른 팀이 다녀갔다고 짜증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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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반에 참여한 시민단체 회원들의 활동은 꽤 인상적이었다. 대부분 강남지역 학부모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강남 학원가 사정에 밝을 뿐 아니라 학부모로 가장해 정보를 얻어내기도 쉬웠다. 대치동의 한 초등학교 학부모회장이라는 이미현(40)씨는 단속 업무에 재미를 붙인 모습이었다. 이날 단속할 오피스텔도 이씨가 공을 들인 곳이다. 밤늦게 교습 받으러 들어오는 학생들을 따라붙어 3집 정도는 이미 확인을 한 상태다. 이런 곳은 한 과목에 100만원이 넘고, 5~6명 그룹을 짜서 1천만원, 500만원 등으로 단가를 제시하기도 한단다.
이씨는 “오늘 단속 떴니? 오피스텔 문이 잠겼던데?”라고 휴대전화로 통화하는 학생을 목격하고 호수를 파악해놓았다. 뿐만 아니라 학부모를 가장해 근처 슈퍼마켓 주인에게 “이 오피스텔에 과외선생들 엄청나게 많다”는 말을 들었다. 그 주인은 “원한다면 자신이 선생을 소개시켜줄 수도 있다”고 ‘흥정’을 붙이기도 했다.
올 겨울 들어 가장 춥다던 날, 이 오피스텔에서 벌인 ‘술래잡기’는 차라리 한편의 비극이었다. 대청역 부근에서 4개 조가 모두 모여 ‘전략’을 논의할 때까지는 뭔가 일이 될 것 같은 분위기. 한 학부모는 “나 떨려”라며 상기된 표정까지 지었다. 그러나 이미 사전조사를 마친 3개 동은 불이 꺼지고 아무런 인기척도 나지 않았다. 분명 전날까지 도란도란 수업 소리가 들리던 곳이 쥐죽은 듯 조용했다. 누군가의 ‘통보’가 있었음이 분명했다.
오피스텔의 슬픈 술래잡기
단속반원들의 말에 따르면 오피스텔 수위들이 모니터를 통해 엘리베이터를 오르내리는 단속반원들을 확인하고 교습자에게 제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불시 단속으로 모두 들통이 나버리면 오피스텔 입주자들이 철수해 ‘장사’에 큰 지장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불 꺼진 골방에 ‘피신’한 교습자들은 단속 기간 동안 <안네의 일기>라도 쓰는 걸까.

△ 강남에 있는 한 종합학원의 텅 빈 교실. 수능이 끝난 뒤 단속이 시작돼 고3을 대상으로 하는 보습학원은 대부분 한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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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반은 간신히 수업을 진행하고 있던 호를 발견했지만 “자꾸 괴롭히지 말라”는 강사의 고함소리에 쫓겨나와야 했다. 이미 교육청에 신고가 돼 있는 곳이었다. 그렇다고 쉽게 철수할 수는 없는 일. 단속 반원들은 몇명씩 조를 나눠 각 층을 돌며 문고리에 귀를 대고 학생들 목소리가 들리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26층 계단에서 이씨는 잡담을 나누고 있는 학생 2명을 발견했다. “너희 공부하니?” “수업 들어요.” “몇호야?” “803호요.” 갑자기 화색이 도는 이씨의 얼굴. 두명의 학부모는 26층에서 학생들을 감시하고 나머지 단속반원들은 7층에서 대기하다 학생들이 803호로 들어가는 순간을 노리기로 했다.
학생들의 대화는 길고 길었다. 7층에서 단속반원들과 얘기를 나누며 1시간여의 지루함을 달랬다. 공립학교에서 근무하다 차출됐다는 한 공무원은 원래 단속업무에 집중해야 하지만 학교 일이 너무 바빠서 낮에는 학교로, 밤에는 거리로 뛰어다닌다고 했다. 단속이 끝나고 본부에 돌아가 보고를 마치면 밤 12시에서 새벽 2시에 퇴근하게 된다. 힘들지 않냐고 묻자 “힘들기보다는 졸려 죽겠어요”라며 7층 복도의 비상등처럼 눈을 껌벅였다.
결론은 예상한 대로였다. 26층에서 채근을 받고 내려간 학생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까지 내려가 홀연히 사라졌다. 학생들은 단속반원들보다 노련하게 상황에 ‘대처’했다. 마지막으로 문제의 803호를 찾아 벨을 누르고 문을 두드렸으나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한 학부모가 “선생님, 애들 때문에 왔어요”라고 간절한 목소리로 외쳤건만. 강사도, 오피스텔 관계자도, 학생들도 모두 ‘단련된’ 상황에서 불법과외 한건 잡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밤 11시 단속반원들이 떠난 뒤 라면 한 그릇으로 늦은 저녁을 때우고 나오자, 크리스마스를 앞둔 거리마다 불빛이 찬란했다. 갑자기 이 요지경 같은 세상이 무서워졌다.
고무줄처럼 수강료는 늘어나고…
12월23일 단속본부는 1반으로 교체돼 있었다. 이날은 대한민국 사교육의 ‘메카’라는 대치동 사거리를 점검했다. 중간 규모의 한 보습학원에 들어서자마자 수강료부터 물어봤다. 한 과목당 월 10만원. 한 학부모가 중얼거렸다. “아, 강북도 20만~30만원은 될 텐데.” 이 수수께끼를 또 어떻게 풀 것인가. 수강료 영수증을 요구하자 세무서에서 가져갔다며 신용카드 영수증만 들고 왔다. 요즘 강남지역 학원에 세무조사까지 겹치다 보니 웬만한 서류는 세무조사를 핑계로 잘 제시하지 않는다. 신용카드 영수증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 과목을 여러 강좌로 나눠놓은 것이 분명하다.
대부분의 학원이 실제 신고액보다 영수증상으로 20~30%를 더 받지만, 이 환상적인 ‘나눔의 기술’을 고려하면 훨씬 액수가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단속은 서류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원장님 기가 막히게 계산 딱딱 해놓으셨네.” 한 단속반원의 말처럼 원장은 능수능란했다. “아휴, 죽겠어요. 강남에서 학원하는 게 죄인지…. 우린 이제 사업할 마음도 안 나요.” 이런 엄살을 떨어가며 단속반원의 지적마다 변명을 늘어놓았다. 한 강사의 해임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하자 “오늘 해임 신고를 하러 갔는데 교육청에서 내일 하라고 했다”고 둘러대는 식이다. 교육청에 내지 않은 해임 신고서까지 만들어놓은 상태다. 수강료 과다 징수와 해임 강사 미신고로 벌점 20점. 대충 무난하게 치렀다는 표정이다.
점검 도중 한 학부모의 휴대전화로 전화가 왔다. 제보자를 통해 연락이 닿은 고액 개인과외 교습자이다. 전화번호를 보니, 강남이 아니라 경기도 분당이었다. 강남 학원 단속 기간에 고액과외가 경기도 인근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소문은 사실이었다.
공교육의 학원화는 대안이 아니다
다시 한 영어 과외방으로 발길을 옮겼다. 수강료를 묻자 대뜸 “원래 10만원으로 신고했는데 그냥 15만원으로 해주세요”라고 말한다. 영수증을 요구하자 학생 규모가 작아 영수증은 써주지 않는다며 ‘버티기 작전’으로 나왔다. 마침 한 학생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단속반원이 다가가자 “유도심문하지 마세요”라고 다급하게 외치더니 학생에게 “이분들이 물어도 대답하지 마라”라고 타이른다. 참으로 훌륭한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진실을 말해주세요.” “그럼 20만원으로 합시다.”
단속반의 학부모들도 혀를 내두를 입심을 가졌다. 서울대 나온 선생님이라 실력도 뛰어나고 인품도 좋은데, 그런 강사가 10만원밖에 안 되면 당장 우리 애 보내겠다며 명함까지 받았다. 시간은 가고 한숨은 나오고…. 집요하게 학생들 명단과 전화번호를 요구하자 “리딩 2시간, 일주일에 두번 해서 25만원”이라는 답이 나왔다. 여기서 리스닝을 더하면 35만원. 낙찰이었다. “여기는 학생당 100만원은 할 거야.” 못내 아쉬운 학부모의 중얼거림이 여운으로 남았다. 10만원 → 15만원 → 20만원 → 35만원으로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수강료는 신기하고 놀라웠다.
이곳에서 영어를 배우는 초등학교 5~6학년 학생들은 대학생들도 보는 토플 교재로 공부한다. 외국에서 2~3년 살다온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단속반원이 나간 뒤에 강사에게 학부모들의 직업을 슬쩍 물어보니 “반이 의사이고, 그 다음으로 법조인이 많고, 나머지는 자영업자”라고 대답했다. 전국 최상위 클래스의 ‘귀공자’들이 집결하는 곳이다. 35만원이라….
이번 단속도 본질적인 한계가 있었다. 수능이 끝난 시점에서 기간을 예고하고 실시했기 때문에 영리한 학원들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놓은 상태였다. 노련하지 않은 일부 작은 학원들만 집중 공략을 당했다. 불법 개인과외 교습자들도 순순히 단속에 응한 사람들이 더 큰 피해를 당했다. 불법 고액개인과외가 아니면, 처벌도 벌점이나 소액의 벌금에 그친다. 단속 기간이 끝나면 다시 대형 학원이 새벽까지 불을 밝힐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렇다고 단속 자체가 불필요한 것일까.
단속본부 사무실에서 처음 맞닥뜨린 것은 관계자들의 ‘하소연’이었다. 4반 반장인 조영권 사무관은 “불법과외도 단속을 피해갈 수 있는 여지가 너무 많다”고 입을 열었다. 불법과외의 심증이 간다 해도 본인이 적극적으로 조사에 응하지 않으면 단속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강완교 본부장은 “학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이 계속 규제를 풀어주는 방향으로 개정됐다. 개인과외 교습자도 신고만 하면 영업을 막을 도리가 없다. 강력한 법을 만들어 사교육을 제어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무기’도 없이 나선 단속을 흠씬 두들겨패는 처사에 억울함을 느끼는 표정들이다.
애꿎은 학원을 때려잡지 말고 공교육을 강화하라는 보수 언론의 주장은 지당하지 않다. 공교육이 아무리 몸부림친다 해도, 점수 올리는 데에야 상업 논리로 무장한 학원을 따라갈 재간이 없다. 게다가 보수 언론의 준엄한 꾸지람 끝에는 자립형 사립고와 특목고 증설이 따라붙는다.
입시열풍의 진원지
학원은 이제 입시 열풍에 편승해 이윤을 챙기는 정도가 아니라, 입시 열풍을 앞장서 이끌고 있다. 진보적 교육단체들은 일시적인 특별단속 대신, 고발창구를 개설해서 시민단체들과 함께 지속적인 단속을 펼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공교육 개혁도 학원과 경쟁하는 방식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많다. 전교조 송원재 대변인은 “공교육이 부실화됐기 때문에 사교육이 팽창하는 것이 아니다. 원인과 결과가 거꾸로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까지 공교육 내실화 방안은 보충수업 양성화 등 학교를 학원처럼 만드는 방식이었다”고 지적했다. 공교육은 획일주의 교육을 탈피해 학생의 자율성과 창의력을 살리는 방식으로 개혁하고, 이런 개혁을 가로막는 사교육을 철저히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동산 거품보다 더 무서운 사교육 거품에 누가 솜방망이 대신 장검을 들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
글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